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조은영 Good Spirit
Nov 20. 2024
내 책상이 생긴 지 한 달째. 처음부터 내 책상을 사려던 건 아니었다. 컴퓨터 책상 한쪽 다리가 느슨해져서 바꿔보려고 당근을 검색하는데 원목 컴퓨터 책상이 말도 안 되게 싸게 나와 있었다. 망설이면 늦는다. 바로 거래했다. 판매자는 집까지 배달해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보니 너무 작아서 우리 집 컴퓨터를 놓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마 386이나 486세대의 컴퓨터를 두고 썼던 모양이다. 못 되어도 2~30년의 세월은 족히 지난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견고했다.
‘집까지 배달해 주었는데 도로 가져가라고 할 수도 없고...’ 일단 집안으로 들였다. ‘애들이 너무 작아서 불편해할 거 같은데... 다시 당근으로 내놓을까.’ 며칠 고민하다가... ‘아! 내 책상으로 쓸까? 글을 쓰려면 나만의 창작 공간이 필요한데, 책상이 기본이지. 내 책상이 없었는데 잘 됐네.’ 생각의 전환은 빨랐다.
결혼하고 네 자녀를 양육하는 17년의 세월 동안 우리 집에는 수많은 식탁과 책상들이 오갔다. 현재 아이들 방에는 각자의 책상들, 거실에는 컴퓨터용 책상, 주방에는 6인용 식탁 등이 있으므로 나는 책상이 필요한 업무가 있을 때마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이 책상, 저 식탁을 전전했다. 이제껏 내 책상의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견물생심이란 말을 이렇게도 쓸 수 있는 건지. 책상을 보니 나한테 책상이 절실히 필요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각성이 일어나자, 묘한 흥분과 함께 마음이 설레었다. 내 책상을 안방 책꽂이 바로 옆에 붙였다. 책상 상판 여기저기 긁힌 자국 위로 붉은 꽃이 피어있는 녹색 천을 깔았더니 은은한 꽃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스탠드를 놓고 독서대와 연필꽂이, 노트, 스케치북, 읽고 있는 책 등을 놓았다. 정말 희한하다. 처음으로 신혼집을 마련했을 때의 안락함, 일종의 포만감까지 느껴졌다. 그리고 더 희한한 것은 책상이 생긴 뒤로 띄엄띄엄 쓰던 글을 매일 쓰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매일 아침 이 책상에서 하루를 열고 하루를 닫는다. 지금도 고요하게 이 글을 쓰며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스탠드 아래에 놓인 문구, “세상의 소란함과 서두름 속에서 너의 평온을 잃지 마라.”처럼 나는 평온하다. 나는 내 책상에서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었고 <눈물의 중력>이라는 시를 필사했다. 그리고 딸아이의 어린 시절 모습을 스케치했다. 또한, 매일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올리고 있다. 나는 매일 글의 숲에서 논다. 때로 공간은 마음에 담긴 생각들을 꺼내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