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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부자kms Nov 17. 2024

감 익는 소리

줄을 서시오~~~

매년 가을이면 찾아오는 특별한 설렘이 있다.

마치 첫사랑의 떨림처럼 달콤하고도 아련한 그것.

바로 하동 대봉감이다.


그 이름만으로도 입안 가득 고운 단맛이 번지는 하동 대봉감

예년 같았으면 직접 하동 길을 달려가 한 알 한 알 정성스레 골랐을 텐데,

올해는 택배로 받은 대봉감 덕분에 설렘 가득한 가을을 보낸다.




아침 출근길,

군기가 바짝 든 이등병처럼

일동 차렷, 줄지어 서있는 감들에게 말년 병장이 명령하듯,


"조금만 더 빨리 익도록, 알겠나?"


저녁 퇴근길이면 또 다른 기대를 안고 발걸음을 서두른다.

데이트 장소로 향하는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제대로 익어 있겠지?"


드디어 그중 하나가 가장 먼저 붉은빛을 띠기 시작했다.

수줍은 소녀의 볼처럼 발그스레 물들어가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하루하루 기다림으로 익어가는 홍시의 빛깔이

내 마음도 달콤하게 물들이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싱크대에 덩그러니 옷을 벗어던지고 행방불명된 홍시의 정체,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니, 누가 홍시를...?"

목소리가 저절로 높아졌다.


"내가 먹었는데, 왜?"

막내의 당당한 목소리가 집안을 가득 채운다.


"첫 홍시를... 반이라도 남겨두지..."

기운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나를 보며 막내가 씩 웃는다.


"또 익을 건데 그때 먹으면 되지!"


감이 뭐라고, 이렇게 섭섭할 일인가 나도 참,

허탈해하는 모습에 막내의 얼굴이 홍시보다 더 붉어졌다.


조용히 다가와 어깨를 기대더니,

"엄마, 홍시 혼자 다 먹어서 미안해, 너무 맛있어 보여서..."

말꼬리를 흐리는 막내 모습에 섭섭함이 물러간다.


때로는 서둘러 달콤해지고,

때로는 천천히 물들어가며.

홍시가 익어가고 있다.


어쩌면 우리의 마음도 이렇게 무르익어가는 건 아닐까?

서두르지 않아도, 조급해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저절로 달콤해지는 홍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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