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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나를 떠나 타인에게 닿는 순간

쓰는 마음이 타인의 삶에 스며드는 여정

by 정성균

지은이 : 정성균


1. 작가 소개


"상처가 흉터가 아닌 무늬가 되는 순간을 씁니다."

사람의 마음을 돌보는 상담사이자, 삶의 여백을 적는 에세이스트. 고통이 고립으로 끝나지 않고, 글이라는 다리를 통해 세상과 연결되는 과정을 탐구합니다. 아이리스 머독의 '비자아(Unselfing)' 개념처럼, 나를 비워냄으로써 비로소 타인의 고통을 끌어안는 글쓰기를 지향합니다.


2. 작가의 말


칠흑 같은 어둠이 방 안을 감싸던 밤이 있었습니다. 고요한 공간에서 냉장고 모터가 토해내는 낮은 진동만이 유일한 동행처럼 들려왔습니다. 숨을 고르며 귀를 기울이던 그때, 화려한 말이나 과장된 위로보다 손끝에서 나온 거친 문장이 조금 더 가까이 스며드는 듯한 감각이 일어났습니다.


이 글은 ‘홀로 있음’ 속에 갇혀 지내시던 한 분이 문장을 통해 다른 존재에게 손을 내미는 과정을 기록한 것입니다. 스스로에게서 도려낸 상처의 조각을 비워낸 자리에 작은 틈이 생겼고, 그 사이로 머무를 수 있는 숨구멍이 누군가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자리 잡았습니다. 밀실처럼 닫힌 곳에서 띄운 조용한 노크가 무사히 당신의 문 앞까지 이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조심스럽게 포개봅니다.



[본문]


웅웅 거리는 밤, 심연의 입구


글쓰기는 침묵에서 태어난다고들 하지요. 그러나 저의 시작은 소음이었습니다.


새벽 2시, 세상의 모든 빛이 거두어진 시간입니다. 주방의 낡은 냉장고 모터가 발작하듯 웅웅 거리고, 벽 너머 배수관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가 들려옵니다. 그 불규칙한 소음 사이로 심장을 옥죄어오는 커서(Cursor)의 규칙적인 깜빡임. 그것은 “어서 네 안의 것을 꺼내 보라”며 나를 채근하는, 소리 없는 굉음과도 같았습니다.


책상 위에 놓인 빈 용지와 모니터 속의 광활한 공백은, 한눈에 보아도 허전함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말하기 어려운 긴장감이 서려 있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하얀 여백은 건너가기를 재촉하는 심연처럼 느껴지고, 아직 형태를 갖추지 못한 두려움이 고요하게 숨어 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그 막막함을 버티며 마음속에서 요동치던 압박을 다른 이름으로 다시 불러보고 싶은 생각을 품었습니다. 시간을 견디는 동안 비어 있는 공간은 조금씩 새 의미를 품게 되었고, 마침내 그 공포를 ‘자유’라 부를 수 있을 만큼 마음의 결이 정돈되는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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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상담가로서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며 소중한 순간들을 글로 기록해 나가고 있습니다.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하며, 이를 통해 깊이 있는 사유와 글로 표현하며 교감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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