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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인솔교사-두 번째 이야기

각자의 행함만큼 만드는 세상

by 조은영 GoodSpirit

2005~2006년 두해 겨울 해외인솔교사로 캐나다에 다녀온 것은 나에게도 잊지 못할 시간이었습니다. 2005년 1~2월은크레스톤에서 2006년 1월은 크레스톤, 2월은 넬슨에서 지내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특별한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이지요. 그 경험을 몇가지 나누고자 합니다.


한국 학생들이 다니고 있었던 학교 중 하나인 PCSS(Prince Charles Secondary School)의 학교장과 얘기를 나누던 중 크레스톤을 상징하는 꽃이 한국의 국화와 같은 무궁화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러자 학교장은 무척 반가워하며 한국을 소개하는 벽화를 그려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지요. 학교에서 모든 재료를 준비해 줄 것이며 미술실을 사용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아이들도 그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고 아이들과 제목부터 밑그림 디자인, 채색까지 모든 것을 함께 했습니다.


<The Beautiful Land Of Korea>라는 타이틀 밑에 태극기와 무궁화를 그 아래에 지도를 그린 후, 해당 지역을 상징하는 전통적인 문화재 곧 동대문, 장승, 탈, 돌하르방과 귤 등을 그려 넣은 한국스러운 작품이 완성되었습니다. 함께 그리는 시간도 즐거웠지만 완성작이 크레스톤 입구 도로 간판과 함께 세워졌을 때 크레스톤을 잠깐 스치는 낯선 이방인이 아닌 동질감이 있는 체류자로 환대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지요.

마을 벽화 그리기

또한, 학교장의 권유로 통역이나 아이들 지도를 위해 화이트 워터 스키 리조트를 서너번 동행한 것도 큰 즐거움 중 하나였습니다. 크레스톤에서 1시간가량 떨어진 스키장까지 노란 스쿨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것은 승차감 면에서 그다지 유쾌한 시간은 아니었지만 록키산맥을 따라 이동하는 설경만큼은 참 근사했습니다. 크레스톤 마을은 록키산맥을 끼고 있지만 겨울 기온이 그다지 낮지 않아 주로 밤에 눈이 내리고 눈이 쌓이더라도 낮에는 다 녹을 때가 많아 이동의 어려움은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산간지방은 눈이 밤낮없이 자주 내리고 제설작업이 만만치가 않아 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은 면은 있는 법이지요. 자연설이 풍부하므로 'White Water'라는 이름까지 얻게 된 스키장뿐 아니라 천혜의 환경을 이용한 자연 그대로의 스키장들이 여러 곳 있으니까요. 이 당시 우리나라의 스키리조트는 시즌에 따라 적설량이 적으면 인공눈을 뿌리는 경우가 많아 눈이 얇고 소금처럼 버석버석해서 넘어지면 너무 아프고 피멍이 들기 일쑤였는데 이곳은 눈에 묻힐 정도라 바닥에 내동댕이 쳐지더라도 푹신한 솜이불 위에 눕는 것처럼 아프지도 멍이 들지도 않아 아이들도 정말 좋아했습니다. 게다가 주중이라 그런지 텅 빈 리프트를 보면 알다시피 대기시간도 없어 마음껏 스키를 즐길 수가 있었습니다.

White Water Ski Resort
스키를 즐기는 아이들

그리고 내가 다니는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를 이곳에서도 찾을 수 있어서 매주 안식일 예배모임에 참석하고 상호부조회(성인 자매들) 회원들과도 우정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나와 한국인 학생들을 초대해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Korean Night'라는 활동도 할 수 있었고 선량한 감독님 가족을 따라 앨버타주(Alberta)에 있는 카드스톤 성전(Cardston Temple) 여행도 함께 갈 수 있었지요.

크레스톤 와드 상호부조회

그리고 80대 고령의 테일러(Taylor)자매님과 함께 한 우정도 소중했습니다. 그녀는 손자가 곧 한국에 영어강사로 갈 계획이라며 나에게 무척 다정하게 대해주었지요. 한 번도 그림을 배운 적이 없었던 그녀는 그림을 시작한 지 몇 년 되지 않았지만 어느 날 우연히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재미를 느낀 이후로 매일 동물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특히, 새를 많이 그리는데 그녀의 초대를 받아 방문한 집에는 수많은 새들이 저를 반겨주었지요. 나 역시 새를 무척 좋아하는지라 새를 보는 내내 '와!' 하는 감탄사와 만면의 미소를 지었고 그중에 마음에 드는 새 한 마리를 선물로 받았지요. 그 덕에 지금도 나의 집 거실 벽에 앉은 새와 매일 인사를 나눈답니다.

테일러자매와 선물 받은 새

해외인솔교사로서 크레스톤에 머무는 기간 동안 수많은 좋은 사람들과 소중한 경험들을 했지만 그중 가장 귀한 인연은 크레스톤에 머무는 기간 내내 나를 환대해 준 호스트 부부를 만난 것입니다. 바로 엘카(Elke)와 론(Lorne)!

엘카, 론, 그리고 나

독일인 엘카는 캐나다 여행 중 론을 만나 캐나다로 이주했습니다. 론은 트럭운전사이며 엘카는 마사지 테라피스트로 일을 했습니다. 두 아들은 이미 독립하여 멀리 떨어져 살고 있지만 그들에게는 언제나 좋은 이웃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들이 좋은 이웃이 되어주었기 때문이지요. 엘카는 이웃의 아이인 에반스(Evans)를 정기적으로 만나 도서관에 데리고 가서 함께 책을 고르고 산책을 하고 음식을 만들어주며 친할머니처럼 다정한 시간을 함께 보냈지요. 호스트로서 나에게도 캐나다의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만들어주었습니다. 이웃들을 종종 초대하고 그들의 집에 방문하여 현지주민들의 삶을 공유하게 해 주었고 나의 관심사를 물어보고 요가원, 동굴스파, 낚시, 유리공예, 수채화 화실 등으로 함께 동행해 주었지요.


엘카와 론은 또한 좋은 어른의 본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했습니다. 매일 론이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장을 봐오면 엘카와 함께 저녁을 만들었지요. 그들은 그날그날 신선한 재료를 구입해 함께 요리하는 시간을 하루의 큰 즐거움으로 삼았습니다. 나 역시 그곳에 머무는 동안은 함께 저녁을 준비하며 그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저녁은 매번 만찬이 되었는데 독일인 엘카 덕분에 유럽 음식들도 자주 접할 수가 있었지요. 독일 음식인 사우어크라우트(Sauerkraut)와 프랑스 요리인 에스카르고(Escargot)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사우어크라우트의 '사우어'는 '시다'는 의미며 '크라우트'는 '채소'를 뜻하는 발효채소 요리입니다. '에스카르고'는 프랑스어로 '달팽이'라는 뜻이지요. 그들의 음식은 최고급 레스토랑 음식보다 맛있었습니다. 솜씨가 훌륭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사랑이 듬뿍 담겨있었으니까요. 그들과 함께 머무는 시간을 통해 나는 지금의 남편과 부부로서 이상적으로 살아가는 좋은 모범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삶은 여행이고 모든 여행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행운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 행운을 잘 붙잡으면 삶의 항로에서 순풍을 타고 나아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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