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속도를 늦추는 시간
통유리를 비스듬히 지나온 볕이 사무실 한쪽에 얇은 선을 그리며 번져 오고 있었습니다. 그 빛은 바닥의 표면을 부드럽게 더듬었고, 그 자리에 서 있던 사물들의 외곽이 조금씩 다른 결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의 물성이 가볍게 접히는 듯한 그 순간, 실내의 분위기는 말을 건네지 않으면서도 분명한 기운의 사선을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자리에 앉아 주변을 다시 바라보니, 책상 사이를 건너던 공기의 얕은 압력이 생각보다 선명하게 포착되었습니다. 모니터 위에 남아 있던 빛의 잔상은 얇은 막처럼 일렁였고, 손등을 살짝 스쳤던 차가운 매끄러움이 기억 아래쪽에서 조용히 깨어났습니다. 이 감각들은 가까운 직물의 올을 아주 천천히 바꿔 놓는 방식으로 존재의 자국을 남겼습니다. 유리창을 경유해 스며든 일광의 쏠림은 아래쪽으로 무겁게 내려앉는 낌새를 보였습니다.
책상 모서리의 종이가 아주 얇게 들렸다가 이내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그 작은 진동이 실내 공기의 숨을 얕게 바꿉니다. 고요함 속에 숨어 있던 움직임이 어딘가에서 가볍게 되살아나는 듯한 느낌이 드는 순간이었습니다. 공간은 그 작은 기운을 품으며 새로운 결을 만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빛과 공기와 촉감이 하나의 장면을 완성하는 과정은 언제나 말보다 정확했습니다.
종이 넘기는 소리는 금세 잦아들었습니다. 아주 옅은 여운만 길게 이어졌습니다. 다른 책상에서 이동하던 의자의 바퀴는 느린 미끄러진 자국을 남겼으며, 그 끌림은 멈춘 뒤에도 느린 그리움처럼 남겨졌습니다. 저는 그 작은 자국을 시야 한쪽에 두고, 공간의 밀도가 바뀌는 것을 살폈습니다. 말이 오가는 시간이 아니었음에도, 행위 하나하나가 소리보다 선명한 신호 체계로 이어졌습니다.
프린터가 멈춘 뒤 특유의 정숙함이 공간에 스며들었습니다. 기계 열기가 완전히 빠져나가기 전까지 공간은 묘하게 수축되었고, 그 수축은 실내의 낮은 밀도를 재조정했습니다. 저는 그 지나가는 길의 가느다란 변화를 머릿속에 그려 두었습니다. 낮은 구동음을 내는 기기들이 바닥 가까이에 엷게 깔려, 사람들의 온전한 집중을 밀어 올리거나 부드럽게 내려놓는 정적인 기반이 되었습니다.
바닥 쪽에서 빛의 얇은 절편이 아주 천천히 옮겨갔습니다. 그 절편이 머무르는 경계선만으로도 실내의 농도가 어느 지점에 모이는지 자연스럽게 포착되었습니다. 볕이 길게 미끄러지는 순간, 의자 다리 아래쪽에서 작은 명암이 생겼습니다. 그 밝기의 각도는 짧지만 분명한 논리처럼 느껴졌습니다.
외부에서 불어오는 기류의 속도가 느릿하게 변하자, 바닥에 드리워진 그림자의 선도 다른 방향을 향했습니다. 물건의 윤곽이 바뀌는 순간, 사람들의 집중도 함께 이동하는 듯했습니다. 어떤 이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고, 또 다른 이는 고개를 살짝 들었습니다. 회의실의 문이 닫히는 순간, 실내의 공기가 아주 얇게 이동했습니다. 문이 닫히자마자 사무실 깊은 쪽에서 낮은 떨림 같은 감각이 가라앉았습니다. 그 순간적 변화는 다시금 조용한 상태로 흩어졌습니다. 저는 그 소멸 속에서 배열이 조용히 바뀌는 정서를 포착합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