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셋, ADHD 창업을 제대로 해보고자 합니다
벌써 2026년의 첫 일주일이 지나갔다. 내가 스물셋이라니. 어느새 20대 초반의 끝자락을 달리고 있다.
지난 3년을 돌아보면, 20대 초반은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막 스무 살이 된 나는 타인의 기준에 기대어 살아왔다. 선택도 책임도 남에게 미뤄두고, 그 결과만 감당하려 했던 시기였다. 그런데 살기 위해서는 결국 ‘나’를 알 수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내가 선택하고, 내가 책임졌다. 10대 시절 회피해 왔던 것들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면서.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내가 원하던 방향으로 한 발 내딛기 시작했다.
스물한 살의 나는 분명 주체적이었다. 다만 미숙했다. 그래서 잘못과 실수를 했다. 나에게도, 가족에게도, 타인에게도 폐를 끼쳤다. 중도 휴학을 했고, 입사한 지 2, 3개월 만에 퇴사도 했다. 돌이켜보면 그 시간들이 아프기만 했던 건 아니다. 그 덕분에 ADHD 진단을 받을 수 있었고, 콘서타를 복용한 뒤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겪어온 많은 문제들의 뿌리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스물두 살의 초입, 휴학 후 복학했을 때도 확신이 없었다.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을까. 삶 자체가 그만큼 위태로웠다. 하지만 약물치료와 심리상담을 병행하며 비로소 방향을 잡았다. 더디지만 천천히 나아갔다. 적은 학점이라도 수강신청을 했고, FA를 받지 않으려고 수업에 출석했다. 시험공부라는 것도 오랜만에 다시 해봤다. 무사히 한 학기를 마치자 계절학기도 들었고, 과외와 아르바이트도 다시 시작했다. 삶이 아주 조금, 가능한 형태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안정이 찾아오자 자연스럽게 질문이 생겼다. 나는 뭘 하고 싶은 걸까? 앞으로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고 싶은 걸까? 취업지원팀 프로그램도 참여해 보고 상담도 받아봤지만, 선명한 답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한 가지 실마리는 잡혔다. 내가 꾸준히 해왔던 프로젝트들이 마케팅이라는 직무와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편으로는 심리학 전공을 살리고 싶었다. 상담심리나 코칭심리 쪽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그 길을 가려면 석사 이상의 학위가 필요하고,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건 전공 공부뿐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이때 기회가 찾아왔다. 호기심에 가봤던 교내 ADHD 커뮤니티를 한 번 나가봤는데, 그 운영자 분이 ADHD 관련 창업을 시작했는데, ADHD 당사자 인터뷰가 필요하다고 연락이 왔다.
분명 기회였다. 그래서 나는 인터뷰를 하고 나서 나는 창업 관련해서 관심이 있다며, 나는 내가 이 분야에 얼마나 진심인지, 여기서 내가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 열심히 설명했다. 그 결과, 창업팀에 합류하게 됐다.
내가 관심 있는 분야에서,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니. 하지만 행복한 마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학업과 일을 병행하는 일상은 생각보다 훨씬 버거웠다. 번아웃이 두 번이나 왔고, 중간에는 입원도 했다. 그럼에도 대표님은 내게 기회를 주었다. 원온원을 통해 ADHD 때문에 나조차 몰랐던 어려움을 하나씩 짚어주고 해결해 주었다. 그 과정에서 배운 게 있다. 단순히 약물치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 어려움 없는 일상을 위해서는 메디컬뿐 아니라 웰니스 측면의 도움이 함께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편 창업팀의 일상은 항상 이런 느낌이다. 걸어가면서 자전거를 조립해야 하고, 자전거를 다 조립하면 자전거를 타면서 자동차를 조립해야 한다. 무언가 결과를 내면서 동시에 공부하고, 다음 결과를 내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그 과정이 스트레스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견뎌야 한다. 벗어날 수 있는 과정이 아니다. 아마 끊임없는 반복일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올해, 이 팀에 몰입하고 올인하기로 했다. 물론 학점과 영어 같은 기본은 챙겨야겠지만, 그 외의 취준 활동들은 멈추기로 했다. 무언가를 선택했다면, 동시에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 선택은 결국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이니까.
그렇게 스물셋의 시작은 내가 바라왔던 것들이 현실의 일상으로 구현된 채로 열렸다. 거창하지는 않다. 어쩌면 스무 살 때처럼 여전히 힘들고 버거운 날들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생각보다 살 만하다는 것이다. 비록 1월 1일부터 사무실에 출근해 대표님과 대화하고, 일하고, 회의를 하는 일상이었지만 말이다.
ADHD는 분명 내 삶에서 벌어진 큰 문제들의 원인이었다. 동시에 ADHD 덕분에 나는, 어리니까 용서받을 수 있었던 시기를 20대 초반까지 밀어붙이며 도전하고, 실패하고, 다시 일어나 볼 수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어리지 않다. 그렇기에 앞으로의 실수와 잘못은 더 나은 삶을 만드는 재료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내가 앞으로 하는 일들이 나처럼 ADHD로 인해 힘든 사람들이 외롭지 않게 꿈을 꿀 수 있도록 돕는 일이기를 바란다. 꿈을 꾸는 것조차 어려운 날들이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