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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암 4기 극복기

12. 아니지? 아니야!

by 큰나무

아니야? 아니지!

미세먼지가 뿌옇게 내려앉아 햇볕조차 얼굴을 내밀지 않는 날. 멀리 보이던 L타워도 흐릿하게 사라져 버렸다. 바깥공기가 이렇다니, 외출할 땐 마스크를 꼭 써야겠다.

어쩐지 오늘의 우울한 하늘이 내 마음을 그대로 비추고 있는 것만 같다.


조직검사 결과가 일주일 후에 나온다고 했는데, 퇴원할 때 간호사가 잡아준 다음 진료일이 3월 19일이라는 게 문득 떠올랐다. 달력을 보니 생각보다 너무 늦다.


며칠 전 불편한 몸으로 걷다가 문득 떠올라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정말로 19일로 예약되어 있었다. 설명을 하고 나니 17일로 앞당길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너무 늦을 것 같아 다시 전화해 12일 오전으로 예약을 변경했다.


조직검사 결과는 5~6일이면 나올 터였다. 예전에도 일주일 걸린다던 결과가 5일 만에 나온 적이 있었으니, 이번에도 그러기를 바랐다. 혹시라도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면, 지체할 시간이 없다.

조기 치료만이 답이라고 믿었다.


병원 시스템을 따라가다 보면 병을 키운 후에야 치료를 받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함이 들었다.


아침을 먹고 부지런히 장운동을 했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좌욕을 마치고, 이제 기다릴 시간이다.


진료 예약은 11시 30분, 검사 결과가 나왔는지 확인하려면 최대한 10시 반까지는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그 시간이 너무나 길게만 느껴진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결과 나왔습니다."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예상대로다.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진료실 문이 열리고, 의사의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 심장의 고동소리가 들린다.


"암은 아닙니다."


휴—. 그제야 온몸의 긴장이 풀렸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더니, 나도 그랬다. 한시름 덜고 병원을 나섰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데, 담벼락 밑에 노란 꽃이 피어 있다. 그 앞에서 한 행인이 휴대폰을 꺼내 꽃을 담는다. 나도 모르게 멈춰 서서 따라 찍었다.

"개나리인가 봐요?"

"아니요, 영춘화예요."


개나리는 꽃잎이 네 개고 끝이 뾰족하지만, 영춘화는 꽃잎이 여섯 개고 끝이 둥글다고 했다.


이른 봄, 작은 노란 꽃이 내 발길을 붙잡고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긴 겨울을 지나, 다시 피어난 것처럼 나도 다시 한 걸음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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