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틈에서 다시 나를 세우는 시간
젊은 시절의 나는 햇빛만을 따라 위로 치솟으려는 어린 수목에 가까웠다. 주말에도 잠깐의 여유를 허용하지 못한 채, 새로운 지식을 축적하거나 관계의 폭을 넓히는 일이 성장의 전부라고 믿었다. 쉼은 곧 뒤처짐이라는 불안이 등 뒤에서 은근하게 흔들렸고, 잠시 누워 눈을 감는 일조차 스스로에게 면죄부가 필요했던 때가 있었다. 세월을 견디며 자리를 지켜 온 한 그루의 나무가 더 이상 위쪽만을 바라보지 않듯, 지금의 나는 다른 방식으로 생의 무게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토요일 오후, 거실 소파에 몸을 맡긴다. 방 안에 고요가 가득 차고, 시곗바늘이 가르는 소리만이 흐른다. 가죽 소파의 서늘한 감촉이 등을 스칠 때, 평일 내내 팽팽하게 당겨졌던 신경의 줄이 조용히 풀어진다. 겉으로는 힘이 빠진 사람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중력의 품 속에서 긴장을 내려놓는 순간이다.
소파가 등 뒤의 짐을 담담하게 받아내는 동안, 평소의 역할과 외부의 호칭들은 바닥 아래로 가라앉는다. 천장을 바라보는 이 한순간은 나태함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땅속 더 깊은 곳으로 뿌리가 길을 탐색하는 장면과 닮아 있다. 속도를 높여야만 했던 지난 시절을 지나고 나니, 이제는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묵직한 휴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중년의 낮잠은 흐름을 바꾸는 과정이다. 위쪽으로만 치닫던 에너지가 깊이와 안정으로 향할 때, 보이지 않는 지점에서는 오히려 더 치열한 조율이 일어난다. 그렇게 삶의 균형이 천천히 제자리를 찾아간다.
에너지는 사라지지 않고 형태만 바꿀 뿐이다. 과거의 실패나 실수, 젊은 날의 무모함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고 여겼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들이 ‘경륜’이라는 힘으로 바뀌어 조용히 내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소파에서 일어나 서재나 베란다 의자에 앉으면, 문득 오래된 기억들이 자리를 잡는다. 승진에서 비껴섰던 날의 허탈함, 사업이 무너졌던 순간의 쓰라림, 미숙한 가장으로 남아 있던 장면들이 어둡게만 보였던 시절. 그때는 모든 것이 나를 소모시키는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 차분히 들여다보면, 그 경험들이 오히려 깊이를 만들어 주며 나를 지탱해 온 힘이었다.
후회에 발목을 잡히기보다 그 기억을 내일의 판단력으로 환원한다. ‘그때 그랬더라면’이라는 가정은 끝없이 이어질 뿐이지만, ‘그랬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담백한 수용은 한 사람의 시간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방식이 된다. 나는 과거에 얽매인 사람이 아니라, 쌓아 온 시간을 기반으로 다시 걸음을 내딛는 사람이다.
흔들리던 물 잔을 조용히 내려두면, 작은 입자들이 바닥으로 스며들듯 가라앉아 각자의 자리를 찾고, 그 위로 맑은 면이 천천히 드러난다. 흐릿함이 아래로 내려가 투명한 층이 되살아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평일 내내 이어진 압박과 관계의 긴장으로 속내도 흐려지기 쉬워, 주말은 그 탁함을 잠시 내려두는 귀한 틈이 된다.
토요일 밤, 베란다 창가 의자에 가만히 앉아 바깥 풍경을 바라본다. 스마트폰과 책을 멀리 밀어 두고 어둠의 결을 눈에 담는다. 외부 자극이 사라지자 방 안은 조용해지고, 하늘 위로 옅게 번진 별빛이 느리게 스며든다. 그 잔잔한 빛 아래에서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속울림이 되살아난다. 어떤 역할도 붙지 않은 오래된 ‘나’라는 존재가 조용히 고개를 드는 것이다.
여러 소음 속에서 가려졌던 중심은 이렇게 고요가 펼쳐지는 순간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바닥에 가라앉은 물층을 살피듯 마음 깊은 곳을 더듬는 탐색이 이어지고, 그 안에는 한 사람의 진실을 확인하려는 묵직한 의지가 깃들어 있다. 이 정적 속에서 마음의 창면을 천천히 닦아 내고, 창밖의 빛처럼 잔잔하게 흔들리는 내 모습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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