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드가 나왔는데 왜 즐기지를 못하니
지난주, 2025년 10월 11일 태풍상사 1화가 방영되었다.
이준호가 2년 만에 드라마로 찾아온 것이다.
'태풍상사'는 1997년 IMF 시대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16부작 드라마이다.
직원도, 돈도, 팔 것도 없는 무역회사의 사장이 되어버린 초보 상사맨 강태풍의 고군분투 성장기를 그린 드라마이다.
이준호는 이 드라마에서 춤추고 노래하고 달리고 엎어지고 드러눕고 깨지고 웃기고 멋지고 귀엽고 모든 것을 다 하는 강태풍 역을 맡았다.
감독님이 이준호 캐스팅에 매우 공을 들이고 가수이자 배우인 이준호의 모든 것을 보여주기로 결심하신 만큼, 태풍상사는 이준호의 전부를 담은 종합선물세트이다.
그리고 태풍상사는 2024년에 입덕한 나에게는 실시간으로 즐기는 이준호의 첫 드라마이다.
드라마 캐스팅 기사부터 포스터 공개, 포스터 촬영 비하인드, 티저 공개, 시사회, 제작발표회, 예고편까지.
이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것이 처음이다.
원래 하나의 드라마가 오기까지 이리 다양한 예고편이 나오는 것인가?
매일 쏟아지는 예고편과 회차별 스틸 사진, 하이라이트 영상을 소화하느라 정신이 없다.
나는 그동안 빙하기 비활동기 뭐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에도 실감을 못했던 비활동기 입덕인이다.
빙하기라고 하는데도 1년 넘게 틈틈이 떡밥이 나왔기 때문이다.
팬콘서트, 광고 행사, 사인회, 인터뷰, 화보촬영, 해외 무대 등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떡밥의 홍수 속에서 차츰 체감하는 중이다.
이것이 바로 활동기 배우의 덕질이로구나!
태풍상사를 볼 수 있는 각종 채널에서 드라마를 보고 네이버 캐스트, 유튜브 영상, 관련 기사, SNS를 돈다.
내 직업이 뭔지 나의 현생이 어떤 것이었는지 희미해질 정도로 태풍상사와 이준호에게 마음을 쓰는 요즘이다.
나는 그동안 나의 최애이자 유일애인 이준호의 드라마를 기다리고 기다렸다.
그래서 드라마가 나오면 즐겁고 행복하게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방영일이 가까워지자 너무 떨리고 긴장되기 시작했다.
내가 쓰고 만든 드라마도 아닌데, 내가 제작에 참여한 것도 아닌데, 내가 연기한 것도 아닌데!
시청자의 입장에서 편안하게 드라마를 즐길 수가 없었다.
한껏 긴장하며 1화를 보고는 쉽사리 잠이 들지 않았다.
일반 시청자들의 반응을 하나하나 살폈다.
잠들었다 깼다를 반복하며 얕은 잠을 자고 시청률이 나오는 오전 8시까지 다리를 떨며 결과를 기다렸다.
1화 시청률 5.9
올해 티비엔 주말 드라마 첫 방송 최고 시청률이라는 기사를 보고서야 조금 마음이 놓였다.
그래도 아직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우리 이준호가 최고로 잘 되어야만 했다.
며칠 이렇게 긴장했더니 심장이 아프기까지 했다.
물론 태풍상사는 이미 1, 2화에서 명작 드라마의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배우들 연기, 연출, 스토리, 대본, 미술, OST 모든 것이 완벽했다.
경제부흥에서 갑자기 IMF라는 격동의 시대를 겪은 사람들,
좌절하고 울기도 했지만 다시 용기를 내고 서로 힘이 되어주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스하게 그리고 있다.
분명 남은 회차에서도 시청자들의 공감과 눈물을 자아내고, 웃음과 위로를 건네며 손꼽히는 명작 드라마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내가 이준호 팬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지인들이 인사를 건네온다.
태풍상사 드라마 잘 보고 있어요. 이준호 멋있더라고요. 좋으시겠어요.
나는 내가 찍은 드라마도 아니지만 감사 인사를 한다.
그쵸. 감사해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은 걱정할 사람이 늘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20대에 알았다.
그리고 태풍상사와 상사맨 강태풍의 탄생을 지켜보며 나의 고민이 함 뼘 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생의 사랑과 덕질의 사랑에 차이가 있다면 현생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나의 염려를 피부로 직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덕질하는 내가 심장 아프도록 그를 걱정하고 응원하고 기도하는 것을 그는 아마도 멀리, 저 멀리에서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유튜브 좋아요에서, 화제성 수치에서, 콘텐츠의 댓글에서.
그가 온 마음, 온 정성, 온몸으로 연기한 태풍상사가 잘 되는 것이 나의 사랑과 걱정에 대한 보답이고 보람이다.
참으로 덕질이란 순수한 사랑이 아닌가.
아마 나는 태풍상사가 막을 내릴 때까지 편안하게 보지 못할 것이다.
괜찮다.
이게 쉴 새 없이 기쁨이 가득했던 이준호 덕질의 작은 대가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