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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지혜가 꿈을 비추는 시간

지식은 길을 내고, 지혜는 별을 띄우며, 지능은 당신을 넓혀줍니다

by 정성균

여는 글:


과학실의 프리즘과 멈춰버린 공책


제 방 구석, 책상 서랍 가장 깊은 곳에는 마치 봉인된 유물처럼 잠들어 있는 물건들이 있습니다. 줄이 끊어져 소리를 잃은 낡은 기타, 잉크가 말라버린 만년필, 그리고 알 수 없는 기호와 비뚤비뚤한 수식이 빼곡히 적힌 두꺼운 공책 한 권입니다. 가끔 대청소를 하다가 우연히 이 서랍을 열 때면, 뽀얀 먼지 냄새와 함께 가슴 한구석이 묵직하게 내려앉곤 했습니다.


그 공책의 마지막 장을 덮던 날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열네 살의 저는 물리학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교과서 귀퉁이에 낙서하듯 적어놓은 꿈이었지만, 저에게는 세상 그 무엇보다 진지했습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중학교 과학실의 풍경이 떠오릅니다. 알코올 램프의 푸른 불꽃이 유리관을 타고 흔들리던 모습, 형광등 불빛이 작은 삼각 프리즘을 통과하며 책상 위에 일곱 빛깔 무지개를 만들어내던 짧은 기적들.


밤하늘의 별들이 왜 그렇게 빛나는지, 이 넓은 세계가 어떤 법칙으로 움직이는지 알아가는 과정은 언제나 설렜습니다. 공책에 서툰 수식을 적어 내려갈 때면 좁은 방이 한순간 사라지고, 그 너머의 아득한 세계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곤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목소리는 그 프리즘보다 무거웠습니다. 선생님은 "순수 과학은 밥벌이하기 어렵다"며 혀를 차셨고, 부모님은 "그런 꿈은 천재들이나 꾸는 것"이라며 영어 단어장을 손에 쥐여주셨습니다. 그날 밤 공책을 서랍 깊숙이 밀어 넣을 때, 제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그 작은 떨림은 세계의 절반을 닫아버린 순간이었습니다. 그것은 철이 드는 과정이 아니었습니다. 내 안의 불씨 하나가 소리 없이 스러지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선택되지 못한 수많은 ‘나’는 오랫동안 어둠 속에서 숨을 고르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창밖의 바람이 어느새 달라졌습니다. 지금 우리는 낯설고도 찬란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아침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서랍 속에 갇혀 있던 당신의 꿈들에게 말을 걸고 싶습니다. 포기할 것은 이제 없습니다. 지식과 지혜와 지능이 우리를 돕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이라는 기술은 앞을 막던 장벽을 거둬내고, 혼자서는 건너기 어려웠던 세계로 한층 더 안전하게 다가가도록 돕습니다. 욕망을 감추지 않아도 되는 시대, ‘나’라는 존재가 다시 쓰이는 시간이 열렸습니다.


생각의 변화:


세 가지 빛과 미세한 떨림


이 새로운 흐름은 단순한 도구의 발전을 넘어, 삶을 비추는 빛의 온도 자체를 바꾸고 있습니다. 과거의 빛이 효율과 속도만을 겨누는 날선 조명이었다면, 지금의 빛은 온 방 안은 물론 마음속 그늘까지 조용히 비추는 따스한 볕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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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상담가로서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며 소중한 순간들을 글로 기록해 나가고 있습니다.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하며, 이를 통해 깊이 있는 사유와 글로 표현하며 교감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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