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의미를 찾아서
작년 여름이었습니다. 회사 합격 소식과 함께 출근 날짜를 받았습니다. 보름 정도의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합격 소식은 가까운 몇몇 친구들에게만 알렸습니다.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해외여행이라도 다녀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실제로 SNS를 보면 취업이나 시험 합격 등을 해낸 친구들 중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 여행을 가거나 최대한 자유를 만끽하는 분위기입니다. 아무래도 일을 시작하게 되면 시간적인 여유도, 심리적인 느긋함도 많이 없기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이 시간을 흔히 ‘마지막 자유시간’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저는 해외여행을 갈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경제적인 이유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가 해외여행을 싫어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그때는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대신 졸업식이 남아있었기에 졸업식을 축하하러 오실 부모님과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고민했습니다.
무더운 8월의 한가운데 멀리서 오시는 부모님이었기에 오셨을 때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으면 했습니다. 더운 날 장거리 여행은 고됩니다. 그렇기에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우선 식사 장소를 열심히 알아봤습니다. 또 어디를 함께 방문하면 좋을지 열심히 고민했습니다. 가끔 서울을 오셨지만 부모님의 이번 방문은 조금 남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학생일 때 오시는 것과 직장인이 되어 서울로 오시는 것을 다를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학생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거의 없으니 학생 신분으로서는 부모님을 맞이하는 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추천받은 식당의 점심 식사가 참 맛있었습니다. 전쟁기념관에서의 시간도 군 복무하며 외출을 얻기 위해 방문한 것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더운 여름에 학사모와 학위복을 입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절감하며 땀을 닦을 훔쳤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자세를 잡아보라는 말씀을 고분고분 들으며 한 장이라도 더 기록합니다. 짧은 일정을 마무리하고 내려가셨습니다. 이것저것 신경을 써서 준비했음에도 제 준비가 부족했던 것 같고 며칠 지내시면서 불편하시지는 않았을지 신경 쓰입니다. 다 괜찮고 즐겁고 행복하고 뿌듯했다고 해주십니다. 물론 저도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서울에서의 시간은 대체로 혼자 보내거나 혹은 가끔 친구들을 만나 보내는데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정말 가끔 옵니다. 그래서인지 제가 느끼는 감정은 익숙하면서도 그립고 생경한 감정들입니다. 늘 당연했던 그 시간들이 이제는 1년에 겨우 열흘 남짓한 시간으로 줄었고 어쩌면 그마저도 더 줄어들 수 있다는 생각에 아쉽고 속상했습니다. 과거 당연했던 그 시간들이 이제는 당연하지 않고 감사한 시간들로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명절이 아니었지만 본가를 다녀왔습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냥 집이니까 다녀왔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만나고, 언제 만나도 반가운 벗들을 만나고, 술 한잔하면서 삶을 나누는 분도 뵈었습니다. 3박 4일의 짧은 일정이었고 알차게 뽈뽈 돌아다녔지만 늘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에서는 아쉬운 마음입니다. 그래도 이 3박 4일의 시간은 분명 더 오랜 시간 제 가슴속에서 잔잔하게 울려 퍼질 것을 알고 있습니다. 속상하거나 외롭고 힘든 순간에 행복했던 그때를 곱씹으며 다시금 힘을 낼 것입니다. 가족들과 함께 먹은 식사, 제 손가락을 꼭 쥐는 조카의 손, 친구들과 웃으며 부딪히던 술잔 그리고 한 번 잽을 날려보라고 하시며 손바닥으로 미트를 대신한 새벽의 복싱. 자주 있는 시간들이 아니기에 소중하고 특별합니다.
잠시 해외여행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스위스의 알프스산맥에 가면 입이 떡 벌어진다고들 합니다. 다녀온 친구들의 말에 따르면 새하얀 설산이 주는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저도 모르게 대자연에 대한 경외감 갖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기 전에 꼭 방문해야 하는 장소에 심심치 않게 이름을 올립니다. 또 인도네시아 음식 중 나시고랭이라는 음식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언론사가 시행한 온라인 조사에서 이 인도네시아의 볶음밥이 세계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 2위에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누군가는 자연이 주는 절경을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납니다. 또 누군가는 세계의 산해진미를 맛보기 위해 나그네가 됩니다. 다 각자의 소망과 목표를 갖고 떠납니다. 나의 여행에 대해 생각합니다. 사랑입니다. 그리고 감사함입니다.
저는 사랑하는 이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떠납니다. 혹은 나를 만나기 위해 여행을 시작하는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그리고 그들의 여행을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제가 그들에게 간다면 그들과 먹는 음식, 그게 무엇이든 세계에서 그 순간만큼은 제일 맛있는 음식입니다. 그들과 보는 그 광경이 어떤 광경이든 살면서 꼭 봐야 하는 광경이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들이 제게로 온다면 그들이 먹을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기 위해 열심히 알아보고 또 함께 하는 순간에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어떤 장면도 다 마음에 들어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조금 더 좋은 것들을 많이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에 정보의 홍수 속에서 옥석을 가리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게 있어 여행은 ‘사랑하는 이들과의 행복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미지의 장소에서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는 것도 좋습니다.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는 것은 늘 흥미로우니까요. 한때는 낯선 곳에서 하지 않던 것들을 경험하며 보내는 시간만이 여행이라 생각했습니다. 몰랐던 곳을 구경하고 몰랐던 이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의 방식을 겉핥기라도 해 보는 것이 여행의 정의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익숙한 곳, 알고 있는 곳에서 이들과 보내는 시간도 여행이라는 것을 배웁니다. 익숙하여 감사한지 몰랐던 사람들, 언제나 영원할 줄 알았지만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맞이하는 행복한 시간 그리고 늘 거기 있기에 당연하게 생각한 공간들에 대한 감사를 새롭게 느낍니다. 그리고 그것들에 대해 감사함을 다시금 느끼며 여행을 나만의 방식으로 정의합니다. 낯선 공간에서의 시간도 여행이고 익숙한 공간에서의 시간도 여행이 되고 있습니다. 익숙할지라도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존재들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매일매일이 새로우면서도 익숙하고 익숙하면서도 새롭습니다. 더 많은 날들을 보내는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서울이라는 도시지만 그 속에서도 새로운 일들은 매일 있습니다. 그 새로운 일들이 가끔 버겁지만 간절하게 꿈꾸었던 도시에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음에 행복합니다. 그리고 또 가끔은 익숙한 것 같아도 이 도시가 너무 새롭게 느껴집니다. 아직 가보지 못 한 동네도 많고 경험해 보고 싶은 것들도 참 많습니다. 또 가끔 본가에 내려가는 날이면 익숙한 장소에서 새로운 일들이 있습니다. 늘 집에서 먹던 반찬이지만 새롭게 하는 음식들입니다. 오랜 시간 함께 한 친구들이지만 늘 새로운 주제를 이야기합니다. 이 모든 순간을 사랑합니다. 이 모든 것들을 제가 오롯이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어쩌면 매일이 여행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