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마음만큼 보이는 세상
생각해 보니 처음으로 아이들에게 '선생님'으로 불렸던 때는 2005년입니다. 딱 20년 전의 일이지요. 해외인솔교사, 현지 관계자들에게는 chaperon으로 불리었죠. 같은 교회에 다니는 지인이 1~2월 두 달간 캐나다에 다녀올 의향이 있는지 내게 물었습니다. 그 당시 서울 남부터미널 근처에 있던 번역회사를 그만두고 영상물 번역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던 때입니다. 새로운 경험을 좋아하는 1인으로서 고민할 필요도 없이 좋다고 대답을 했죠. 번역회사가 웹하드에 올려놓은 영상물과 대본 파일을 다운로드하여 한글이나 워드에 번역한 파일을 이메일로 보내면 되기 때문에 해외에서도 인터넷 환경만 된다면 충분히 작업을 할 수 있으니까요.
인솔교사는 나 포함 2명인데 우리의 역할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먼저 스물대여섯 명의 아이들을 인천공항에서 만나 캐나다 밴쿠버 공항을 경유해 캐슬가(Castlegar) 공항까지 데리고 갑니다. 캐슬가공항에서 아이들은 브리티시 컴럼비아주의 작은 마을 Creston(크레스톤)과 Nelson(넬슨) 두 지역으로 가야 하는데 현지 관계자의 차량을 타고 나는 크레스톤으로 남자 인솔교사는 넬슨으로 향했지요.
두 지역으로 나뉜 아이들은 미리 매칭된 현지인 홈스테이 가정에 1명씩 거주하고 학교에 다닙니다. 북미지역 학교는 겨울방학이 없으므로 한국의 겨울방학기간 동안 현지 학교에 그대로 참여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쿠트니 레이크(Kooteney Lake) 교육청과 협약을 맺어 여러 해동안 운영해 왔으므로 학교에서도 한국인 학생들에게 무척 우호적이며 홈스테이 관리라든지 여러 면에서 믿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지요. 크레스톤은 록키산맥과 쿠트니 호수가 위치해 있어서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자랑하는 작고 조용한 마을입니다.
마을주민들은 소박하고 친절합니다. 마을의 다운타운에는 작은 수영장이 딸린 짐이 있고 도서관, 도자기공방, 화가의 작업실, 요가 강습소, 아이스하키장, 컬링장, 동네책방, 다양한 공예품 가게, 하루에 한 번 영화를 상영하는 작은 영화관 등 다양한 문화공간들이 있습니다.
운전을 하다 보면 밤에 얆게 쌓인 눈의 제설을 위해 뿌려놓은 염화칼슘을 먹는 사슴들을 종종 마주치는 소소한 즐거움이 있지요. 크레스톤은 광활한 자연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의 평화로운 마을이므로 한국인 유학생들에게 안전한 곳이었습니다.
아이들은 현지 학교의 연령에 맞는 학급에 배정되어 공교육에 그대로 참여하고 홈스테이 가정에 구성원이 되어 일상생활을 함께 함으로써 영어에 하루 종일 노출되어 생활합니다. 두달간의 체험이 끝나고 현지에서 체류하길 원하는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조기유학으로 연장되기도 합니다.
초등 저학년부터 고2까지 아이들의 영어 실력은 천차만별이라 유창한 아이도 있고 몇 마디 겨우 하는 수준도 있다 보니 홈스테이와 학교에서 간혹 오해가 빚어지는 일들이 발생하는데 그럴 때 인솔교사는 아이와 현지인 사이에서 소통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2개월간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문제 상황이 발생하거나 조율해야 하는 일들이 발생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유학원 홈페이지에 올릴 아이들 수업장면 사진을 찍기 위한 정기적 방문과 스키체험을 갈 때 학교장의 요청으로 동행하는 일 외에는 문제 해결을 위해 홈스테이 가정을 방문하는 일들이 주를 이루었죠.
예를 들면 공작새 농장을 운영하는 호스트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한 아라는 어느 날 식빵 봉지에 쓰여있는 유통기한이 1주일이 훌쩍 지난 것을 보고 내게 울상을 하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글쎄 우리 홈스테이는 유통기한이 1주일이나 지난 식빵을 줘요."
알아보니 호스트 말이 "마트에서 집이 많이 떨어져 있다 보니 갈 때마다 식빵을 몽땅 사 와요. 식구들도 많고 먹다가 떨어지면 사러가기도 번거롭고. 그래서 이렇게 냉동실에 넣어두고 먹을 때마다 꺼내서 먹지요."라며 냉동실 문을 열어 보여줍니다. 주방에서 사용하는 냉장고 외에 저장창고에 따로 비치된 냉동고 안에는 식빵뿐 아니라 여러 음식들이 저장되어 있었습니다. 대도시에서 온 아라는 생각지 못했던 식생활 문화를 한 가지 알게 되었지요.
한 번은 정아의 호스트에게서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연락이 왔습니다. 아이가 호스트의 팔을 할퀴고 방에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들어가서 저녁을 먹을 때인데 나오지 않는다고요. 지금까지 홈스테이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호스트이고 나를 볼 때마다 무척 다정하게 대해주는 분이었죠. 장성한 자녀들은 모두 독립하고 부부만 사는 다정한 젊은 할머니 호스트입니다. 여전히 잠겨 있는 정아의 방문을 두드리며 한국어로 말을 붙이니 금방 문을 열어줍니다.
"정아야. 할머니한테 화난 일 있어? 네가 할머니 팔을 긁고 문을 잠갔다고 들었는데 무슨 일 있었니?"
"나는 엄마 말고 다른 사람이 나를 만지는 게 싫어요. 할머니가 나를 안으려고 해서 할머니 팔을 뿌리치다가 그런 거예요."
정아는 섬세한 아이라 친밀감이 높은 엄마 말고는 다른 사람들의 스킨십이 싫었던 거지요. 그걸 모르는 캐나다인 할머니는 10살 정도의 정아가 혼자 모르는 사람 집에서 지내는 게 어색하고 불편할까 봐 살갑게 대한다고 안아주고 애정을 표현한 것인데 정아에게는 견디기 힘든 행위였던 것입니다. 자초지종을 잘 설명해 주니 할머니는 정아에게 미안해하며 사과를 했습니다. 그리고 두 달 동안 아무 문제 없이 잘 지냈고 헤어지는 날 정아는 호스트 할머니를 안아주었죠. '진심은 통한다'는 말처럼 할머니의 애정 어린 진심이 통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좋게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2005년에 이어 2006년에도 1~2월 인솔교사로 아이들을 동행했는데 1월은 크레스톤에 2월은 넬슨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넬슨에 가자마자 하나의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고학년인 민지에게서 연락이 왔지요.
"선생님, 우리 호스트는 정말 맛없고 이상한 음식을 줘요."
호스트에게 바로 연락을 했습니다. 새로 바뀐 인솔자인데 아이도 만날 겸 집을 방문해도 될는지 물었지요. 흔쾌히 수락한 호스트는 저녁을 함께 먹자고 제안했고 같이 저녁을 먹었습니다. 호수 옆에 있는 언덕 위 목조가옥은 탁 트인 호수 전망이 좋았고 30대 초반의 젊은 부부에 어린 아기가 하나 있는 단출한 가족이었습니다. 민지는 얼마나 이상한 음식들인지 직접 먹어보면 알 거라면서 자기는 저녁을 먹지 않겠다고 방에서 나오지 않았지요. 음식은 단출했지만 먹어본 캐다나 음식 중 가장 건강하고 양질의 음식이었습니다. 육식을 하지 않는 부부는 유기농 채소로 음식을 조리하고 계란과 우유는 가끔 사용하는 채식주의자이지요. 견과류가 듬뿍 담긴 샐러드, 당근수프와 빵이 아주 맛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내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식단이었습니다. 하지만 민지는 한국에서 먹던 음식과 다르다는 이유로 홈스테이의 음식을 맛없고 이상한 음식으로 폄하했습니다. 충분히 설명해도 이해하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민지가 좋아할 육식을 조리해 달라고 할 수는 없지요. 홈스테이는 한국인 학생을 가족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체험을 하는 것이므로 평소의 식단을 유지하는 것이 맞으니까요. 민지는 새로운 환경과 문화를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차단해 버린 것이었습니다.
반면 결이는 고등학교 2학년 생으로 가장 나이가 많은 학생이었습니다. 결이는 유치원생 남아를 키우고 있는 미혼가정의 미혼모 호스트의 집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호스트는 결이가 다니는 현지 고등학교의 영어교사로 일하고 있었지요. 어린 자녀를 키우는 미혼모이다 보니 주말에 홈스테이 학생을 위해 컬링을 하거나 아이스하키를 본다거나 스파에 간다거나 쇼핑을 한다거나 하는 특별활동을 해줄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결이는 5세 아이를 돌보는 일도 생겼지만 결이는 전혀 성가셔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 가족 구성원이 되어서 어린 남동생을 돌보고 미혼모인 엄마를 돕는 것을 하나의 경험으로 삼은 것입니다. 그 아이가 불평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착한아이 콤플렉스로 거절하지 못하고 뭐든 괜찮다고 하는 그런 아이가 아니라 자존감이 강하고 언제나 누구와도 잘 지내는 진짜 행복한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어떤 어른이 되었을지 가장 궁금한 아이입니다. 그 아이가 편하고 좋은 홈스테이 가정에 머물렀다면 진면목을 볼 수 없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때론 불편하거나 어려운 환경이 어떤 사람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는 밝거나 어두운 두 가지 면을 볼 수 있고 어떤 면을 볼 지는 한 사람의 오롯한 선택이니까요. 한 사람은 자기가 보는 딱 그만큼 행복한 것입니다.
*다음 주 토요일에 연재될 2편은 해외인솔교사로서 크레스톤에 체류하면서 배운 개인적인 경험들을 이어서 나누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