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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인생 후반, 다시 나를 직조하는 7가지 특권

by 정성균

1. 텅 빈 무대 위에서, 나를 향한 시선을 찾다


삶은 타인을 위한 무대에서, 마침내 나를 향해 조명이 비추는 무대로 천천히 전환되기 시작한다.


58세에 공직 명예퇴직을 맞이한 A 씨처럼, 우리 인생에는 문득 모든 호칭이 증발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아버지’나 ‘과장님’ 같은 역할 정체성(Role Identity)의 옷을 벗어던진 자리, 그 빈 공간은 형언할 수 없는 공허함의 무게로 채워진다. 지난 일 년간 TV만을 멍하니 응시하며 보낸 날들. 그는 멈춰 있었으나, 마음은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책상 서랍 속에서 오래전에 사용하던 낡은 만년필 하나를 꺼내 들었다. 햇빛에 바랜 금속의 차가운 결을 손끝으로 느끼던 순간, 묵은 깨달음이 섬광처럼 일깨워진다. ‘남은 시간은 이제 오롯이 나를 위한 내 삶, 자아 정체성(Self-Identity)을 굳건히 다질 시기이겠다.’


하지만 마음을 정리하는 때, 평생 타인을 위해 바쳐온 시간의 잔향이 밀려오며 망설임이 올라온다. 지금 와서 나만을 향해 시선을 돌려도 되는 걸까 하는 미안함, 바로 ‘희생의 그림자’이다. 그러나 이 미안함이야말로 늦게나마 스스로를 돌아보려는 심리가 움직이기 시작했음을 드러내는 가장 강력한 징후이다. 이 시기의 자기 돌봄은 더 이상 이기심이 아니다. 그것은 남은 생애를 독립적으로 지속하기 위한 필수적인 에너지 충전임을 깨달아야 한다.


2. 능동적 노화, 내면 성장의 특권을 누리다


이 자기 돌봄의 동력이 내면으로 향할 때, 우리는 '능동적 노화'라는 성장의 기회를 맞이한다. 겉모습 뒤에 숨겨진 노년의 진정한 특권은, 삶 전체를 되돌아보고 '나 자신을 완성해 나가는' 깊은 내면의 작업에 몰두하는 것이다. 인생의 후반기는 겉으로 볼 때 잃어버리는 일들이 많게 느껴지기 쉽다. 왕성했던 기력은 줄어들고, 사회적 관계망은 좁아지며, 역할은 축소된다. 하지만 겉모습만으로 후반 생애를 고된 시간이라 치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젊을 때 외부로 쏟았던 에너지를 내면 성장 쪽으로 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삶의 중심을 '남이 정한 길'이 아닌 '진정으로 내가 만들고 싶은 삶'으로 과감하게 삶의 실타래를 다시 엮는 이 행위가 바로 노년 연구 대가들이 명명한 '능동적 노화' 단계이다.


수동적으로 늙어가는 태도를 버리고,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스스로 계획하고 행동하는 주도적인 삶의 자세만이 우리를 지켜줄 수 있다. 한 사회학자는 "노년은 정지 상태가 아니라, 경험이라는 보물을 지혜라는 이름으로 분류하고 정리하는 바쁜 시간"이라 역설했다. 이 시간은 노력하는 이들에게 반드시 응답하는 성장의 기회다. 내면의 작업을 통해 우리는 후반 생애를 재정의하게 된다.


3. 마음의 방패를 벼리는 회복의 시간


이 깊은 내면의 작업은 마음의 방패를 벼리는 회복의 시간과 직결된다. 나이가 들면 슬픔이나 상실 경험이 빈번해지는 현실을 마주한다. 이때 우리 스스로를 지키는 마음의 방패, 즉 방어기제가 얼마나 현명한지가 일상의 평온을 결정한다. 심리 치료 전문가들은 이를 '감정의 창'에 비유하며, 마음이 안정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감정의 폭을 넓히는 것이 회복력의 핵심이라 말한다. 61세 B 씨는 갑작스러운 배우자의 부재 이후, 매일 아침 침묵만이 가득한 식탁을 마주했다. 슬픔은 그가 스스로 만든 방어기제를 무너뜨리지는 못했지만, 그의 '감정의 창'을 좁혀 작은 위로조차 들어설 공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현명한 후반 생애의 이들은 고통스러운 감정을 다루는 마음의 근력을 의도적으로 훈련한다. 감정이 일어나는 순간을 무심히 받아들이던 방식에서 벗어나, 차분히 살피고 적어보는 순간에서 비로소 회복은 시작된다. 58세 A 씨가 감정 일기를 시작했지만, 묵직한 감정에 사흘 만에 펜을 내려놓았다가 회복이 결코 직선으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깨닫고 다시 펜을 잡은 경우도 있다. 마음이 크게 흔들렸던 순간을 짧게 되짚어 기록하는 것은 감정 습관을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 스스로에게 "이젠 쉬어도 된다"라고 정서적 용서를 선언하는 실천도 필요하다. 내면의 괴로운 에너지를 글쓰기나 봉사 같은 활동으로 바꾸는 '승화'의 길도 존재한다. 궁극적으로, 이 모든 훈련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통제 가능한 자신의 내면 성장에 에너지를 집중하는 힘을 길러준다.


4. 뇌의 비상금, 지적 호기심이 지켜주는 여유


내면 성장에 집중하는 회복력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뇌 기능을 닫아버리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 노년의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는 가장 강력한 동력은, 멈추지 않고 스스로 배움의 즐거움을 찾아 나서는 지적 호기심에서 비롯된다. 뇌는 사용하면 할수록 새로운 길을 만들며 활발히 움직인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과정은 우리의 기억을 관리하며, 동시에 일상에 커다란 생기를 불어넣는다. 꾸준한 지적 활동은 뇌 손상을 견디는 여유 공간인 '뇌의 비상금(인지 저장고)'을 채워주는 지적인 보험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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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상담가로서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며 소중한 순간들을 글로 기록해 나가고 있습니다.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하며, 이를 통해 깊이 있는 사유와 글로 표현하며 교감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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