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무감각해진 날들, 나를 다시 구하기로 했다

착한 사람이란 이름 아래 마음을 잃어버린 이들을 위한 회복 에세이

by 정성균

당신은 언제 자아를 잃어버렸습니까


언제부터일까요?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고통은 아니되, 기대도 기쁨도 없는 나날이 길게 이어집니다. 깊은 잠을 잤음에도, 젖은 솜처럼 묵직한 권태가 영혼의 자리에서 피어납니다. 당신의 일상에 혹시 별다른 사건 없이도 만성적인 의욕 부재가 깃들어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매일 걷는 익숙한 거리. 그 수백 번의 길 위에서, 어느 날 문득 풍경이 흐릿하게 느껴지는 순간을 마주합니다. 새로 생긴 빵집의 고소한 향도, 화단에 핀 꽃의 다채로운 색채도 더는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합니다. 창문을 열어 깊은숨을 내쉴 때, 공기가 찬지 더운지조차 분간할 수 없는 감각의 정지를 경험합니다. 주변은 쉼 없이 소란스러운데, 내면은 마치 먼지 쌓인 폐가처럼 고요하고 속이 텅 빈 듯한 허전함에 잠겨 있습니다. 이 고요는 평화가 아닙니다. 생에 대한 무관심이라는 끔찍한 징후입니다.


누군가 진심 어린 말을 건네도, 그 위로가 내면에 닿지 못하고 돌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상대를 밀어내게 됩니다. 어떤 이는 중요한 회의를 끝내고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 자신이 하루 종일 마네킹처럼 서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입술은 웃었으나, 얼굴 근육은 거짓을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 섬세한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사는 게 다 그렇지”라는 편리한 변명 뒤에 숨습니다. 그렇게 내면이 보내는 절박한 구조 신호를 외면합니다.


몸의 아픔은 명료합니다. 고열이나 발진처럼 선명한 경고를 보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신의 아픔은 경고음 대신, 삶의 활력 자체가 증발하는 방식으로 찾아옵니다. 기뻐야 할 자리에서 억지 미소를 짓고, 슬퍼야 할 때 눈물 한 방울 나지 않는 상태. 무언가 중요한 영혼의 에너지가 소진되어 버린 그림자와 같습니다.


감각 상실은 조용한 비명입니다. 들리지 않을 뿐, 가장 크게 울리고 있습니다. 마음이 머물 자리를 잃고, 가장 깊은 곳의 따스함이 차갑게 식어가는 과정. 이것이 삶을 잠식하고 있는 병의 초기 증상입니다. 당신의 감각을 지금 멈춰 서서 점검해야 합니다.


오늘 할 수 있는 한 가지: 출퇴근길, 눈을 감고 느껴지는 공기의 온도를 단 한 번만이라도 인지해 보세요.


착한 당신을 병들게 하는 세 가지 독(毒)


정신은 대체 어떻게 스스로 붕괴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것일까요? 큰 사건 때문이기보다, 일상의 작은 균열들이 쌓여 이루는 자기 배신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마치 젖은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내면의 활력은 서서히 고갈됩니다.


첫 번째 독: 감정 억압이라는 이름의 자기 폭력 우리는 사회화 과정에서 울고 싶을 때 환하게 웃는 법, 분노가 치솟을 때 조용히 침묵하는 법을 가장 먼저 배웁니다. 직장에서 억울한 지적을 들어도, 화를 드러내는 대신 "귀한 조언 감사합니다"라고 답하는 순간들이 반복됩니다. 속으로는 치를 떨면서도, '미성숙해 보이지 않기 위해',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스스로에게 가장 가혹한 비난을 퍼붓습니다.


참아낸 기분은 공기처럼 사라지지 않습니다. 해소되지 못한 응어리는 심장 질환, 만성 두통 등 신체화 증상을 불러옵니다. 이 독소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폭발합니다. 이유 없이 몸이 아프거나, 기력이 쇠한 상태에 시달리거나, 가장 안전하다고 믿는 가족에게 폭언이나 날카로운 비난의 형태로 분출됩니다. 솔직한 내면을 정직하게 대하지 않은 대가는 반드시 몸과 관계의 파열음으로 되돌아옵니다. 이 반복적인 자기부정이 바로 나를 파괴하는 첫 단추입니다.


두 번째 독: 좋은 사람 가면 뒤에 숨은 자아 상실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고 '친절한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낭비합니다. 당신은 휴식을 원하면서도, 거절을 못 해 친구의 하소연을 새벽까지 들어주는 시간을 보냅니다. 타인의 기대치를 충족시키는 것이 내 존재 가치를 높이는 길이라고 굳게 오해합니다. 당신의 현재 삶에서 '나'라는 주어는 얼마나 남아 있습니까?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정성균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작가는 상담가로서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며 소중한 순간들을 글로 기록해 나가고 있습니다.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하며, 이를 통해 깊이 있는 사유와 글로 표현하며 교감하고자 합니다.

572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29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110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