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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메시를 운동장으로 1편

처음 만난 중딩한테 욕 날린 썰

by 브라질의태양


사이버 메시를 운동장으로

진형(가명)이는 내가 사례관리 업무를 담당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만나게 된 중학생이다.

새벽에 라이브 중계를 하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를 늘 챙겨 보고, 온라인 축구게임으로 밤을 새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었고, 전임자와 함께 학업 숙려제를 통해 겨우 중학교 졸업 일수를 채운 상태였다.

고등학교 진학도 포기 상태였던 진형이. 과연 사이버 메시는 운동장으로 나올 수 있을까. 초보 사례관리자인 나를 만나 울고 웃었던 날들의 기록을 담은 '사이버 메시를 운동장으로.'

※ 사례관리
'사례관리'는 당사자를 개별화하여 상당 기간 함께하면서 여러 자원을 활용하여 복지를 이루고 더불어 살게 돕는 일



사례관리 업무를 담당하게 되면서 업무 인수인계를 위해 전임자와 함께 진형이를 만나러 가정방문을 갔다.


"아이고 선생님. 진형이가 어제 또 늦게까지 게임하다가 아직 자고 있어서 못 만날 것 같아요." 수화기 너머 진형이 어머니 목소리가 들렸고 전임자는 이런 일이 익숙하다는 듯 "네 어머니. 내일 다시 연락하고 찾아뵐게요."라고 전화를 끊었다.

새벽까지 축구 게임과 경기를 보며 밤낮이 바뀌어있었고 불규칙한 생활로 인해 만남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며칠 뒤 다시 약속을 잡고 드디어! 진형이를 첫 대면하는 날이었다. 전임자는 그동안 안부를 물었고 모든 질문엔 단답으로 답하며 눈도 제대로 맞추지 않았다. 그리고 옆에 어색하게 서있는 나를 앞으로 만나게 될 사회복지사라고 소개했다.

키는 나보다 10cm 넘게 커 보였고 덩치도 두 배는 되어 보였다. 흠칫 놀란 나는 무슨 말부터 해야 될지 몰라 "안녕. 앞으로 자주 보게 될 조상현 사회복지사야. 진형아, 학교 다니기 ㅈ같지?"라고 아무 말이나 씨부려 버렸다. 중학생이 친근하게(?) 생각할 단어로 진형이의 상황을 '공감해 주기' 했다고 하면 너무 경박한가.

옆에 있던 전임자도 놀란 토끼 눈으로 나를 바라봤고 내내 땅만 보고 있던 진형이도 고개를 들어 처음으로 나와 눈을 마주했다. 그동안 봐왔던 사회복지사, 학교 선생님 등 진형이가 만나왔던 선생님 중 이런 상스러운 말을 했던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소기의 성과는 달성한 건가 "선생님도 학교 다닐 때 진짜 학교 가기 싫었거든. 맨날 일찍 일어나야 되고, 공부는 재미없고, 수업 시간에도 엄청 많이 잤어."라는 말을 땅 한 번, 나 한 번, 번갈아 보며 내 말을 '듣고' 있는 듯했다.

"선생님은 프리메라리가(스페인축구리그)는 안 보고 EPL(영국축구리그)만 보는데. 아스날 팬이야! 너는 어떤 팀 응원해?", "바르셀로나요.", "오 바르샤! 바르셀로나면 당연히 메시겠네?", "네 메시죠." 하고 살짝 입꼬리가 올라가는데 나 완전 심쿵 했잖아.

진형이가 축구를 좋아해서, 나도 축구를 좋아해서 정말 다행이라 생각 드는 순간이었다. 이게 공감대지!

첫 만남부터 너무 부담스럽게 하면 안 되겠다 싶어 적당히 이야기 나눈 뒤 "자주 보자!" 인사하고 돌아왔다.


복지관으로 돌아오던 차 안에서 전임자분이 "선생님이 욕해서 조금 놀라긴 했는데 진형이가 그래도 반응을 보이는 것 같았어요. 새로운 사람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 게 아주 느리고 친해지는데 꽤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인데 축구라는 공감대가 있으니 앞으로 기대가 되네요."라고 응원해 주었다.


사이버 메시, 운동장까지 나올 수 있게 내가 잘 도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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