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작성일 : 2025년 2월 17일
“그림 한 점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을까요?”
본격적인 관람을 시작하기 전 도슨트가 한 초등학생 관람객에게 질문했다.
“제가 그랬답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책을 보고 있었는데, 그 책에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 있었어요. 별생각 없이 페이지를 넘기려고 하는데 그림 옆 한 글자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그건 바로 <세로 3.1m>” 그의 말은 계속됐다.
“저는 그 이후로 돈을 열심히 모아 그림을 소장한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으로 날아갔어요. 실제로 이 그름을 본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었죠. 그 이후로 저는 12년간 스페인에 살며 그림 공부를 했어요. 그렇게 해서 여러분도 만날 수 있게 되었답니다.”
“이번 카라바조 또한 피렌체의 거장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예술가 중 한 명이에요. 20년 전 저처럼 여기 이 카라바조가 여러분의 인생을 완전히 바꿀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이번 전시가 시작됐다.
Intro
전시의 첫 공간은 어둠 속 창문 하나로 빛이 슬며시 들어오고 있었다.
명암, 빛을 통해 밝음과 어두움을 극명하게 사용하여 그림의 생동감을 불어넣는 카라바조의 표현 방식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공간이었다.
이로 인해 강한 몰입과 함께 본격적인 관람을 시작했다.
시대적 배경
균형과 조화의 르네상스 미술에 대한 반발로 발생하여, 비대칭과 사선 그리고 윤곽이 없는 데생이 바로크 양식의 특징 중 하나이다. 바로크라는 말은 포르투갈어로 '찌그러진 진주'를 뜻하는 'pérola barroca'에서 유래하며, 여기서 완벽한 진주는 르네상스를 의미할 것이다.
바로크와 르네상스의 차이를 들으며 작품들을 감상했다. 보는 이에게 안정감과 편안함을 주는 르네상스 양식과 비교해 보니, 바로크 양식의 그림들은 하나 같이 불안하고 기울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마치 올바른 규칙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자아를 찾고자 하는 질풍노도 시기의 청소년과 같은 느낌이랄까? 또한 대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의 그림들이 많았고, 그래서인지 밝은 부분이 더 밝아 보이는 효과도 있었다. 눈이 침침해지는 기분이었다.
이름의 유래
카라바조는 자신의 본명이 아니다. 그의 본명은 바로 미켈란젤로 메리시 (Michelangelo Merisi). 이름을 바꾼 이유는 당시 세계 최고의 예술가였던 미켈란젤로가 이미 존재했기 때문이다. 더 미켈란젤로스럽지 못할 것을 안 그는, 결국 작가명을 바꾸어 본격적인 미술가의 삶을 시작한다.
인물 특징
그는 고분고분하게 교회와 귀족이 시키는 대로 그림을 그리지 않는 반항아적 기질이 있었다. 또한. 가난한 자들과 자주 어울리며 사고를 치고 싸우는 게 일상이었다. 그런 그의 기질이 고스란히 그의 그림에 담겨있다. 대표적으로 자화상스럽지 않은 자화상인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이 그러하다. 일반적인 자화상에서의 올곧은 자세와 화려한 기품은 온데간데없고, 찡그린 표정의 역동적인 행위만이 담겨있다.
당시 교회와 귀족들에게 그림을 파는 것이 주업이었던 카라바조에게 있어, 이러한 탕아적 기질은 항상 적잖은 반감을 가져오곤 했다. 그러나 반대로 그의 독특한 색채가 결국 카라바조라는 거장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표현 방식
바로크 양식 특유의 빛과 어둠의 극명한 대비를 통해, 각 영역이 동시에 강조되는 효과가 있다. 또한, 그림 속 사람들의 표정이나 행위가 상당히 사실적이며 어떻게 보면 과격하기까지 하다. 그는 뒷골목의 상인, 거렁뱅이, 창녀와 같은 가난한 자들을 자신의 그림에 많이 활용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에 자신의 얼굴을 부여하여, 뭔가 ‘월리를 찾아라’를 보는 느낌도 들었다.
자신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그림 속에 그대로 표현되고 있었다. 잘 나가던 시절에는 조금 더 정제된 느낌이, 쫓기며 불안했던 시절에는 더 끔찍하고 폭력적인 모습들이 그림에 아주 잘 녹아 있었다.
결국 예술이란 작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표현의 수단으로는 음악, 미술, 조소, 건축, 책, 영화, 뮤지컬, 연극, 시 등 매우 다양하다. 단지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수단을 결정해 마음속 생각들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세상이 알리는 것, 그것이 예술의 본원적 의미가 아닌가 생각했다.
주요 작품
머리에 꽃을 꽂은 남성은 자신의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이 도마뱀에 물려 인상을 찡그리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는 동성애에 대한 경계를 말한다고 한다. 꽃을 꽂은 남자는 여성성을 가진 남성을 뜻하고, 남성의 가운데 손가락은 자신의 성기를 의미한다. 손 밑에 있는 붉은 열매는 동성애의 쾌락을 말하며 매우 탐스럽게 반짝이고 있다. 뱀에게 자신의 손가락을 물려 고통스러워하는 남자의 표정을 미루어 보았을 때, 열매와 같은 동성애의 쾌락은 결국 고통으로 귀결된다는 작가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이 작품에 대한 제목을 지어보라고 했을 때, 한 초등학생이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게이들의 만남]”
조용한 전시관 속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던 기억이 있다. 아이들의 창의력과 엉뚱함은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예술작품을 보고 이해하는 데는 어떠한 규칙도 규정도 없다. 만드는 작가도 당시 시대적인 배경이나 자신의 상황을 반영하기 마련이고, 이를 감상하는 이 또한 자기중심적으로 그것을 해석하고 음미한다. 그것이 예술을 즐기는 이유이자 흥미이지 않을까?
제목 맞추기는 계속됐다. 이번에도 한 초등학생이 대상을 수상했다.
그 제목은 바로 [아… 숙제하기 싫다.]
황홀경을 그리라는 교회의 요구에 카라바조는 적잖게 당황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황홀경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해 보지 못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창녀를 섭외해 오르가즘을 느끼는 듯한 표정으로 그 황홀경을 표현했다고 한다. 결국 창녀를 모델로 사용했다는 사실이 들어 나고, 그림을 의뢰한 교회 측에서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나 또한 학부 시절 뮤지컬 동아리를 할 때 경험하지 못한 감정을 표현하는데 크게 애를 먹은 기억이 있다. 레미제라블의 자베르라는 역할을 했고, 그의 주된 감정은 분노와 격정이었다. 20년 평생 한 번을 큰소리로 화내 본 적도 없는 나에게 있어서는, 상당히 도전적인 과제였고 풀기 어려운 문제였다. 8개월간 내가 하는 연기와 노래를 1,000번 이상 돌려보며 피드백을 했고, 결국 보는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정제된 분노를 만들어냈다. 당시 동료들의 냉정한 평가 하나하나가 참으로 듣기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 그림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극명한 대비를 보여주는 다윗과 골리앗이 모두 카라바조 자신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몸과 분리되어 고통스러워하는 골리앗의 머리는 살인 후 쫓겨 다니는 비참한 자신을 나타내고, 이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다윗은 어린 시절의 후회스러운 자신을 상징한다. 자신의 길었던 삶의 일대기를 한 장의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고도 놀라웠다.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그림의 이러한 신비로운 힘을 느끼며 강하게 몰입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뮤지컬을 보러 가기 전에 꼭 그 안의 넘버들을 여러 번 듣고 간다.
왜냐하면 이어폰으로만 듣던 노래들을 실제로 듣게 되면 그 감동이 배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전시를 더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 ‘카라바조 이야기’라는 책을 사서, 전시 전에 읽고 갔다.
20cm도 안 되는 책 속 그림만 보다가 실물을 보니 그 장엄함이 과연 대단했다.
앞으로 많은 전시를 보러 갈 텐데,
이렇게 미리 그 맛을 살짝 보고 가는 것도 전시를 더 즐겁게 관람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