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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한치 Nov 12. 2024

장갑

(너와 나의 성장일기)

나에게는 조카 2명이 있다.

남동생의 아들 둘인데 올해로 첫째 조카는 초등학교 5학년, 둘째 조카는 초등학교 2학년이 된다.

기특하게도 방학 때가 되면, 일주일씩 부모님 댁에 놀러 와 온 집안을 들었다 놓고 간다.

조카들이 생기고부터, 가족들 모두가 웃을 일 들이 많아졌다. 그런 조카들이 늘 고맙고, 세상에서 가장 귀히 느껴진다.




2023년 1월.

겨울 방학 기간이라 부모님 댁에 놀러 온 조카들을 보러 갔다.

한창 클 때여서 이제 흡사 성인만큼이나 먹고,

활동은 운동선수 같이 한다. 활동량이 어마무시하다.

집 안에만 있는 것이 답답했던지, 동네 눈 쌓인 곳에 가서 눈사람을 만들기로 했다.


첫째 조카가 두툼한 패딩까지 다 입고서는 마지막으로 장갑을 끼려는 순간. 다급하게 달려왔다.


“고모, 장갑이 손에 안 들어가요. 도와주세요.”

“어 그래. 고모가 장갑 끝을 붙잡을 테니 손 넣어봐 봐 “


일 년 새 키가 큰 만큼, 손도 커버린 조카는 장갑이 맞지가 않았다.


“수현아, 손이 커져서 장갑이 안 맞네. 안 들어갈 것 같은데…”

“아니에요. 저번 달 에도 꼈는데 들어갔 단말이에요.”

“그래? 그럼 손을 요렇게 오므려서 한번 넣어보자.”


조카는 장갑보다 커버린 손을 오므리고 오므려서 넣어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수현아 안 되겠다. 새 장갑을 사야겠다. 너무 작아”

“아니에요. 엄마가 붙잡아 줬을 땐 들어갔는데…”


구깃구깃 자기 손을 장갑에 맞춰 들어갈 때까지 끙끙 대더니, 조카는 마침내 울음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눈사람을 만들려면 지금 당장 장갑이 필요할 텐데,

나가지 못할까 봐 걱정도 되었을 테고

엄마가 껴줄 땐 되던 것이 안되니,

낯선 환경이라 안된다 생각하니 당황도 했을 테고

왼쪽 손은 들어가는데 오른쪽 손은 들어가지 않으니, 처음 겪는 자신의 신체 변화에 놀라기도 했을 거다.



“수현아, 수현이가 한참 자라는 나이라 손이 한 달 사이 많이 커졌나 봐. 고모는 수현이가 키도 자라고 손도 커져서 너무너무 기쁘고, 축하해 주고 싶은데…”


“아니.. 그럼 왜 왼쪽 손은 들어가고, 오른쪽 손은 안 들어가요?”  서럽기 서럽다 이 친구..


“음 그건.... 왼쪽 손이랑 오른쪽 손 크기가 다른 건 말이지.. 한쪽 손을 더 많이 쓰면 그럴 수 있어.

고모 손 봐봐. 크기가 조금 다르지? “


조카는 눈물을 그치기 시작했다

“장갑이 없으면 눈사람 못 만들잖아요..”

할머니 장갑 찾아보자.


“이거 끼면 괜찮겠다.”


조카는 자신의 손보다 1.5배는 더 큰 할머니 등산용 장갑을 끼고서는 그제야 눈물을 그쳤다.

조금 크긴 하지만 벗겨질 정도는 아니니 이 정도면 만족한다는 느낌이었나 보다.




조카의 성장통을 보면서, 40이 넘어서도 성장통을 겪고 있는 나와 다를게 무엇인가?


나의 크기에 맞지 않은 곳에 있으면서,

나 자신을 꾸깃꾸깃 접어 넣고 있지는 않은지.

지금 당장 익숙한 이곳을 떠나면 큰일이 날 것 같아

두려움에 떨고 있지는 않은지.

아직도 처음 겪는 낯선 환경이라 당황한 것은 아닌지.


할머니의 등산용 잡갑을 끼고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신나게 겨울 방학을 보내고 있는 조카가

가슴 뜨거워지도록 대견하고, 응원해주고 싶은 나는


우리 부모님이 그리고 나의 주변의 사람들이 그렇게도 응원해 주어 성장할 수 있었음을.

다시 한번 감사해지는 하루였다.


수현아, 우리 하루하루 한치씩 자라나 보자.

나의 선배들이 그랬듯 너의 하루하루를 응원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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