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연습실에 앉아있으면 반대편 방에서 연습하는 학생의 피아노 연습 소리가 들린다. 어떨 땐 너무 아름다운 곡이 들려와서 내 폰에 녹음한다. 연습실이기 때문에 같은 곡을 다시 듣게 되고, 연습하는 학생과 연습실을 이용하는 시간이 겹치는 만큼 나도 덩달아 곡이 어느 정도 익숙해진다. 연습실인데 방음이 잘 되지는 않는다.
오늘은 비가 왔다. 아침 8시 수업에 내야 하는 6쪽 페이퍼 때문에 그보다 일찍 도서관으로 향할 땐 우산을 썼지만 나올 땐 거의 내리지 않았다. 지금은 비가 그쳐서 땅만 젖어있고, 지나가는 차바퀴들이 물을 가르는 소리를 내고, 젖은 낙엽 향이 나고, 하늘이 아주 옅은 회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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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저녁인데, 몇 시간 전 나는 기쁜 소식을 받았다. 내가 바쁜 중에 노력하며 지원한 프로그램에 합격한 것, 그래서 돌아오는 봄 학기 한 학기를 옥스퍼드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것! 그렇게 기쁠 것을 예상하지 못했는데 정말 그 이메일을 읽고 믿기지 않아서 그대로 그것을 바라보면서 자연스레 찐 기쁨과 감동을 느꼈다.
그것이 마치 나의 수고를 알아준 것 같았다. 열심히 산 것이 맞다고, 격려해 주는 듯했다. 사실 이번 학기에는 가장 내 노력의 기준을 낮게 두고 산 것 같았다. 잘해야 한다는 마음은 여전하면서, 원동력을 점점 잃어가는 느낌이었다.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 아직도 맞는데, 그 마음을 다시 떠올리려면 일단 쉴 시간이 필요한 느낌이었다.
집이 너무 그립기도 했다. 여름 방학을 너무 알차게 보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는데, 유독 집에 있으면서 곶감도 먹고 고구마도 먹고 겨울을 오랜만에 한국에서 경험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점심시간에 방으로 돌아와 유튜브를 틀게 되고, 보면서 웃고,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고 있다가, 과제하려고 끌 때 되면 그렇게 보낸 시간이 아깝고 내가 뭐하고 있었지? 시간이 없네, 정신을 차려야지, 싶었다.
내가 다시 전처럼 학비를 내고 시간을 내며 대학을 다니고 있는 사람답게 정말 오로지 공부나 음악 연습에만 시간을 드린 것이 토요일인가부터다. 이번 주는 그러지 않았다면 정말이지 큰일이었겠다 싶다. 그 6쪽 페이퍼를 포함해서 할 일이 정말 많았는데 잠을 희생하며 해냈다. 목요일 오후부터는 확 여유가 생기지만, 이 시간에 다음 주 월, 화, 수, 그리고 목요일 오전을 위해 잘 대비해야 한다.
계속 이렇게 해 나가고 싶고 이것이, 나 스스로가 봤을 때 열심히 사는 것이 나에게 맞는 것 같다.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두려움이 일단 없어지고, 속으로 내 부모님께도 더 당당하고 죄송스러움이 덜하고. 그렇기에 더욱 감사함으로 대할 수 있게 된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내가 다시 판단 미쓰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과, 정신 차려야지!라고 하는 것으로 돌아가기는 싫다는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