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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DAY14_(2)옐로스톤에서 곰발자국을 보다.

세계일주 시작, 45일간의 미국 로드 트립

by 현존 Jan 09. 2025

241113


영하 5도로 내려간 날씨 속, 시동을 끈 차 안은 마치 얼음집 같았다. 차가운 공기가 코와 입으로 스며들며 깊은 잠을 방해했다. 새벽 내내 몸을 웅크린 채, 차갑고 얕은 잠 속에서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상태를 반복했다.


10번쯤 눈을 떴다가 감았다가를 반복하던 끝에, 동이 트기 시작했다. 짝꿍은 겨울 시즌에 차로 갈 수 있는 옐로우스톤의 가장 끝 지점인 Cooke City를 향해 운전대를 잡았다.

나는 꿈속인지 깨어있는 건지 몽롱한 상태로 짝꿍과 몇 마디를 주고받았다. 정신을 차리고 밖으로 나가 보니, 어제보다 훨씬 많은 눈이 쌓여 있었다. 땅에 가득한 눈이 해에 반사되어 보석처럼 반짝였다. 무슨 원리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모습은 황홀했다.

그리고 사람의 발자국이 없는 눈 위에는 다양한 동물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그중 하나는 정말 곰의 발자국 같았다. 호기심에 구글에서 검색해 보니 실제 곰 발자국과 똑 닮아 있었다. 우리의 추측일 뿐이었지만, 곰 발자국이라도 본 것에 신이 나서 곰을 직접 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랬다.

옐로우스톤에서 차박을 했더라도 루틴은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너무 추워 따뜻한 커피로 몸을 녹이고 싶었다. 그렇게 Cooke City를 이리저리 돌아다녔지만, 문을 연 카페나 식당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지금이 오전 9시 30분이라 이른 시간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쩔 수 없이 이 마을에서 문을 연 딱 하나의 편의점에 가서 뭐라도 마시기로 했다. 흥미로운 건, 이곳은 눈이 많이 와서인지 마을의 집들마다 스노모빌이 한 대씩은 주차되어 있었다. 편의점 문을 열며 "Hello" 하고 인사를 하니, 귀여운 강아지가 우리를 맞이했다. 갈색 눈에 삐죽삐죽 튀어나온 매력적인 털, 정말 인형처럼 귀여웠다.


작은 편의점이었지만, 캠핑용품, 각종 음료와 스낵, 따뜻한 커피와 핫초코 등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가게 직원 언니에게 물어보니 겨울 시즌에는 이곳이 거의 문을 닫는다고 했다.

우리는 핫초코 하나와 커피 하나를 결제했고, 짝꿍은 먹어본 핫초코 중 가장 진하고 맛있다고 했다. 커피도 편의점 커피 치고는 정말 맛있었다. 사실, 너무 추운 상태에서 먹어서 더 맛있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따뜻한 핫초코와 커피를 손에 쥔 채, 직원 언니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직원 언니는 우리처럼 여행을 좋아해서 아르헨티나, 인도, 발리 등 다양한 나라를 다녀봤고, 인도에서는 몇 달을 살아봤다고 했다. 우리가 인도를 여행할 계획이라고 말하니, 인도는 정말 좋지만 여자 혼자 여행하기엔 위험할 수 있으니 남자와 같이 다니는 게 좋다고 조언해 주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언니의 친구가 한국 학원에서 선생님으로 일하는데 한국이 정말 좋다고 해서 자신도 한 번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는 한국이 여행하기 좋은 나라라며 꼭 가보라고 추천했다. 그리고 나는 이곳 옐로우스톤에서의 삶이나 일하는 환경에 만족하는지 물었다. 놀랍게도, 미국에서는 국립공원 내 편의점이나 가게를 주인이 차리면, 직원들에게 숙박과 식비를 제공하며 본인은 이곳에서 살거나 머물지 않는다고 했다. 직원 언니도 이 편의점의 주인이 아니라, 제공된 숙소에서 살며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이곳에서의 삶에 매우 만족한다고 말했다.


물론 불편한 점도 있겠지만, 국립공원 내 가게에서 일하며 다양한 손님들을 만나고, 제공된 숙소에서 생활하며 월급까지 받는 환경은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 같았다.


가게에서 일하는 내내 강아지가 나에게 와서 만져달라고 졸랐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나는 두 손으로 정성껏 쓰다듬어 주었다. 신기하게도 이 강아지는 내 짝꿍에게는 가지 않았다. 강아지의 이름은 "바바"였고, 직원 언니는 바바가 수컷으로 여자를 좋아한다고 했다. 유기견 보호소에서 데려온 바바는 이곳에서 언니의 유일한 친구라고 했다. 애교 많고 사랑받는 게 느껴지는 바바의 귀여운 모습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편의점을 나서며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직원 언니는 "옛날에는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싶었는데, 이제는 순간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말했다.


순간을 산다.


어쩌면 정말 쉬운 말 같지만, 치열한 현대 사회에서는 순간을 산다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어제를 걱정하고 내일을 걱정하느라 정작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는 삶. 음식을 먹으면서도 다음 끼니를 고민하는 삶.


그래서 우리도 순간을 사는 것, 현존하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직원 언니와 서로의 삶을 응원하며 덕담을 주고받고 편의점을 나왔다. 이 추운 겨울 왕국에서 만난 편의점은 얼어붙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었다.

우리는 이제 옐로우스톤에서 나가 미리 예약해 둔 호텔로 가기로 했다.

1시간을 다시 달려 출구로 가야 했기에, 옐로우스톤의 풍경을 다시 눈에 담았다. 설산 아래로 시냇물이 흐르는 곳이 있길래 주차를 하고 내려보았다. 보기만 해도 차가워 보이는 물에 손을 담가 보았는데, 그대로 손이 얼어버리는 줄 알았다. 이 차가운 물에 짝꿍은 세수를 해보겠다고 했다. 세수를 한 직후, 물이 너무 차가워 그의 얼굴과 손은 빨갛게 변했다.


"으악! 진짜 너무 차가워!"


그는 물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생수로 다시 얼굴과 손을 헹궜다.

다시 차에 타고 달리던 중, 거대한 카메라 장비를 줄 세운 사람들 무리가 무언가를 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호기심에 지나칠 수 없어서 우리도 차를 세우고 내려갔다. 우리의 눈에는 그저 허허벌판만 보였지만, 무얼 보고 있냐고 물으니 저 멀리 늑대 무리들을 관찰하고 있다고 했다. 이건 관광객들을 위해 마련된 전문 관찰 투어였다.


가이드분이 우리에게도 한번 보라며, 고배율로 확대된 카메라 장비에 연결된 화면을 보여줬다. 몇십 배, 몇백 배는 확대된 화면 속에는 검은 물체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늑대였다.


우리가 오는 길에 봤던 동물이 떠올랐다. 늑대처럼 생긴 동물이 혼자 산을 오르고 있었던 것. 짝꿍이 캐논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보여주니, 가이드분은 집단으로 이동하지 않는 것을 보아 코요테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해 주었다.

확실히 늑대와 코요테를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은 새롭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이렇게 대자연 속에서 펼쳐지는 야생의 삶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감동을 주는 듯했다.

강아지가 귀여워서 올리는 사진

옐로우스톤의 상징인 독립문 같은 곳을 지나 출구로 나왔다.

옐로우스톤에서는 주파수가 터지지 않아 휴대폰을 쓸 수가 없었다.


우리는 호텔에 가야 해서 지도 앱을 켰는데, 여기서 1시간 30분이면 가는 거리가 지도 앱에서 찍어 보니 옐로우스톤 바깥쪽으로 삥 둘러서 4시간을 가야 한다고 한다.


설마, 지금 윈터시즌이라 도로가 막혀서 그런가?


우리는 갑자기 운전을 4시간 해야 한다는 게 믿을 수가 없어서 다시 입구로 차를 돌려 매표소에 있는 직원분께 물어보았다. 우리가 갈 곳을 찍은 지도 앱을 보여드리니 여기는 현재 도로가 폐쇄되어 있기 때문에 옐로우스톤을 가로질러 갈 수 없고, 삥 둘러서 가야 한다고 설명해 주셨다.

이럴 수가... 1시간 30분이면 가는 줄 알고 느긋하게 옐로우스톤을 즐겼는데 갑자기 4시간을 운전해서 가야 한다니!

순간 절망적이었지만,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에 즐기기로 했다.


2시간쯤 달리다 보니 배가 너무 고파서 짝꿍과 한 멕시코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잠시 멈췄다.

그런데 옐로우스톤에서 산 바이슨 뱃지가 분명 짝꿍의 왼쪽 옷에 달려 있었는데 갑자기 뱃지가 없어진 것을 알아챘다. 안 그래도 뒤에 고정하는 핀이 고무라 잘 빠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여기저기를 뒤져보았지만 뱃지는 없었다. 짝꿍과 나는 슬퍼하며, 근처 기념품 샵이라도 가서 다른 핀을 구매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우선은 밥을 먹자고 했다.


런치 메뉴들은 꽤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고, 우리는 파히타와 스트릿 타코를 주문했다.

짝꿍은 본인이 쏘겠다며 다른 것도 하나 더 주문하자고 했지만, 미국에서 멕시칸 음식점은 양이 많기 때문에 우선은 이것만 먹자고 이야기했다.

조금 기다리자 주문한 음식들이 나왔다. 놀라울 정도로 양이 많았고, 음식의 퀄리티도 훌륭했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음식을 먹어서인지 주문한 음식을 모두 비웠고, 만족스러운 배부름을 안고 식당을 나섰다.

오래된 차에서 얼굴을 살짝 내밀고 있는 대형 강아지가 마치 북극곰처럼 보였다. 그 애처로운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무슨 생각해..?" 정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지는 얼굴이었다. 

차에 타서 도대체 뱃지가 어디있을까 하며, 물을 마시려고 텀블러를 들었는데 텀블러 밑에 잃어버린 뱃지가 있었다. 우리는 너무 기뻐서 소리를 질렀고,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겠다며 가방에 쏙 넣어두었다. 

두 시간을 더 달려 결국 SpringHill Suites Island Park Yellowstone 호텔에 도착했다. 원래 1시간 30분이면 올 거리를 4시간 넘게 달려 도착하니, 그만큼 더 반가운 느낌이었다.

5일간의 차박을 마치고 드디어 호텔이라니!


기대 이상으로 호텔은 세련되고 쾌적하며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비성수기라 투숙객이 거의 없어서 호텔 전체가 조용하고 마치 독채를 빌린 듯한 느낌이었다. 짐을 옮기고 샤워를 마친 후 저녁을 먹고, 호텔의 수영장과 자쿠지를 이용했다.


오랜만에 수영을 하니 기분이 정말 좋았다. 특히 야외에 위치한 자쿠지에 우리만 있어서, 블루투스 스피커로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텀블러에 담아 온 와인을 마시며 간만에 편안한 휴식을 즐겼다.




백김밥로드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https://youtu.be/qWoOyCRAoj4?si=jfDZOCk03W7ZzoY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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