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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숙함의 궤적

시간·몸·관계가 함께 만든 익어감의 기록

by 정성균

겉모습은 변함없지만, 세월의 운행은 흙과 빛 사이의 틈에서 새로운 장면을 빚어낸다.


흙이 담긴 소형 분재의 줄기를 손가락으로 쓰다듬어 본다. 여러 해 동안 한 장소에 있던 소나무는 그 겉모습이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듯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무에 새겨진 정교한 자국과 태양을 따라 방향을 바꾼 가지들의 자취는 오랜 나이테의 역사를 빠짐없이 보여준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발전이 멈춘 듯 잘못 생각하곤 한다. 새로운 경험을 받아들이는 흐름이 늦춰지면서 활력이 줄었다고 오해하는 시기가 찾아온다. 새로운 앱을 익히는 일조차 망설이는 때를 맞이하기도 한다.


나이가 들면 일상적인 되풀이 주기는 더 빠르게 느껴진다. 날마다 이어지는 일과가 늘 익숙한 경로로 이어져, 어제와 오늘이 한 장의 그림처럼 겹쳐져 다가오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시선을 한곳에 집중하면, 되풀이되는 시간의 얇은 층 속에서도 섬세한 새로움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다. 대화 중 상대방이 숨기려는 속마음을 재빨리 알아차리는 민감한 감각이 발달한다. 정해진 대답 대신 말을 아끼는 틈을 택하는 지혜를 발휘한다. 작은 친절에도 진심을 다해 고마움을 표현해 보였다. 자기 변화는 크고 시끄러운 사건으로는 찾아오지 않는다. 잔잔한 물아래에서 거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바뀔 뿐이었다. 이제 성장의 기준을 외부에 보이는 결과에서 거두어, 깊숙이 다져진 내력을 측정하는 준거점으로 재정립해야만 한다. 저녁 어스름이 짙어지자 나뭇잎의 잎맥 위로 옅은 빛 알갱이들이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이 빛의 결정들은 다음날 아침에는 분명 다른 각도로 기울어져 있으리라 예측된다. 나뭇잎의 희미한 흔들림에서 포착하는 세상의 맥박은 우리가 정한 시계와는 전혀 다른 주기로 숨 쉬고 있었다. 존재의 겉모습과 안에 담긴 기운 사이를 스치는 선에서, 공기를 가르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하루가 조금씩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가만히 서 있는 소나무의 정적은 그 모든 역동적인 변화를 가지 끝에 그대로 품은 채, 말 한마디 없이 장면으로만 보여 준다. 오래된 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휴식의 순간 속에서 오히려 가장 섬세한 변화가 자라난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나이를 거듭한 뒤의 삶은 바깥세상의 반응을 좇기보다, 속에서 차곡차곡 쌓인 마음의 두께를 다듬는 쪽으로 서서히 기울어지는 법이다.


시간의 옹이, 존재의 각인


겉모습을 꾸미는 행위보다 존재의 원천이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고요 속에서 새로운 지표를 발견해 보았다.


결국 삶의 방향타를 움직이는 것은 외부의 압력이 아닌, 심지를 박은 마음에서 오는 고요한 관찰에서 비롯된다. 이 무렵, 일상의 흐름을 늦추는 순간이 예고 없이 찾아오곤 한다. 잠깐 숨을 고르는 행위가 찾아온다. 이는 외부인의 시각으로는 퇴보하거나 멈춘 모습으로 비치기 쉽다. 하지만 그것은 곧 살아온 궤적을 전면적으로 다시 꼼꼼히 살필 심적 여유를 얻게 된다는 뜻이었다.


식사를 마친 뒤, 늘 습관처럼 잡으려던 휴대 기기를 식탁 위에 조용히 내려놓아 본다. 알림 기능이 차단된 평온이 감도는 상태였다. 갑자기 잊고 지냈던 정신이 깃든 뿌리에서 오는 속삭임이 선명하게 들려오는 듯하다. 수십 년간 무심하게 쌓아왔던 경험들이 이 짧은 정지 상태에서 드디어 체계적으로 분류되고 정리되는 과정이었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게 된다. 남보다 앞서 나아가야 한다는 강한 압박감이 존재했던 시절이었다. 오직 앞만 보고 질주했던 그 가속은 소중한 인연과 섬세한 감정들을 흘려보내는 결과를 초래했을까. 성급하게 행동하면 길을 올바르게 보는 시야가 흐릿해지는 법이다. 과거의 맹렬했던 전진보다, 지금 한 발을 내딛는 신중한 움직임이 변화의 주춧돌을 지탱하는 잠재력이 되는 것이다. 매일 거닐던 익숙한 샛길에서 일부러 발을 묶어 보았다. 육체의 감각이 일순간 당황하는 듯하다. 그렇지만 시선이 낯선 사물의 그림자를 따라 흐르는 그 순간, 삶의 새로운 국면이 차분하게 개방되었다. 유리잔에 맺힌 물방울이 모양을 찾아가듯, 들뜬 감정도 자리로 돌아왔다. 침묵이 깃든 자리를 오래 주시하면, 다음 걸음을 옮길 영역이 은은하게 윤곽을 드러내는 듯했다. 이 내적인 휴지는 결코 게으름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시야를 좁혀 주변에서 스쳐 지나가는 작은 움직임까지 붙잡으려는, 마음의 초점이 선명해진 상태에 가까워 보였다. 오직 발걸음을 늦춰야만 발견할 수 있는 경계들이 이 고요 속에 숨겨져 있었을까.


깎여나간 자리가 남긴 윤기


강물 속을 오래 굴러온 조약돌이 제 얼굴을 드러내듯, 존재도 오래 쌓인 시간의 자리에서 자기만의 광택을 찾아간다.


오랜 세월 강바닥을 굴러온 조약돌 하나를 손에 들어본다. 처음부터 매끄러웠던 돌은 없었으리라. 물길을 따라 휩쓸려 내려오면서 수많은 바위와 모래에 부딪히고 긁히는 과정을 견뎠던 것이다. 우리는 종종 상처를 받았던 날들을 아픔이나 손실로만 기억하려 한다. 세상의 잣대에서 '깎여나간 부분'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젊은 날의 날카로웠던 잠재력이 소진되었다고 서글퍼하기도 한다.


하지만 돌의 진정한 가치는 원래 지니고 있던 크기나 모양이 아니라, 끝없는 마모를 통해 완성된 표면의 광택에 닿아 있었다. 무심히 쓰다듬는 손길 아래에서 비로소 그 단단한 윤기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젊은 시절, 우리는 흠결 없는 완벽함을 추구했지만, 결국 삶이 건네준 가장 값진 선물은 그 모든 흠결을 삭여낸 단련의 결과였다는 것을 깨닫는 시점이다.


지금 나의 감촉 위에 남아 있는 부드러움과 진한 색채는 외부의 거친 환경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겪어냈다는 증거이다. 상처를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였을 때, 그 경험은 비로소 나를 연마하는 도구가 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삶의 굳건한 중심을 얻게 되는 느낌이다. 이는 무거운 짐을 진 채 흔들리지 않고 정지된 자세로 서 있는 느낌과도 같아 보였다.


표면의 윤기는 존재가 오랜 시간을 버텨냈다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증명으로 이어졌다.


익숙한 것을 재습득하는 용기


강인한 기반 위에서, 가장 평범했던 일상의 풍경에 낯선 시선을 입힐 대담성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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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상담가로서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며 소중한 순간들을 글로 기록해 나가고 있습니다.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하며, 이를 통해 깊이 있는 사유와 글로 표현하며 교감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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