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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6시. 나는 일어나서 가장 먼저 주방으로 향한다. 저녁을 준비하느라 쌓인 설거지거리와 쌓여있는 음식물 쓰레기. 남편이 깨어난 후 잔소리를 하지 않도록 나는 밀려있는 쓰레기와 접시를 한쪽으로 치워뒀다. 냉장고를 열어 언제나 특가로 사는 버터 식빵과 우유를 꺼낸 후 식빵을 토스트기에 넣어둔 후 베란다로 향한다. 열 때마다 쇠가 부딪히는 소리를 내는 베란다의 창문을 남편이 깨지 않도록 살며시 연후 주머니에서 궐련형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결혼을 한 후엔 끊으리라고 결심했던 담배는 내 가슴속 가득히 쌓여있는 꼬여버린 먼지들을 태워주었다. 밤 11시 학원이 끝나고 골목길을 지나가는 여고생의 발걸음의 스피드로 담배를 태운 후 사탕케이스에 담배 쓰레기를 넣어 앞치마 주머니에 쑤셔두었다. 그 사이 토스트기는 명쾌한 알람소리를 내며 튀어 올랐고 안방에서는 남편의 코골이 소리가 조금 작아졌다. 조심하지 않으면 깨워버리겠어라고 생각한 나는 커피기계에 커피캡슐을 넣었고 계란을 꺼냈다. 언제까지고 이래야 하나 라는 생각에 머리가 돌아버릴 즈음에 남편이 깨는 소리에 나도 함께 정신을 차린다.
잘 잤냐는 한마디를 나는 이렇게나 가식적으로 말할 수 있는 거구나. 나는 나 자신의 이면성에 또 한 번 놀란 후 식탁 위에 맛있는 버터향기를 내뿜는 식빵과 커피 그리고 계란을 올려두었다. 말없이 스마트폰을 확인하며 밤새 누군가에게 연락이 온 것인지 분주하게 타자를 치는 남편의 얼굴을 나는 동물원의 판다를 보는듯한 꾸며진 사랑스러운 얼굴로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이 남자는 언제 죽게 될까?라는 끔찍한 생각을 해버린 나 자신을 혐오한 채로 남편에게 물었다. “오늘도 야근일까?” 최대한 아무렇지 않고 조금은 클 수도 있는 목소리로 나는 물었다. 남편은 나를 힐끗 보더니 길에서 판촉을 하다 실수를 저지른 알바의 표정과 같은 표정과 함께 말했다. ”아무래도 그렇지?? “ 그렇구나. 그럴 수밖에. 그래 안 그래도 힘든 요즘에 직장이 있고 정상적인 수입이 있다는 거에 감사해야지. 아니 그도 그럴게 오늘도 야근일까 라는 질문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보았다. 남편은 뭐라고 생각했을까? “이 여자는 내가 없다면 집에서 하루종일 뒹굴거리며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작은 강아지일까?” 아아 모르겠다. 그 질문을 던진 나 자신이 나 자신이 아닌 이 사람의 소유물로 만들어버린 거 같다는 느낌이 들어 자신에게 혐오감이 들기 시작했다.
1성 호텔의 아침밥만도 못한 내가 차린 아침밥을 먹은 남편은 씻지도 않고 바로 출근 준비를 했다. 나는 옆에서 졸래졸래 따라다니며 지금은 생각나지도 않는 의미 없는 질문을 던졌다. 대답은 듣지도 않았다. 그저 이 남자가 나에게 질려 떠나버린 후 나는 갈 곳이 없는 그런 끝은 원하지 않았기에 어떻게든 내가 이 집에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시켜야 했다. 문 앞에서 신발을 신는 남편은 한 손에는 계속해서 핸드폰만을 보고 있었다. 대체 뭘 보고 있는 걸까. 바람일까? 내가 매력이 없나? 물어봐야 할까? 내가 눈치챘다는 걸 알면 남편은 날 떠나갈까? 어떻게 해야 하지? 다시 일을 해야 하나? 등 아무래도 답이 없는 생각을 이어나가던 중 그런 나를 깨우듯이 남편은 말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렴. “
반사적으로 나도 ”잘 갔다 와 수고해. “라고 말한 후 나는 소파에 앉았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렴. “ 이건 대체 무슨 뜻일까. “나는 밖에서 땀 뻘뻘 흘리며 뛰어다닐 테니 너는 시원한 집안에서 티브이나 보면서 빈둥거려. 결국 일하는 건 나일 테니깐.”라는 뜻일까? 아니 당연히 그렇지 않겠지만 나는 어째서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거지? 언제나 독자적이고 나만의 인생을 살아온 내가 결혼을 한 이후부터는 두렵고 남편이 없다면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집안에 너무 틀어박혀 있었던 거 같다. 그렇다고 부지런히 집안일을 하진 않았다. 구석에 숨겨둔 그릇과 음식물 쓰레기는 어느샌가 그릇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고, 음식물 쓰레기는 없어져있었다. 내가 멍 때리던 사이에 남편이 정리해 갔나 보다. 망할. 남편은 나를 뭐라고 생각했을까. ”매일 이 여자는 집안에서 뭘 하는 거지? 내가 돈을 벌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아부를 떨 때 이 여자는 집에서 그 간단한 설거지나 쓰레기조차 버리지 않고 가만히 티브이나 보고 있었던 건가? “라고 생각했으려나? 나는 소파에 앉아 다시 담배를 꺼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봤자 뭐 어쩔 건가. 될 대로 되라지. 어차피 나는 늙어가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테니깐. 라며 자기 위안을 하며 공기를 내뿜었다. 부석부석하고 기름진 얼굴, 물이 튄 옷, 끼여있는 눈곱, 제모를 하지 않아 따끔따끔한 겨드랑이. 그런 내 모습에서 더 이상 젊을 적의 나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아아 이제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 인생은 이제 이렇게 쭉 아무 의미 없이 흘러가는 거다. 이제 다 필요 없어. 나는 그냥 나에게 주어진 ‘주부‘의 일에 최선을 다 하자. 오늘은 나가서 과일이랑 남편이 좋아하는 감자라도 잔뜩 사는 거야. 그래 그러자. 일단 씻고 나갈 준비를 하자.
라는 생각을 하며 소파에 앉아있다 보니 어느새 오후 1시가 되어버렸다. 점심은 무얼 먹었느냐는 남편의 문자에 나는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하고 담배나 피우면서 앉아있었어. “라고 보내고 싶었지만 그냥 ”집에 있는 거 먹었어. 이제 장 보러 나가려고. “라고 보냈다. 남편은 한 패밀리 레스토랑의 주소를 보내며 ”심심하면 여기 가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그래. “라고 답장했다.
착한 남편이다. 남편과 나는 대학을 졸업 후 친구의 소개로 만났다. 꽤나 개방적이고 자유로웠던 나는 깨끗하게 살지 않았고, 외로움이라는 기분에 쫓기며 이런저런 사람들과 만나며 지냈다. 그에 반해 남편은 그저 성실함 그 자체였다. 첫 소개팅이라는 걸 티 내는 듯한 우물쭈물한 동작과 별로 입지 않아 주름이 없는 옷. 그게 남편의 첫인상이었다. 나는 그 순수함이 꽤 귀여워 보였고 졸업 후 취업하는 회사가 꽤나 큰 회사였기에 결혼할 마음까지는 없었지만 꽤 흥미가 갔었다. 소개팅 이후에는 내가 적극적으로 대시해 가며 서로를 알아갔다. 데이트는 늘 정석 그 자체. 꽤 좋은 곳에서 밥을 먹고 꽤 좋은 경치의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집에 돌아가는 그런 정석과도 같은 지루한 데이트를 반복했었다. 숙맥이었던 남편은 나와 술을 마신적 조차 없었다. 그래도 그런 순수함이 마음에 들어 고작 3개월이라는 연애를 마치고 결혼을 했다. 사실은 그냥 한 사람에게 정착하고 싶었던 나의 마음이 컸다. 마침 정석적인 데이트를 마친 어느 날 꾸며진 듯한 강 앞에서 프러포즈를 받았고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2년이 지나고 나는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이 얼마나 완벽한 인생인가. 안정적인 가정. 그래 그거면 됐다. 젊을 적의 자극과는 이제 작별하고 안정적이고 헌신적인 삶을 살자.라고 생각하며 나는 기름진 머리를 샴푸로 씻어내고 오래간만에 제모까지 하며 개운한 샤워를 끝냈다. 꽤나 오랫동안 집안에만 있었기에 이번 외출은 조금 특별했으면 했기에 아끼는 원피스를 꺼냈고 수수하지만 깔끔한 속옷을 입었다. 가벼운 화장을 마치고 현관에 선 나는 아웃렛에서 남편이 내가 신으면 이쁠 거 같다는 촌스러운 구두를 신은 후 집안을 쓱 흝어본뒤 밖으로 향했다. 이미 오후가 돼버린 밖은 이미 하루를 마무리하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평소라면 노래를 들으며 걸어 다녔겠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완벽한 유부녀를 연기하고 싶었기에 걸음걸이에 신경을 쓰며 마트로 향했다. 오랜만의 외출이라 그런지 사람들의 시선이 너무나도 신경 쓰였다. 땀에 젖어있는 공사장의 남자들의 눈빛, 강아지와 산책을 하는 한 소녀의 눈빛, 횡단보도를 기다리는 나를 보는 택시기사의 눈빛. 그 눈빛들의 압박감에 나는 숨을 헐떡이며 빠른 걸음으로 마트로 향했다. 하고 싶은 요리도 없었고 일단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감자를 산 후에 빠르게 결제를 마치고 마트를 나왔다. 사야 했던 식료품들의 리스트 따위는 적어두지 않았기에 뭐가 부족한지도 몰랐던 나는 그렇게 감자 1kg을 들고서 가만히 서있었다. 햇빛은 강했고 이대로 집에 들어가자니 유리에 비친 나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남편이 보내준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서 차나 한잔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딱히 차가 마시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그냥 이대로 집에 들어가기에는 아쉬웠다. 마침 바로 앞이었던 패밀리 레스토랑은 지금까지 어떻게 보지 않고 지나쳤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정도로 집과 가까이에 있었다. 레스토랑에 들어가 강이 보이는 창가 쪽에 앉은 나는 메뉴판을 손에 들었다. 각종 음식과 디저트가 눈에 보였다. 커피는 아침에 마셨기에 나는 기분을 내고 싶기도 하고 해서 복숭아가 들어가 있는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어째선지 웃고 있는지 모르겠는 점원은 세상 밝은 표정으로 주문을 받았고 나는 유리를 통해 강을 바라보았다. 평소에도 봐왔던 경치였기에 별로 큰 감흥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두리번거렸다. 앞 좌석에는 아이를 데려온 두 여자가 깔깔대며 웃고 있었고, 뒤에서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세명의 학생이 타자소리를 내며 열중하고 있었다. 나는 그저.. 가만히 있었다. 세상과는 멀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저 이방인이구나. 나에게 있어서 돌아갈 곳은 그 답답해 미쳐버릴 거 같은 집뿐이구나. 디저트고 뭐고 빨리 집에 가고 싶어 졌다.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에 디저트는 내 테이블 위에 놓여있었다. 빨리 먹고 집에 가서 남편이 야근을 하고 오기 전에 집청소라도 하자.라는 생각을 하며 복숭아 아이스크림을 입에 넣었다. 전혀 복숭아의 향이 나지 않는 인공감미료가 아주 꽉꽉 들어가 있을 거 같은 맛이었다. 이런 걸 돈을 받고 파는 거야?라는 생각을 하며 다른 사람의 반응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반대편 테이블에 눈이 갔다. 20대 초반 대학생처럼 보이는 한 남자가 내쪽 창가를 통해 강을 보고 있었다. 나는 그의 눈에 눈이 갔고 그 남자는 내 눈을 마주치지 않고 계속해서 강가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저 남자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호기심이 들었다. 강을 쳐다볼 이유가 뭐가 있을까. 그저 물이 흐르는 길일뿐인데 뭐가 그렇게 특별한지 강의 앞의 아파트는 가격이 배다. 짜증이 났다. 매일 볼 수 있는 이 흔하디 흔한 경치의 뭐가 그리 특별하길래 계속해서 보고 있는 거지? 호기심이 짜증이 돼버린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 남자에게 걸어가서 물었다. ”뭐가 그리 재밌길래 계속 강 쪽을 쳐다보는 거죠? “ 그 남자는 속눈썹하나 움직이지 않은 채로 나에게 말했다. ”강이 흐르고 있는 쪽으로 향하다 보면 바다가 나오겠지만 강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아요. “ 나는 당황해서 무슨 말을 할지 몰랐다. 그러다 나도 생각에 빠졌다. 꽤나 사람이 있어서 북적북적한 레스토랑의 한가운데에 일어서서 나 또한 강 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의 테이블 위에 올라와있는 아이스크림은 녹고 녹아서 물이 되었고 강은 계속해서 흐르고 있었다. 갑자기 바다가 가고 싶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던 찰나 그 남자는 말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흐르고 있는 쪽의 끝을 보고 싶나 봐요. “ 나는 강을 보던 나의 고개를 돌려 그 남자를 쳐다봤다. 그 남자의 눈동자는 뭔가 아련하고 슬펐다. 한쪽의 눈은 빛이 들어오지 않아 검은색으로 보였고 다른 한쪽의 눈동자는 빛이 비쳐 아름다운 갈색을 비췄다. 나는 어째서인지 그런 생각이 들어 말했다. ”시작은 언제나 작으니까요. 사람은 결국 큰 것에 흥미가 가기 마련이에요.” 그제야 남자는 내쪽을 바라보며 나의 눈동자만을 쳐다봤다. 누군가 나를 쳐다본 건 오랜만이었기에 나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나의 손은 주먹을 쥐었고 이 남자가 나를 쳐다보며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뭔가 말을 하려던 찰나 그 남자는 내게 말했다. “그런 당신은 큰 것만을 바라보며 여기까지 오게 된 건가요? “ 대체 이 남자는 뭘 말하고 싶은 거고 나는 어째서 그런 얼토당토 한 질문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건가. 갑자기 어이가 없어진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급하게 계산을 하러 나갔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라는 생각을 하며 지갑을 찾는데 자리에 가방을 놔두고 간 걸 까먹었던 나는 다시 자리로 향했다. 최대한 발폭을 넓히며 화가 난듯한 발걸음으로 자리로 향했다. 그 남자는 어디에도 없었고 그 남자가 있었던 자리에는 비어있는 작은 커피컵만이 있었다. 나는 가방을 가지고 계산을 마친 후 나왔고, 그 앞에는 강이 있었다. 왼쪽으로 하염없이 흘러가는 강은 끝도 시작도 여기서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담배를 물고 강을 바라보며 어디론가로 걸어가는 그 남자를 보았다.
걸어가는 그 남자의 뒷모습을 횡단보도의 신호가 두 번 바뀔 때까지 쳐다본 후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샌가 해는 빌딩들의 사이로 숨어버렸고 나는 집으로 걷기 시작했다. 강을 따라 걷던 와중에 작은 것들 하나하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더운 날씨에 정장을 벗는 60대 정도가 되어 보이는 직장인. 판매원인지 한쪽손에는 책으로 가득 찬 종이봉투를 들고 있었다. 다른 한 손에는 재킷을 올린 채 흐르는 땀을 잡지 못하고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저 나이가 될 때까지 승진하지 못한 채 밖에서 뛰어다니며 책을 파는 판매원. 이제 막 20대 후반을 향해 달려가는 안정적인 수입의 남편과 결혼해 매일매일 할 것 없이 방황하는 나. 이 둘이 느끼는 괴로운 감정의 무게는 누가 정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자기혐오에 빠지게 만드는 생각들을 하던 도중 위를 봤더니 내가 사는 집의 높이는 주변의 빌딩들이 미숙아처럼 보이듯 홀로 하늘에 가장 가깝게 쏟아 있었다. 내 몸은 땀에 젖어있었고 나의 완벽한 원피스는 땀과 함께 내 등에 붙어있었다. 갑자기 짜증이 났다. 그 남자의 뭐가 그렇게 대단하길래 나는 이렇게나 답답해 보이고 그는 그렇게나 자유로워 보이는가. 이유 없는 짜증을 풀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고 엘리베이터의 에어컨만이 나의 달아오른 머리를 식혀줄 뿐이었다. 집에 도착했더니 베란다는 반쯤 열려있고 커튼은 틀고 나가버린 선풍기에 의해 살랑살랑 춤을 추고 있었다. 해가져서 노란빛을 내는 세상은 우리 집의 거실을 더욱더 노란빛으로 비추었고 내 눈에 비친 빛의 색깔 또한 더없이 노랗겠지 분명.
나는 감자가 든 봉투를 성의 없이 탁자 위에 올려두고 또다시 소파에 앉아 담배를 꺼내 들었다. 티브이를 바라보고 있는 소파를 창가가 보이게 옮긴 뒤 강을 보며 나는 궐련형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속에 차오른 나의 짜증은 담배를 얼마나 피우든 없어지지 않았고 급격히 몰려오는 우울과 무력감은 언제서인가 눈물을 흐르게 했다.
내가 눈물을 흘리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짜증? 우울? 나는 도저히 모르겠다. 그저 흐르는 눈물은 밖의 노란빛에 물들었고 그런 나의 모습이 어째선지 아름다워 보여 더 눈물이 났다.
생각해서는 안 되는 생각들이 머릿속에 몰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베란다로 나가서 빌딩밑을 쳐다봤다. 집밑에 흐르는 강은 위에서 보니 딱히 바다 쪽으로 가는 것이 아닌 더 큰 강 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만나는 큰 강의 물은 어디로 흐를까. 아니 이제 됐다. 이제 아무것도 상관이 없다. 나에겐 어쨌든 아무도 없다. 그런 의문을 품어봤자 나의 의문에 대한 또 다른 의견을 줄 수 있는 건 오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만난 그 남자 정도뿐이겠지. 쓰나미가 몰려오듯 외로움이 몰려왔다. 그 남자가 다시 보고 싶었다. 그 남자의 인생을 알고 싶고 그 남자가 생각하는 나에 대해 듣고 싶다. 그 남자의 생각에 대한 공식을 알고 싶다.
정신을 차리자. 나는 분명 그 남자를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저 지금의 내 인생이 불만족스러워서 자유로운 사람을 만나면 나 또한 자유롭게 될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는 것일 뿐이야. 나는 나의 뺨을 지금까지 내 본적 없는 힘으로 세게 때렸다. 뺨과 손이 맞닿은 큰 소리는 집안을 울렸고 내 머릿속 또한 경쾌하게 울렸다. 나는 소파에서 일어난 후 침대로 갔다. 보통 신혼집이면 결혼식의 액자정도가 걸려있어야 하겠지만 지금까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는 사람들이 나의 결혼식에 와서 나를 조롱하는 걸 원하지 않았기에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다. 큰 방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큰 사이즈의 침대는 곡선 따위 존재하지 않고 그저 딱딱하고 차가워 보일 뿐이었다. 밖의 차소리와 바람소리 그리고 비쳐오는 노란빛들에 의해 나 또한 노란빛으로 물들었다.
이제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숨도 쉬기 힘들어졌다. 눈물은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었지만 그 어떤 소리도 내고 있지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주방으로 온 나는 서랍을 열어 칼을 꺼내 들었다. 만약 이 칼을 퇴근해 지친 남편에게 찔러 넣는다면 이 반복되는 삶을 끝낼 수 있는 걸려나 라는 생각을 했다. 또는 이 칼을 지금 내 복부에 찔러 넣는다면 나는 더 이상 이런 꼬여버린 머리카락 같은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던 중에 손이 스스로 움직여 그 칼을 복부에 꽃아 넣었다. 복부가 순식간에 뜨거워졌다. 찌르기 전에도 정신을 잃었던 나는 그 어떤 소리도 내지 않은 채 주방의 바닥에 쓰러졌다. 이거면 됐다. 지금이야말로 난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건 나의 업보에 이 삶을 견디지 못한 나의 패배다. 나는 웃으며 이 패배를 온몸을 열어 받아들이겠다. 바닥은 차가웠다. 쓰러진 나의 얼굴은 노란빛으로 가득 찼고 말라버린 눈물에 의해 얼굴은 더없이 건조하게 느껴졌다. 나는 눈을 감았다. 어째선지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 기억은 강이 흐르는 방향의 반대방향으로 걸어가는 그 남자의 뒷모습이었다.
분명 한숨 자고 눈을 뜨면 내 삶은 시작될 거야.
차를 타고 가던 나는 불현듯 내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으며 손에 핸들을 맡긴 채 어디론가로 향하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익숙한 이 거리들. 앞에는 파랗게 쏟아있는 건물들이 즐비해있었고, 인도 쪽에 사람들의 통행을 막으려는 듯한 나무들은 바람에 휘날리며 자신의 일부분을 세상에 날리고 있었다. 평소엔 막힐듯한 거리에는 뭔가를 잔뜩 실은 트럭들 뿐이었고 나는 그 사이에서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핸들 옆 에어컨 부분에 붙여둔 핸드폰 거치대와 처음 보지만 익숙한 누군가의 핸드폰. 그 핸드폰에 갑자기 전화가 오기 시작했고, 나는 전화를 들었다. 전화가 온 곳은 어딘가의 어린이집이라고 말했다. 전화 속의 그 여성은 나를 내 이름이 아닌 누군가의 엄마라고 칭했고, 나는 지금 가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지 못한 채로.
어린이집은 꽤나 외진 곳에 있었다. 숲이 시작되는 길의 입구에 자리한 어린이집의 앞마당에는 풀로 우거진 놀이터가 있었다. 그곳에 아이의 흔적이란 찾을 수 없었고, 지저귀는 새와 짝을 찾는 매미만이 소리를 채우고 있었다. 어린이집의 창문에는 불이 켜져있지 않고 마치 폐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입구를 찾기 위해 어린이집의 주위를 둘러봤나. 어째서인지 귀에는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가슴이 쑤신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담배를 찾기 위해 가방을 뒤적거렸지만 그곳에 나온 것은 몇 개의 열에 눌어붙은 사탕만이 들어있었다. 불현듯 스쳐가는 규칙 없는 이미지들과 수많은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갑자기 머릿속에 흘려 나왔다. 나는 서둘러 어린이집의 안으로 들어왔지만 그곳에는 누구도 있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니 내가 들어왔던 문은 이미 없었고, 내 앞에는 작은 손만이 바닥에서 튀어나와 있었다. 작고 연약하게 흔들리는 손. 주름 하나 없이 손톱의 분홍색을 내 눈에 비치며 나는 그 아름다운 형체에 눈이 멀어버렸다.
그 손을 잡기 위해 다가갔다. 허리를 굽혀 그 작은 손에 나의 흉터가 많은 손이 닿자
목안에 느껴지는 불쾌한 플라스틱의 맛. 손가락에는 무언가 꽂혀있고 안정적이고 반복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그 반복적인 소리는 내가 눈을 뜬 뒤로 점점 빨라졌고 내가 의도하지 않은 신음소리와 함께 무언가의 하모니를 이루었다.
문이 열렸다. 깜짝 놀란 한 25살 정도 돼 보이는 어린 여성이 나를 보더니 깜짝 놀란 표정을 하곤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말을 한 후 뛰어나갔다. 점점 멀어지는 그 발소리는 지금부터는 평생 혼자서 해나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허리를 굽혔지만 그 순간 엄청난 고통에 침대에서 옆으로 떨어져 나갔다. 목안에 연결된 무언가는 빠져나갔고, 손가락의 무언가도 나의 손톱을 집은 후에 떨어져 나갔다. 나는 콜록이며 몸을 비틀었다. 나의 복부에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났다. 아무 생각이 하기 싫었다. 도움을 구하기 위해 고함을 지르고 싶지도 않았고, 몸을 일으키고 싶은 마음까지 들지 않았다. 그러더니 문이 열렸다.
몇 번을 입은 건지 살짝 노란빛을 띠는 흰색의 가운을 입은 남자가 바닥에 누워있는 나를 보곤 무표정한 얼굴로 말 한마디 꺼내지 않고 나를 일으켜주었다. 그러고는 잠깐 어지러울 거라는 말과 함께 다시 문밖으로 나갔다.
나의 침대 옆에는 큰 다발의 꽃이 있었다. 대부분의 꽃은 검은색과 노란색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무슨 꽃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에 드는 색이었다. 그 옆에는 핸드폰이 놓여있었다. 지갑이 붙어있는 핸드폰 케이스를 열고 핸드폰을 확인하려고 하는데 얼굴을 확인하는 암호가 있었다.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을 한 순간 핸드폰이 켜졌다. 온 알림은 결제를 바라는 이메일과 어떤 사람의 문자가 있었다. 그 문자를 확인하니 곧 집에 간다는 문자가 와 있었다. 다른 내용은 뭐가 있을지 위로 스크롤해 보았다. 대부분의 내용은 곧 집에 간다는 문자와 심심하면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보라는 내용이 있었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내가 여기까지 온 경위를 천천히 생각을 해보
손을 잡은 나는 어째서인가 안심이 되었다. 이제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나는 몸을 감싸는 듯한 그 따뜻함에 만족스럽게 잠에 들었다. 그러자 그 공간에 순식간에 찢어지는 듯한 공간이 생겼고, 나를 감쌌던 그 따뜻함은 공간 속으로 전부 빠져나갔다. 그 공간은 내가 나가기에는 너무나도 작았기에, 나는 차가워진 그 공간에서 멍하게 앉아있었다. 어떻게든 나가고 싶었기에 그 찢어진 공간에 손을 가다댔
용케도 그런 짓을 하셨네요. 용케도. 용케 도라는 게 무슨 뜻이었지 하고 생각해 보았다. 해서는 안되는 것을 했다는 의미인가? 할 수 없는 것을 용기 내서 했다는 것인가? 이런 바보 같은 생각은 그만두자. 뭘 팔자 좋게 꿈을 꾸고 있는 거야 나는. 이젠 씨발 어찌 됐든 좋다. 그냥 받아들이고 지금까지 만들어둔 모든 걸 망가뜨리자. 그래야지만 지금 이 기분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 나는 핸드폰을 꺼내 들고 남편에게 전화했다. 날 살려줘서 고맙고 이런 일이 생기게 만들어서 미안하지만 네가 나를 얼마나 살리고 막든 결국 끝은 똑같을 거야. 지금까지 내가 쓴 글들을 읽었겠지. 더 이상 숨길 것도 없어. 나는 기회라는 도박에서 벗어나고 안심이라는 벽을 만들어준 너에게 감사하지만 나는 이제 기회도 안심도 없어. 내가 지금 가장 바라는 건 그저 그저 무 그 자체야.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어. 이 짜인 거미줄의 밖으로 떨어지는 건 나 자신을 잃는 일이겠지만 이젠 이 짜인 거미줄에는 진절머리가 나. 너의 잘못은 단 하나도 없어. 자책하지 말아 줘. 너를 만난 내가 잘못인 건 명확한 사실이야. 미안해. 나를 잊어줘. 이젠 정말로 지쳤어. 너에게 지친 것이 아니라 모든 입자 하나하나 그 모든 것에 지쳤어. 지금까지 참아왔던 나 자신이 대단해 보일지경이야. 나는 지금부터 걸어갈 거야. 시작이 어디었는지 알게 됐을 때 나는 비록 시작뒤에 숨어있는 무 그 자체로 돌아갈 수 있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