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바람이 부는 어느 저녁, 그와 그녀는 오랜만에 함께 공원을 걸었다. 오해와 화해를 겪은 이후로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관계가 그렇듯, 완벽한 날만 이어질 수는 없었다. 작은 말다툼이 다시 시작된 것은 한순간이었다.
“오늘 회사에서 이런 일이 있었어.” 그녀는 그날 있었던 일을 자세히 설명했다. 동료와의 불화로 힘든 하루를 보낸 그녀는 그에게 위로받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조금 다른 반응을 보였다.
“네가 먼저 그 동료에게 솔직하게 얘기했어야 했던 거 아니야?”
그의 말은 단순한 조언이었지만, 그녀의 귀에는 자신을 탓하는 듯 들렸다. 피곤한 하루의 끝에서 그 말은 그녀의 기분을 더 상하게 했다.
“왜 항상 내가 잘못한 것처럼 말해?” 그녀는 날카롭게 반응했다.
그는 그녀의 반응에 당황하며 말했다.
“그런 뜻이 아니야. 그냥 앞으로 더 나은 방법을 찾아보자는 의미였어.”
하지만 그녀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항상 네가 옳다는 듯이 말하는 게 너무 지겨워.”
그의 얼굴에 서운함이 스쳤다.
“난 네가 힘들까 봐 말한 건데, 네가 그렇게 받아들이는 건 내가 어쩔 수 없잖아.”
대화는 점점 더 감정적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채 자신의 감정만을 쏟아냈다.
싸움은 점점 커졌다. 그동안 쌓아두었던 사소한 불만들이 하나둘 터져 나왔다.
“너는 항상 내가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네가 내 진심을 좀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좋겠어.”
감정이 격해지면서 두 사람은 서로의 말을 깊이 이해하려 하기보다 방어적으로 대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이런 식으로 대화하는 건 정말 지쳤어.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그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나도 똑같아. 내가 뭘 해도 넌 만족하지 않는 것 같아.”
멈춰 서기
갑작스러운 침묵이 찾아왔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말없이 서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슬픔이, 그의 눈에는 답답함이 담겨 있었다.
그 순간,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 이렇게 싸워서 얻는 게 뭐야?”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렇게 서로 상처 주는 것보다는 차라리 잠시 멈추는 게 낫겠지.”
두 사람은 공원의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그들 사이의 침묵을 채웠다.
그녀는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차분하게 말했다.
“내가 먼저 말할게. 너는 나를 걱정해 주는 걸 알면서도 가끔 그게 비난처럼 들려. 그래서 방어적으로 반응하게 돼.”
그는 그녀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녀가 말을 마치자 그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네가 힘들어하는 걸 보면 도와주고 싶어. 그런데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자꾸 엉뚱한 말을 하게 되는 것 같아.”
그녀는 그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싸움 중에도 서로를 걱정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앞으로 싸울 때는 서로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자. 감정적으로 반응하기 전에.” 그녀가 제안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그리고 내가 말할 때도 너를 탓하려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해.”
그날, 두 사람은 싸울 때 지켜야 할 몇 가지 규칙을 만들었다.
서로의 말을 끝까지 듣기
“중간에 끼어들지 말고, 끝까지 듣자.” 그는 손을 내밀며 말했다.
감정적으로 말하지 않기
“내가 느낀 감정을 솔직히 말하되, 상처 주는 표현은 피하자.” 그녀가 덧붙였다.
잠시 멈추기
“만약 대화가 너무 격해지면, 잠깐 쉬고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두 사람은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규칙들은 단순했지만, 그들에게는 큰 약속처럼 느껴졌다.
싸움 뒤에 남는 것
싸움이 끝난 뒤, 두 사람은 다시 평화로운 대화를 나눴다. 서로의 감정을 솔직히 털어놓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너랑 이렇게 싸우고 나면, 내가 왜 널 사랑하는지 더 알게 되는 것 같아.” 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녀는 웃음을 참으며 대답했다.
“나도 그래. 네가 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화가 나다가도 마음이 풀려.”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미소 지었다. 싸움이 그들의 관계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싸움은 두 사람 사이에 잠시 거리를 만들었지만, 그 거리를 메우는 과정에서 그들은 더 가까워졌다. 갈등을 피하지 않고 건강하게 풀어가는 법을 배운 두 사람은 앞으로 더 많은 어려움을 함께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얻었다.
“우리 앞으로도 싸울 수 있겠지?” 그녀가 장난스레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연하지. 하지만 항상 이렇게 건강하게 싸우자.”
그들은 손을 맞잡고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싸움은 끝났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