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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육점 사장이 된 사회복지사 1편

by 브라질의태양 Jan 06. 2025



15년 6월 첫째 주 목요일


"상현아 정육점 한번 해볼래?"

출근하는 아들을 불러 세우더니 엄마가 갑자기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하셨다.

"최사장 몸이 안 좋아서 이번 달까지만 하고 그만둔다네. 엄마가 가만 보니 일은 그리 안 많은 거 같은데 장사도 잘 되더라고. 최사장이랑 우리랑 잘 지냈다 보니 네가 한다고 하면 기술도 가르쳐 줄 거란다. 오늘 하루 동안 잘 생각해 보고 마치면 정육점으로 와라."

봉창 두드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무슨 소리냐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얘기하기엔 엄마의 표정은 진지했다. 아빠도 "니만 할 마음이 있으면 엄마랑 둘이 같이 해봐라."라고 하셨다.

"알겠어요."라고 한 뒤 출근하는데 기분이 막 이상했다.


단언컨대 사회복지 말고는 다른 일을 할 거라곤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나였다. 아 '카페 사장' 정도는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암만 그래, 누구나 꿈꾸는 카페 사장 정도면 몰라, 뜬금없이 정육점 사장이 웬 말이야. 덩치도 작고 힘도 약한 나랑은 비주얼적으로도 안 어울렸다.

근데 이상하리만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이미 정육점 사장이 된 나를 상상하고 있었다.


퇴근 후 정육점으로 갔다. "지금 얼마버노?" 최사장님의 첫 질문이었다. 대략적인 내 월급을 얘기하니 희미한 미소를 띠고는 "이 일 하면 친구들끼리 술 먹을 때 부담 없이 네가 쏠 수 있고 생활하는데도 넉넉할 만큼 번다. 대신 열심히 해야 된다."

짧게 면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 꿈은 복지시설을 운영하는 거였다. 지금 이대로 회사에 다니며 경력을 쌓고 나중에 시설을 하는 게 정석 코스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땐 금전적으로 많이 부족할 것 같았다. 내 꿈을 위한 준비 과정 중에 하나인가?라고 생각하니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해보겠다고 부모님께 얘기한 뒤 최사장님께 전화하니 일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고 다음 주 월요일에 바로 정육점으로 나오라고 하셨다. 아무리 그래도 그럴 순 없다고, 퇴사를 해도 최소한의 시간은 필요하다고 얘기하고 일주일을 연기시켰다. 사실, 일주일도 말이 안 되긴 하다.


다음 날 출근해 과장님과 국장님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국장님은 한숨을 푹 쉬시더니 나가버리시고 과장님은 다음 할 말을 찾고 계셨다.

"현장에 있으면서 이런저런 퇴사 사유를 들었는데 잡을 수 있는 경우가 있고, 잡을 수 없는 경우가 있는데 상현선생님은 후자인 것 같네요. 더 이상 같이 일할 수 없다는 게 정말 아쉽지만 상현선생님의 앞날이 복되도록 기도하겠습니다."

하... 갑작스럽게 퇴사한다는 부하 직원에게 앞날이 복되도록 기도하겠다니. 나 이런 회사에 다니고 있었어.


그렇게 난 일주일 동안 부지런히 골목 주민들과 복지 당사자들을 만나 인사드리고 직원들과 밥을 먹으며 작별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일요일 저녁까지 부지런히 후임자에게 내 일을 인계했다.


월요일 아침. 복지관이 아닌 정육점으로 출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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