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란성쌍둥이가 의대 가면 생기는 일

최선을 의심하던 내가 상담에서 얻은 답

by 앤지유

심리 상담은 늘 내 삶의 터닝포인트가 되어주었다.


첫 번째 상담은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원하던 대학과 학과에 도전할 용기를 주었고, 두 번째 상담은 우울증과 ADHD로 학업과 일에서 쌓인 문제들을 내려놓고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중도휴학이라는 선택을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세 번째 상담은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던 질문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했다.


“나는 과연 최선을 다했는가.”


수년 동안 답을 내리지 못한 이 질문에, 나는 마침내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의대를 간 일란성쌍둥이 동생은 늘 내게 비교의 기준이었다. 내가 최선을 다했다고 믿는 순간에도, 동생은 언제나 그 이상을 보여주었다.


“나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아니, 안 했던 걸까.”


똑같은 유전자를 지녔는데 왜 나는 덜 공부했을까. 동생만큼 공부했다면 나도 같은 성적을 거둘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은 늘 ‘최선’이라는 단어를 흔들었다.


내 눈앞에 더 큰 노력이 가능하다는 증거가 있는데, 나는 감히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세 번째 상담에서는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다뤄졌다.


나는 공부를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노력하는 일이 두려웠다. 차라리 노력하지 않으면, 최선을 다했는지 아닌지 따질 필요조차 없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공부를 피했다.


상담 시간마다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했다.

“저는 노력을 하지 않았어요. 최선이 뭔지도 모르겠어요.”


계속 그렇게 말하면서도, 조금씩 비교를 내려놓고 내 상황에만 집중해 보기로 했다.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지금까지 해온 노력이 결코 무가치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지금 다니는 대학이 정말 마음에 들었고, 더 높은 곳은 애초에 꿈꿔보지도 않았다. 내가 세운 목표에 걸맞은 노력을 했고, 그 순간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왔던 것이다.


“저는 그때 최선을 다했어요.”
나는 상담실에서 혼잣말하듯 되뇌었다.


그리고 상담자를 바라보며 웃으며 말했다.
“저는 늘 최선을 다해왔어요.”


그 순간, 오랫동안 외롭고 비참했던 질문에 마침내 스스로 답을 내릴 수 있었다.




세 번째 상담을 마무리한 뒤, 2주 전부터는 집단상담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다시 물었다.

“일란성쌍둥이가 의대를 다니는데, 저는 그만큼 노력하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저는 최선을 다하지 않은 걸까요?”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지만, 사실은 제 마음속 대답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상담이 끝나갈 즈음, 상담자 선생님이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마음이 이해가 가요. 하지만 제가 당사자가 아니기에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흘렀다.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내 상황을, 누군가 끝까지 이해하려고 했다는 사실만으로, 내가 겪어온 외로움과 고됨, 비참함이 위로받는 것 같았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나는 그 순간마다 최선을 다해왔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걸린 시간과 고통마저,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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