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한치 Nov 15. 2024

나의 배역

(너와 나의 성장일기)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땐 늘 기대와 두려움이 공존한다.

나 같이 새로운 것에 겁이 많은 사람은 알 거다.

시작 전에 얼마나 많은 긴장을 하는지 말이다.


내가 만약 배우라면 새로운 작품을 고를 때 무엇을 고려하고 선택해야 할지. 그 기준이 명확해야 할 텐데.

그 기준이 참 애매했다. 일명 그냥 감에 맡겼다.

이건 그냥 해야 하겠다. 아니다 이건 좀 아닌데?

나의 기준은 늘 내 감에 맡겼다.

기준점이 나에게 있으니 늘 선택을 하고도 불안이 뒤따라왔다.





2019년 그때에도 감에 이끌려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서울 소재의 음악대학교에 3 시수 클래스 강의가 들어왔는데.

한 반에 40명 정도의 학생들이 수강 신청을 하는 필수과목이었다.


내가 아무리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을 한다지만.

형광등 밑에 설 용기는 없는데..

이미 못한다고 한다기엔 너무 멀리 와있는 상황이었다.


“아 몰라. 일단 해보고 안되면 그다음에 생각하자.”





1주 차 O.T 시간.


40명의 학생들이 나를 보고 있는데.

그 눈빛들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20대의 눈빛이라고 다들 반짝거리진 않는다는 것쯤은, 나도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을 시절이었다.


그 들의 눈빛에서 말하지 않아도 읽을 수 있었다.


“교수님. 저희 졸업반이라고요. 아시겠어요?

교수님은 저희에게 열정과 그 간의 노하우를 쏟아 내셔야 한다고요!!

최대한 노력해 주시라고요!! 저희는 준비가 되어있다고요. “


아…이 친구들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 거지?

부담스럽다. 도망가고 싶다.


그 순간. 난 또 감으로 알았다.


“뭐야? 여기서 내 배역은 이미 정해져 있었구나.”


내 선택의 여지와 상관없이 그들은 이미 열정적인 배역을 부여했다.



난 평소의 강의 준비 시간보다 3배는 더 투자해야 했고, 그간 수업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방식, 방법을 연구해야 했으며, 무엇보다 40명의 이름을 하루속히 외워야 했다.

또한, 나의 감정적 태도는 최대한 숨기고, 말을 아껴야 했으며, 발끝부터 공감능력을 끌어올려야 했다.



그들이 나에게 부여한 1년의 배역 덕분에, 그때 정리한 강의는 지금까지도 유용하게 쓰고 있다.






인생은 때에 따라 나에게 새로운 곳에 거하게 하고,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하고, 새로운 상황을 겪게 하며 그 안에서 나의 배역을 정해준다.


그 배역이 마음에 들던 들지 않던.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던, 할 수 없는 역할이던

중도 포기란 없다.


포기하면 영화는 개봉도 못하고 사라져 버릴 테니.


2019년 1년 동안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좋은 배역을 맡겨준 친구들 덕에,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싶어지고, 더 나은 강의를 만들 수 있었다.






이제 무엇을 선택할 때 나의 기준은 감이 아니라.

주어진 뜻을 알고 마음과 열정을 다 하는 것.

시작했다면 중도 포기란 없다는 것.



2019년. 지금 생각해도 참 좋다.










작가의 이전글 하모니 (Harmony)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