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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언어의 사전을 만든다.

by 서강


아침 이슬에 젖은 길가 풀들을 쓰다듬으며 등하굣길을 걸었던 그 시절, 우리에겐 '만물박사' 같은 친구가 있었다. 공부는 그만그만했지만, 세상의 모든 지식을 꿰뚫듯 대답하던 그 친구를 우리는 만물박사, 백과사전이라고 불렀다.


비트겐슈타인의 날카로운 통찰, "사전은 언어폭력이다." 그의 말은 단순한 비판을 넘어, 언어의 본질적 폭력성을 꿰뚫는 깊은 통찰이다. 똑같이 사전을 보는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언어는 생명체다. 고정된 단어들의 나열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는 유기체, 마치 나비를 표본으로 고정시키는 것처럼, 사전은 이 살아있는 언어를 제한하고 해부하려 든다.


그렇다면 진정한 나의 사전은 무엇일까?


내가 겪은 수많은 경험, 느낀 감정, 쌓아온 지식의 총합, 그것을 타인에게 온전히 전달할 수 있는 나만의 언어, 바로 이것이 나만의 사전이다.

제시된 단어를 보고 몸짓으로 전달하는 게임, 해석은 제각기 달랐고, 결과는 늘 엉뚱했다. 엉뚱하게 흘러가는 것이 게임의 재미였다. 게임이니까 잘못 전달되더라도 웃고 넘길 수 있지만, 잘못된 정보는 많은 사람을 혼란에 빠지게 만든다. 진실을 구별하는 눈을 키우는 것의 필요성,


손님들과의 대화, 책을 읽으며 만나는 새로운 세계, 감정의 미세한 색채들. 이 모든 것이 나의 언어 곳간을 채워간다. 언어에는 놀라운 힘이 있다. 사람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는,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내면의 풍경을 하얀 도화지에 그려내는 것, 이것이 진정한 소통이며, 나만의 사전을 만드는 여정이다.


구름처럼 흩어졌다 뭉치는 언어. 때로는 맑게, 때로는 흐리게. 하지만 항상 살아있다. 나는 이 살아있는 언어의 주인공이 되기로 했다.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언어의 한계는 곧 세계의 한계다. 나는 타인의 사전에 갇히지 않고, 나만의 고유한 언어의 세계를 만들어갈 것이다. 내 사전은 단어가 아니라 경험이 되고, 문장이 아니라 감정이 된다. 매일 조금씩, 살아있는 나의 이야기로 채워져 가는 나만의 사전,


KakaoTalk_20250328_073914750_01.jpg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이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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