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예찬 일기
요즘 글을 쓴다 생각하면 길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갈피 잡을 길 없는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것 같다.
공부는 글쓰기에 비해 쉽다. 어렸을 때부터 난 모범생이었다. 모범생이 되는 길은 평탄한 넓은 길이다. 그저 선생님과 부모님 말씀대로 순종해서 살면 된다. 매일 열심히 공부하면 된다. 탁월한 결과는 아니더라도 시간을 들인 만큼 일정 결과가 나오는 공부는 최고의 투자대상이다. (물론 고등학교 이후의 공부는 별개다.) 그래서 나는 모범생으로서 항상 무난하고 얌전하게 넓은 길 위를 걸어왔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팀장님 말씀을 잘 따르면서 주어진 일을 하면 된다. 명령 값대로 산출 값을 내면 된다. 보고를 할 때도 중요한 부분만 직접적인 표현으로 명료히 보고하면 됐다. 이렇게 26년을 살아왔다.
그런데 글을 달랐다. 특히 시는 완전히 달랐다. 직설적이면 안 됐고 우회적이어야 했다. 우회적으로 접근하려면 직접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것 이상의 창의성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를 풀어낼 수 있는 문장력이 요구됐다.
아침 출근길에 마주한 가로등 빛이 비치는 근사한 낙엽을 보고 감탄했을지언정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문장력은 많은 책을 읽어야만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창의성은 가질 길이 없었다. 나는 한정 없는 결핍을 느꼈다.
사실 나는 글을 꽤 잘 쓰는 편이라 생각했다.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 개최한 시나 글을 쓰는 대회에서 크고 작은 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이후 자소서를 쓰는 등 글을 써야 할 때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국어선생님인 엄마와 목사님인 아빠가 항상 글을 교정해 주셔서 그랬을 수도 있다. 나는 글을 쓰기에 부족함이 없는 천혜의 환경에서 자라났다.) 그러한 면모들이 차곡차곡 쌓여 나의 자만심이 된 것일까. 치석처럼 단단하게 굳어져서 잘 깨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대학교 합평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내 시를 지적하셨다. 눈물이 났다. 충격을 받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자식을 낳는 기분으로 쓴 내 시가 ‘아주 잘못된’, ‘너무 직접적인’, ‘이것은 시가 아닌’, ‘나쁜 예’ 등으로 일컬어질 때 단두대에 올라와 처형을 받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통쾌했다. 스케일링은 당장 아프고 피가 나지만 시원하고 치아 건강에 좋다. 겸손의 마음으로 다시 첫 시작점에 섰다.
스케일링은 당장 아프고 피가 나지만
시원하고 치아 건강에 좋다.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변화가 필요했다. 그동안은 행복이니, 잘 사는 삶이니 무언가 뜬구름을 잡으며 겉핥기식으로 글을 썼지만 이제는 구체화시켜야 했다. 일단 많은 자양분이 필요했다. 같은 나무를 바라보아도 속이 옹골찬 시인의 시선과 일반인의 시선은 다를 수밖에 없다. 같은 시를 써도 자신만의 철학이 생긴 사람의 시는 다르다.
풍요로운 알맹이를 만들 시간이 왔음을 깨달았다. 경영학부를 박차고 나와 문예창작부에 편입한 만큼 보다 치열하게 공부해야 하겠다. 책도 취미로만 간간히 읽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파묻혀야 한다.
그리고 글을 써야 한다. 매일 가슴속에서 끓기만 하는 문장들을 꺼내야 한다. 두루뭉술한 무정형의 내 목소리를 뽑아내는 연습만이 남아있다. 참으로 어렵고 좁은 길에 서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하지만 정형의 모범생이 아니게 되어 좋다. 무정형의 어렵고 좁은 길을 걸어보고자 한다. 나는 글을 쓰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