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뒤엔 맞다고 답변할 수 있기를 바라며
2018년부터 심리학 책을 읽기 시작했다. 22살 때였고, (재수해서 대학을 간 이후) 대학교 2학년 재학 중에 있었다. 심리학 책을 읽다보니 뇌과학 책도, 철학 책도 읽기 시작했고, 유튜브에서 관련 영상들을 플레이리스트까지 따로 만들어 저장해두며 열심히 봤다.
왜 그리 열심히 읽었을까? 처음엔 삶에 대한 나의 감상이 뭔가 잘못된 지 오래라는 느낌에 위기감을 느껴서 읽기 시작했다. 왜 내 주변엔 다 청춘의 자신감을 가지고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는 것만 같은데, 나는 왜 이리 나도, 타인도, 세상도, 삶도 싫을까. 사람들이랑 대화를 하고, 술자리도 가고, 소소한 성취들을 이뤄도 순간뿐, 왜 이 근본적인 마음은 좀처럼 변하지 않을까. 피해의식인 것 같은데, 그게 맞는 것 같은데, 왜 저 구석 안 쳐다보고 싶은 내 솔직한 감정은 그렇게 느끼는 걸까. 그래도 남은 삶을 이런 정서에 계속 잠식되어 보내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처음엔 살려고 읽기 시작했다.
읽다보니 재밌었다. 이전엔 몰랐는데 나는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가장 궁금해하는 사람이었다. 나도 그렇고, 타인도 그렇고… 그래서 많은 의문이 해소되기도 하면서 많은 나의 인지 왜곡도 완화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22살의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훨씬 덜 혼란스러운 상태가 되었다고 스스로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요즘 나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바로 ‘내가 예민한 사람이라는 것에 대한 피해의식’이다.
어렸을 때부터 내가 예민한 사람임을 마음 속으로 짐작했던 것도 같다. 그러면서도 사실 인정하기 싫어했다. 괜히 내가 예민한 성격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또 남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유난 떠는 느낌이었고, 또 동시에 예민함이라는 키워드에 부정적인 느낌도 받았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외면했지만 관련 도서들, 영상들을 보면서 빼도 박도 못하게 인정하게 되었다. 나는 굉장히 예민한 사람이었구나. 이걸 외면하고 있으니 나에 대한 이해가 어려웠구나. 근데 내가 예민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왜 아직은 전혀 반갑지가 않을까.
예민함을 다룬 수많은 책들에서 예민함은 축복 혹은 저주라고 공통적으로 이야기 한다. 단점으로 작용할 부분도 있겠지만 장점도 많으니, 어떻게 이해하고 개발하느냐에 따라 분명 축복이 될 수도 있다고. 그런데, 다 논리적으로는 알겠는데, 나는 아직 멀어서일까. 머리로만 이해되고 마음으로는 와닿지 않는다.
나는 삶은 ‘자신에게 벌어진 일들에 대한 그 개인의 감상의 총합’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안 그래도 생존을 위해 부정적인 것에 대해 더 강한 인상을 받도록 진화했다는 호모 사피엔스인데, 그 개인이 예민한 기질까지 가졌다면 안 그래도 클 그 고통을 배로 느낀다는 것 아닌가. 타인의 감정을 잘 캐치하는 것을 장점으로 활용해도, 자신의 감수성을 창작 능력으로 잘 활용해도, 상대적으로 기쁨도 배로 느낀다고 해도 그게 솔직히 와닿지가 않았다. 이 부정 편향성과 예민함의 콜라보레이션이 줄 삶에 대한 감상이 워낙 강렬하여 내 전체 삶에 대한 감상을 흐려놓는다면, 남은 장점들이 이를 상쇄할 만큼 강력할 수 있을까? 차라리 그런 재능 없이 안 예민한 것이 좋지 않을까? 불공정하게 느껴졌다. 맞다, 피해의식이다. 나에게 도움이 안되겠지. 그런데 아직 솔직하게 그렇게 느낄 때가 종종 있다.
6년전 처음 책을 집어 들었을 때가 생각이 난다. 그 때도 남은 삶을 계속 고통과 권태에 압도되어 살아갈지 말지 기로에서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피해의식에 끊임없이 사로잡힌다고 내 고민을 대신 해소해 줄 사람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축복이 될 수 있다면 축복으로 만들어야 하겠지, 달리 선택지가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이 기질을 인정하고 수용해주어야 한다는데 시간이 좀 필요할 것도 같다.
부정적인 것을 포함해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가정조차 하기 어렵고, 이 괴로운 기질을 승화시키기 위해 이렇게 글도 쓴다. 글을 쓰다 못해 이젠 소통, 관심, 인정에 대한 욕구를 더 해소하고 싶어 브런치 스토리에 연재도 하게 되었다. 고통으로 인해 시작한 일이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니 삶은 아이러니 하다. 그래도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니까 지금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걸 보니, 좀 희망이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예민함은 정말 축복이 될 수 있을까? 쉬운 과정은 없겠지만 그게 맞다고, 미래의 내가 그렇게 대답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