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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형 Nov 07. 2024

4. 가족 증명

순간 예찬 일기


 외삼촌이 돌아가셨다.


 외삼촌과는 추억이 많지 않다. 초등학생 때까지는 부모님과 함께 명절마다 외갓집인 도초에 갔다. 나는 숫기가 없는 탓에떠들썩한 외갓집 가족들을 뒤로하고 작은 방 침대에 홀로 누워서 할아버지의 눈깔사탕을 먹었다. 가족들과 곧잘 어울리곤 했던 동생은 가끔씩 나에게 찾아와 말동무가 되어 주었다. 가족들은 쾌활하고 유머러스한 성격이어서 나는 그들에게 거리감이 느껴졌다. 중학생 때부터는 시험공부를 핑계로 더 이상 내려가지 않았다. 외갓집 가족들과 나의 거리는 일정했다. 가족이란 이름 아래 좁혀지지도 더 멀어질 것도 없는 평행선의 시간이 흘렀다.



 내가 25살이 되었을 때 우연한 기회로 도초에 내려가게 되었다. 외삼촌은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계셨다. 도초에 가려면 목포항에서 페리호를 타고 2시간 이동해야 한다. 목포항에 나를 데리러 오신 삼촌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부모님 없이 삼촌과 대면한 건 처음이었다. 당신과 내가 가족이라 주장할 근거가 없었다. 내가 당신의 조카라는 것을 내 이름을 대며 설명했다.


 외삼촌과 배에 탔다. 외삼촌은 신이 나셨던 건지 사촌들에게 내가 왔다고 전화했다. 내게도 전화기를 넘겨주셨지만, 삼촌보다 한 발짝 멀리 있는 그들에게 헛헛한 안부인사를 전할 뿐이었다. 외삼촌과 수화기 너머의 사촌들 간에는 어색함이나 주저함이 없었다. 그들은 증명 과정 없이도 가족임이 당연해 보였다. 나는 외삼촌이 항구 근처 시장에서 장 봐오신 생선들의 비릿한 내음만을 맡고 있었다.


 배에서 내려 외갓집으로 가기 전에 도초 명소인 하트섬을 구경하러 갔다. 차를 타고 구불거리는 도로를 한참 올라가서 하트 모양의 섬을 내려다보았다. 지나가던 경찰관이 가던 길을 멈추고 우리의 사진을 찍어주시겠다 했다. 경찰관은 삼촌과 내가 가족임을 한눈에 알아보았을까? 삼촌과 나는 하트섬을 배경 삼아 가족으로서 사진을 찍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삼촌이 시장에서 장 봐온 민어를 회 떠서 먹었다. 대가가 없는 한 상차림이었다. 차려진 상은 먹는 이가 가족인지 이방인인지 알았을까? 다음날 짐을 챙겨서 서울로 바로 올라왔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 마냥 빠르게 시간은 흘렀다.



 26살이 된 올해 삼촌이 돌아가셨다.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없었다. 가족이 죽은 것에 슬퍼하지 않는 나 자신이 무서웠다. 슬픔의 감정이 가족이라는 단어 아래 파생되는 것이 당연하다 여겨지는 내 죄책감 때문이었다.


  장례식장에 뒤늦게 도착했다. 외삼촌의 딸인 하늘, 별이 울고 있었다. 그들은 흘린 눈물에 스며들어 사라질 것만 같았다. 사진 속 삼촌은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눈물로써도 서로의 시선은 얽히지 않고 있었지만 그 자리에서 그들은 가족임이 눈물로써 증명되고 있었다.


  화장장으로 이동해 화장을 마쳤다. 잠시 기다리니 뼛가루가 담긴 유골함이 나왔다. 버스를 타고 납골당으로 이동해서 안치단에 유골함을 넣었다. 마지막 인사를 하는 별은 태양이 작열하는 뜨거운 도로 위의 아지랑이 같았다. 태양의 뜨거움은 공평하다. 순간 내 눈에서도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가족이라는 이름은 결정된 순간 서로의 마음에 씨앗을 뿌리고 뿌리를 내리며 싹을 틔운다. 그 싹이 자라나는 속도는 느릴지언정 서로에게 존재한다. 깊은 심연을 헤치고 싹을 발견한 나는 얼마 되지 않는 추억을 붙잡고 슬퍼했다. 슬펐지만 기뻤다. 피와 살로 맺어진 공동체 안에서 증명 과정은 무의미했다. 근거 또한 필요 없었다. 그저 서로 마음껏 사랑하면 됐다.  


피와 살로 맺어진 공동체 안에서
증명 과정은 무의미했다.
근거 또한 필요 없었다.
그저 서로 마음껏 사랑하면 됐다.

 죽음의 시간에 서있는 삼촌에게 시를 지어 올렸다. 시간의 다음 역에서는 피와 살의 속박에서 벗어난 채로도 우리는 가족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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