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ADHD 앓는 대학생의 복학 후기

가는 길마다 평지만 있을 수 없기에

by 앤지유

작년 하반기, 우울증으로 중도 휴학과 퇴사를 하고 브런치스토리 연재를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워낙 기록과 정리를 좋아했고, 무언가를 남기는 일이 인생에 있어 좋다고 생각했기에 브런치스토리에서 글을 연재할 수 있다는 건 내게 정말 큰 의미로 다가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것들로 인해 내게 주홍글씨가 달린 것만 같았다. 그렇게 기록을 하고 세상에 흔적을 남기기에는 내가 너무 불안정했고, 실수와 잘못을 많이 했으며, 떳떳한 사람이 아니었다. 여전히 이곳에서 이런 나를 남기는 것이 옳은지 답을 내리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글을 쓴다.




우울증 진단 후에 꾸준히 정신과를 다녔지만 1년이 넘어서야 ADHD 진단을 받았다. 회사에서 일하면서 극단적으로 드러난 증상 덕분이었다. 나를 좋게 봐주셔서 스카우트하시고, 많이 키워주시려고 했지만 내가 그만한 역량이 되지 못해 안 좋게 끝을 맺으며 퇴사했다.


역량, 어디까지가 역량일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의 나라면 잘 헤쳐나가지 않았을까 싶기에. 그럼에도 그때의 실수와 잘못은 사라지지 않기에 나는 반성한다. 그리고 또다시 기회가 찾아왔을 때 무너지지 않도록 준비를 할 뿐이다.




스무 살부터 스물두 살까지 우울증과 ADHD 때문에 겪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너무 많이 겪었다. 이제야 겨우 정상 범위의 삶을 영위해 가는 가운데, 나는 스스로를 채찍질을 한다. 뒤쳐진 만큼 얼른 평균을 쫓아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일 거다.


원하는 대학의 원하는 학과에 진학했지만, 제적경고와 중도휴학 후 위태롭게 복학을 했다. 우울증과 ADHD 진단은 내게 너무 큰 짐이었다. 점점 심해지는 증상들이 내 삶을 뒤흔들다 못해 무너뜨리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두려웠다.


그렇기에 휴학과 함께 치료받으면서 쉬면서도 늘 무서웠다. 일상 복귀는 너무 두려웠다. 수업 출석하는 것부터 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는 게 내게는 너무 두려운 일이었다. 복학 첫날에는 삼촌과 등교했다. 겨우 12학점 들으면서 교양 두 개 하는 첫날에 출석을 하는 게 너무 버거웠다.


그런 내가 FA(결석 5번 시 바로 F 부여하는 학사제도) 받는 과목 없이 학기를 끝냈다. 그리고 전공 시험도 무사히 치르고 A를 받냐 마냐를 따지고 있다. 학생으로서 수업에 출석하는 것과 시험을 A 받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 당연한 것들이 일상일 수 없었던 내게는 큰 일이었다.




이렇게 일상 영위와 함께 미래를 고려할 수 있었던 이유는 크게 3가지였다.


일단은 매주 혹은 격주로 받았던 정신과 진료이다. 서너 번 제외하고는 꼬박꼬박 진료받으러 가서 증상 말씀 드리면서 약 부작용까지 고려하면서 약물 치료를 해나갔다. 매주 나를 체크하고 세심하게 내 마음 건강을 돌볼 수 있었던 루틴이 되기도 했다.


두 번째는 매주 받았던 심리상담이다. 대학원생 분들이 상담을 진행하는 실습 과정에 내담자로 참여할 학부생을 모집한다고 하기에 내담자경험을 신청하게 되었다. 단순히 약물치료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을 털어놓고 내 진실된 마음을 알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세 번째는 안정적인 연애이다. 복학한 후 한창 불안에 시달리던 3월 말에 시작한 연애는 내게 큰 안정감을 가져왔다. 내가 무너지려고 할 때마다 옆에서 묵묵히 지지해 주는 그 사람의 존재는 큰 버팀목이 되었다.


위 세 가지 중 단 하나라도 없었더라면 지금의 일상을 영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완전히 극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평생 가지고 가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잘 가지고 가는 방법을 찾고 익힐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길의 시작을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길이 평지만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분명 경사길을 마주할 것이다. 그래도 오르막길에는 힘들다고 주저앉고, 내리막길에는 편하다고 뛰어가다 넘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도 찬란하게 일상을 영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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