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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어울리는 하루를 찾는 시간

by 정성균

변화는 아무 조짐 없이 다가오는 일이 잦았다. 해가 기울며 공기 가장자리의 질감이 아주 조금 바뀌는 순간, 감각은 그 변화를 언젠가 알아챌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계절의 이동이 천천히 방향을 틀 때 일상의 표면도 조금씩 다른 온도를 품었다. 익숙한 풍경 속에서 일어나는 이런 움직임은 대개 눈에 잘 띄지 않았지만, 어느 날 문득 익숙한 장면이 예상 밖의 모습으로 드러나면 가벼운 흔들림이 고요해지는 순간, 마음은 깊은 층으로 천천히 기울어지는 모습이었다.


오래도록 정다움을 간직하던 골목에는 세월이 묻은 만물상이 있었다. 주인의 손길이 스며 있는 물건들이 층층이 놓여 있어,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생활에서 비롯된 오래된 무늬가 천천히 떠올랐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문이 닫혀 있었고, 며칠 뒤에는 투명한 유리 외벽을 둔 브런치 카페가 그 자리를 채웠다. 골목을 스쳐가는 빛이 예전보다 밝아진 탓인지 걸음이 자연스레 멈췄고, 익숙한 장면이 달라진 분위기를 드러내는 순간 주변의 공기는 한층 더 선명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도시가 스스로의 모습을 새롭게 정리해 가는 동안, 내 삶도 비슷한 방식으로 조용한 조율에 들어섰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경험이 쌓이는 만큼 중심도 견고해질 것이라 여겼지만, 지금은 그 중심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흐름이 이어졌다. 이전의 속도만으로 머물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고, 다른 호흡이 필요한 구간이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어느 순간부터 유연함은 생존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삶을 다루는 자연스러운 방법에 가까웠다.


그즈음, 적응력이 다시 시험받고 있다는 기운이 피할 수 없는 현실처럼 은근히 스며들었다.


멈춰 선 현실 앞에서


기술은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어제 익힌 기능이 하루 만에 다른 형태로 바뀌고, 손 안의 작은 화면은 삶의 여러 절차를 모두 통과시키는 관문으로 자리 잡았다. 행정 업무도, 금융 생활도 이 한 화면을 통해 움직였다. 중년에 접어든 사람들은 이 변화를 따라가기 위해 이전보다 많은 체력을 쓰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호흡이 불규칙해지는 것을 느꼈다.


젊을 적에는 경험이 쌓인 만큼 상황 판단이 수월해질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현실의 흐름은 매번 다른 궤도를 따라 움직였다. 익혀야 할 기술의 목록은 좀처럼 줄지 않았고, 어느 하나도 여유롭게 다가가기 어려운 순간들이 이어졌다. 마음이 조금이라도 지칠 때면 새로운 기능은 손끝을 밀어내는 듯한 감각을 남겼다. 화면의 진행이 멈춰 있는 장면 앞에서 마음도 함께 무거운 돌처럼 고요해지곤 했다. 창밖의 가로수는 아무 말 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 변화는 어느 누구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었다. 시대의 흐름 자체가 다른 방향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뒤처질까 호흡이 흔들리는 듯한 두려움이 아니라, 자신의 걸음새에 맞는 방식을 찾아가는 일이었다. 감당할 수 있는 작음부터 천천히 익히고, 불필요한 부담을 비워내며, 매일 조금씩 반복할 때 흐름은 천천히 가까워졌다.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서도 균형은 여전히 마련할 수 있었다.


행동 장면: 디지털 문턱 앞에서


며칠 전, 은행 앱에서 인증서를 갱신하려던 순간이었습니다.


화면 한가운데 'Error Code 2301'이라는 문구가 떠오르자, 마치 흐름이 멈춘 듯한 정적이 번졌습니다. 다음 단계로 이어지지 않는 고요가 손의 움직임을 붙잡았고, 손끝에 아주 가벼운 흔들림이 일어나며 세상과의 연결이 잠시 멀어지는 조짐을 남겼습니다.


그 짧은 멈춤 속에서 지금의 흐름이 얼마든지 어긋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몸은 이미 나름의 반응 방식을 만들어 두었던 것 같았고, 그 방식은 나이가 더해질수록 더욱 은근하게 드러나는 듯했습니다.


창가 쪽에서 들어오던 빛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었지만, 그 아래 놓인 감정은 미묘한 결을 바꾸며 조용히 가라앉는 분위기를 보였습니다.



예전과 달리 정보 처리 속도는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기 어려운 때가 있고, 밤늦게까지 몰아치듯 익히는 방식은 점점 몸과 맞지 않았다. 바깥의 속도와 몸의 리듬이 서로 맞지 않을 때 호흡은 얕아지고 판단의 간격도 늘어났다. 이러한 변화는 선택을 더욱 신중하게 만들었다.


그럴 때는 무엇보다 격렬하게 흔들리는 마음의 상태를 먼저 눈여겨보는 편이 좋았다. 흐트러진 중심을 천천히 다시 세우고, 흔들림의 원인을 안으로 돌려 살필 여유가 필요했다. 외부의 속도에 억지로 맞추기보다 잠시 간격을 만들고, 그 간격에서 다시 척도를 세우는 과정이 요구되었다.


중심을 세우는 법


이 시기에는 바깥의 속도를 조금 낮추고, 관찰자의 자리에 머무는 태도가 도움이 되었다.

젊은 세대가 다루는 언어와 기술이 낯설게 다가와도, 약간의 거리를 둔 시선으로 바라보면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단서가 천천히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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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상담가로서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며 소중한 순간들을 글로 기록해 나가고 있습니다.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하며, 이를 통해 깊이 있는 사유와 글로 표현하며 교감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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