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를 디자인하라 part 1. 생각의 옷, 개념의 집>을 읽고
우리는 매일같이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정작 그것이 내 삶을 어떻게 빚어내는지 자각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언어를 디자인하라>는 그런 일상적 무심함에 작은 균열을 낸다.
“내가 쓰는 언어가 곧 나다.” 이 짧지만 단호한 문장은, 말과 삶의 거리를 밀착시키기 충분했다.
당신은 지금, 누구의 언어로 살아가고 있는가?
이 책의 첫 장은 언어를 ‘생각의 옷’이자 ‘개념의 집’이라 말하며 시작된다. 그 비유는 곧 나를 되돌아보게 했다.
나는 얼마나 자주 남의 옷을 입고, 남이 지은 집에 기대어 말해왔던가.
누군가의 말투를 빌리고, 누군가의 문장을 따라 하며, 내 안의 감각들을 타인의 언어로 포장해 온 시간들.
그 안에서 나는 분명 쓰고 있었지만, 과연 진정 내 언어를 가꾸고 있었던 것일까?
책에서는 세상을 다르게 보는 사람은 언어도 다르다고 말한다.
누군가의 문장을 읽은 뒤에도, 자기 언어로 다시 말할 수 있어야 진짜 ‘사유’가 시작된다고 한다.
내가 읽은 문장을 내 안에서 씹고, 해체하고, 다시 조합해 보는 과정 없이 그저 받아쓰기만 한다면, 언어는 내 것이 되지 못한다.
그렇게 남의 말을 빌려 쓰는 동안, 나는 점점 내 세계를 잃어간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언어를 ‘잘 써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 언어를 갖는 일은 곧 정체성을 세우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누군가의 말을 듣고, 책을 읽고,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자기 언어로 번역해 내는 일, 나만의 말로 해석하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은 결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그것은 사유의 훈련이자, 삶의 감각을 언어화하는 꾸준한 연습이다. 그런 사람만이 세상을 자기 방식으로 읽어내고, 존재의 언어를 만들어낸다.
사고의 깊이는 언어의 깊이와 맞닿아 있고, 표현의 밀도는 곧 존재의 밀도다.
말이 얕으면 생각도 얕아지고, 말이 단절되면 관계도 단절된다. 결국 말은 곧 관계이고, 관계는 곧 삶이다.
내가 어떤 언어를 쓰느냐는,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느냐와 다르지 않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나다운 글쓰기’가 무엇인지를 깊게 생각해 보게 됐다.
그저 문장을 예쁘게 꾸미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라본 방식으로, 내가 감각한 언어로 써내는 것.
언어의 깊이가 곧 사고의 깊이를 드러내고, 그 언어 안에서만 나라는 사람의 뿌리가 자란다. 그래서 결국, 말은 곧 인격이고, 글은 곧 정체성이다.
나는 나 스스로에게 이런 물음을 던졌다
“당신은 지금 누구의 언어로 말하고 있는가? 내 글에는 진정한 내 정체성이 있는가, 아니면 익숙한 표현과 배운 말의 나열만이 존재하는가?”
나는 가끔 스스로가 쓴 글을 읽어보며, 그 안에 내가 있긴 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었다. 어쩌면 나는 타인의 언어를 흉내 내며 ‘글쓰기’라는 행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문장들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익숙하게 반복하던 표현, 어디선가 본 듯한 구절들, 마치 ‘글’처럼 보이기 위한 장식된 말들. 그 안에 진짜 내가 있었는지 자문해 보았다.
이제는 조금 더 타인의 언어로부터 한 발 떨어져, 내 안의 언어를 발굴해보고 싶어졌다.
어설퍼도 괜찮을 것이다. 그게 나에게서 나온 말이라면, 거기서부터 진짜 나의 언어가, 내 정체성이 시작된다.
<내가 아는 언어만큼 낯선 세상이 열린다. 내가 모르는 언어만큼 세상도 어둠에 갇혀 있다.>
나는 이 문장을 오래 붙잡고 있었다. 언어는 빛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어 하나를 알게 된다는 건, 세상에 어렴풋이 있던 무언가에 이름을 부여하는 일이다. 그것은 이해의 시작이며, 두려움을 걷어내는 행위다. 내가 모르는 감정,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누군가의 태도, 내가 도달하지 못했던 사유의 영역들, 그 모든 것들은 사실 내가 모르던 언어 속에 숨어있다.
나는 더 깊이 읽고, 더 정확히 말하며, 나만의 문장으로 세상을 써 내려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시작은 결국, 자기 언어를 갖는 일에서부터 비롯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