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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Tang Oct 31. 2024

나는 잘 알지도 모르겠다. 그 역시 잘 모르겠다.

너무나도 무감각 해져버린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 멈춘 머리. 새하얀 백지를 깐 책상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의 백야. 

어딜 봐도 어딜 가도 흰색뿐. 머릿속은 수많은 색깔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거라곤 온통 흰색뿐인걸. 


난 믿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느껴왔다던 그 과정일 수도 끝일 수도 있다는 그 시간을. 

나에겐 다가오지 않고 있다던 그 시간이 마침내 내게 다가왔을 때. 


분명 행복했는데. 밥도 잘 먹었고 토도 하지 않았는데. 너에 대한 감정들도 무시하고 나아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다 지나갔고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을 것 같았는데. 이제부터 시작이라 믿었는데.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는 눈물 따윈 나한테 존재하지 못했던 것 같다. 

웃는 게 참 늦었다는 그 사람의 말처럼.


창문을 열었다. 방으로 가득 찼던 당신들의 연기들 모두 빠져나가도록. 아니 다시 너희들이 이 갑갑한 방을 너희들의 연기로 가득 차게 하기 위해서 인지도 몰라. 

추위에 떨고 있는 내 몸 따위 아무렇지도 않다. 다시 떨려오고 목 깊숙이 느껴지는 이 담석들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절대 나는 괜찮은 것 같다. 아니 같았다. 아니 괜찮다. 


약속이라는 건 약속의 날 전까지는 어떻게든 살아있다는 증거잖아? 그전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 약속만이 정수리 위에서 날 쳐다보고 있을 거니깐. 

미래로 인해 현재의 내가 정해져 있다는 건 참 뭘 넣어도 성립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해. 


난 진짜 괜찮아.라는 말 조차 할 사람이 없는걸. 

수많은 양 떼에 둘러싸인 개와도 같구나. 모두 너와 함께지만 막상 너를 주위로 돌고 있어. 

빙빙 빙빙 돌고 돌아 나는 그만 길을 잃어버릴지도 몰라. 


운다는 건 행위가 아니고 감정이라고 생각해. 아님 그렇게라도 정의해야지만 내가 울고 있다는 게 될 수 있을 거니깐. 

언제가 될까? 언제 가장 구속된 지금이 가장 자유로웠던 시기였다는 걸 깨닫게 될까? 모르겠다. 창밖은 희고 검다. 다른 색깔은 허용되지 않은 것만 같다. 모르겠다 정말로.


난 있잖아? 이해하게 됐어. 네가 그런 기분이었구나? 어떤 사과도 칭찬도 무엇이든. 네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된 이후로부턴 그 모든 게 그냥 겉치레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는 걸. 하지만 그럼에도 위로받고 기쁜 건 너도 마찬가지였을 거 아냐? 

참 이기적인 사람일지도 몰라 나는. 그런 이기적인 기준은 드디어 나보다 더한 사람을 만나서 하여금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었다는 걸 깨닫게 돼버린걸.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나를 괴롭히는 색깔들. 우리가 늘 보는 색깔들. 모든 것의 근간이 되는 색깔들. 없애고자 하는 색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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