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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을 나누는 것의 의미를 알려준 J에게

by 봉남


J야. 도덕 도우미 활동은 너에게 어떤 의미였니?

도덕 시간은 늘 무거운 짐이 가득했는데, 쉬는 시간마다 와서 수업 준비물을 함께 나누어 드는 일이 너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겠지.

넌 수많은 도덕 도우미들 중에서 단 한 번도 빼먹지 않고 수업 준비를 도우러 온 유일한 도덕 도우미야. 너희반 도덕 수업은 네가 있어 훨씬 도덕스러운 시간이었어.


속 깊은 네 모습을 보며 감동한 순간이 많았어.

중 1의 J가 가진 근사한 마음.

참 소중했고 오래 기억하고 싶어.

너 역시 나와 같은 마음으로 너의 마음을 대해주길.

항상 몸, 마음 건강하렴.




J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일화가 있습니다.

감정카드를 활용한 비폭력대화 연습 수업을 한 날이었어요.

학생들끼리 힘들었던 경험을 나누고, 서로 욕구와 감정을 읽어주는 시간.

모둠별로 대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교사인 저는 학생들의 대화를 다 들어볼 수 없어 아쉬웠지요.

수업 후 학생들의 표정은 대체로 한결 편안해 보였습니다.

교사인 저는 말대신 그 모습에서 대답을 듣는 셈이었습니다.


그날은 수업이 다 끝나고 도덕 수업 도우미인 J와 교구 정리를 하다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어요.


J에게 물었습니다.


”오늘 친구들이랑 감정 나누기 해보니까 어땠어? “

해맑은 표정으로 J가 답했어요.

”음. 친구들의 흑역사를 알게 되니까 좋았어요. “


짧은 순간이었지만, 흑역사라는 단어에 마음이 꽂혀


‘뭐지? 흑역사를 알게 된 게 좋았다고? 내가 학생들에게 괜한 빌미를 준 건 아닌가’


갑자기 우려스러운 마음이 확 올라왔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물었어요.


”응? 그게 어떤 면에서 좋았어? “


”친구들의 흑역사를 알게 되니까, 어떤 부분을 건드리면 안 되는지 알고 조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섣불리 오해할 뻔하다가 J의 답에 감동했습니다.


'아픔을 나눈다는 것의 의미가 J의 말과 같은 의미일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아픔은 약한 부분이지요.

누군가의 약한 부분을 보호해 줄 대상으로 여기는 J의 깊은 마음이 고맙고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제 수업 의도는 서로 아픔을 공감하고, 자기와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었는데요.

언제나 그렇듯 제 의도보다 학생들은 더 큰 존재라는 생각을 했어요.

의도 너머의 것들을 저에게 배움으로 줄 만큼요.


당시 이 일화를 제 SNS에 짧게 적어두었습니다.

그때 제 기록에 평소 존경하던 선생님께서 댓글을 달아주셨어요.

"한번 더 묻는 일이 우리의 일인 것 같아요."라고요.


'한번 더 묻는 일'


생각할 때마다 여러 가지 의미로 다가오는 말이었어요.

댓글을 달아주신 선생님께

"선생님! 한번 더 묻는 일은 왜 교사의 일일까요? 정확히 어떤 뜻인가요?"

언제든 질문할 수 있었지만, 저는 묻지 않았어요.


제 안에서 하나의 공처럼 그 말의 의미를 굴리고 또 굴려보며 답을 찾는 시간이 좋았거든요.


함부로 평가하지 않기.

기다리기.

두 번, 세 번 새로운 기회를 주기.

.

.

.


굴릴 때마다 이렇게도 보이고, 저렇게도 보이는 말.


어쩌면 인생이라는 배움의 여정에서 한평생 학생인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말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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