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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uckuism Dec 04. 2017

내가 더 많이 좋아해서

네가 더 많이 힘든가봐

연애라는 건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어느 순간 나에게 크나큰 행복을 줄 것 처럼 굴다가도, 또 어느 순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큰 불행을 줄 것처럼 변하기 일쑤다. 얼마 전에 연애를 시작했다. 꽤나 긴 시간 동안 알았고, 예전부터 마음이 있던 사람과의 연애를. 그리고 이런 변덕스런 연애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도대체 왜 나는 연애에게 휘둘리고 있는걸까?


얼마 전 평소 내가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을 하던 사람이 혼자가 되었다. 예전부터 마음을 표현해볼까 고민했지만 혹시나 좋은 인연이 사라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과, 최선을 다해 당시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쭈뼛쭈뼛 들고 일어나는 새싹같은 내 마음을 다시 씨앗으로 돌려버리기에 충분했다. 아니, 정말 내가 그 사람이 잘 되기를 바란다면 적어도 만나는 사람이 있을 때 내 마음을 표현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누군가를 불행하게 하는 연애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내 감정이 사그라들어 점점 잊혀질 때쯤 그녀는 담담히 이별을 맞았다. 그녀가 할 수 있는 만큼 모든 노력을 기울였기에 아무런 미련도 감정도 남아있지 않는 듯 보였다. 그리고 두달 쯤 지났을까, 같이 만나는 사람들과 술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이별 축하 겸, 안부를 물을 겸. 그녀와 따로 하는 연락과 얘기는 너무 즐거웠다. 겹치는 관심사에 대한 많은 주제와 솔로 두 명끼리 뭉쳐야한다는 유대감으로 대화의 행복함은 가실 줄을 몰랐다. 우리는 몇 일 뒤에 같이 전시회를 보러 가기로 했다. 전시회도 좋지만, 누군가와 함께 내가 좋아하는 미술에 관련된 주제를 즐길 수 있게 된다는 사실 자체가 행복했다. 


전시회는 그다지 재밌거나 유쾌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이 주제에 대해 공감하며 얘기했다. 우리가 생각했던 모습과는 조금 달랐던 전시회의 아쉬움에 대해 얘기하며 시시콜콜한 농담을 주고 받았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2차로 맥주를 한 잔 더 했다. 맥주 한 잔을 들이키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만나기 전부터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마음을 전하는 것에 대해 고민했다. 지금이 아니면 '다음'은 없을 지도 모르는 것이 인연이라는 것을 알기에. 과연 내 마음을 적당히 숨기면서 이렇게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행복할지, 내 마음을 완전히 드러내고 그녀의 선택을 기다리며 천국와 지옥을 오갈지. 정말 많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고 그 맥주 한 잔을 들이키는 와중에도 생각했다. 


그리고 결정했다. 더 이상 내 마음에서 도망치지 않기로. 어떤 결과가 따라오던 감당해보기로.


나는 조심스럽지만 확실하게 내 마음을 전했다. 결과는 보류. 그녀도 나를 더 알아가고 싶다고는 했지만, 확신은 없어보였다. 그래도 알아가고 싶어한다는 그 자체가 나를 위로했고 나는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 부분에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이후의 결말을 어떻게 예상하는지 모르겠다. 

'뭐, 그래서 남자가 열심히 대쉬했고 결국엔 만나게 됐구만?'

'아니 연애를 시작했다며. 그럼 만나고 있단 얘기잖아. 자기자랑하겠다는거야 뭐야.' 

등등의 생각이 있지 않을까 넘겨짚어본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딱 이 때부터, 정확히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한 때부터 나는 힘들어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의 기복을 느끼며 내 삶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의지와는 상관 없이, 얼마 되지 않아 그 사람은 나를 떠났다. 이성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며, 마음이 가지 않는다면서. 평소에 열정적이고 긍정적인 나였지만, 한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녀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보다, 내가 내 마음이 다 할 때까지 모든 것을 쏟아부을 기회조차 없었다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그리고 오랫동안 알던 그녀를 잃게되었구나라는 상실감이 나를 잠식했다.


남자던, 여자던 간에 관계 없이 연애에 있어서든 먼저 다가서는 쪽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게 당신이 될 수도 있고 상대방이 될 수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때 가장 쉽게 '나'를 잃기 쉽다. 상대방이 나에게 호의적인 마음을 갖게 하기 위해, 내가 원하지 않지만 상대방이 좋아할 것 같은 행동들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나는 김치찌개를 싫어하지만 김치찌개를 좋아한다는 상대방의 말에 김치찌개를 좋아한다고 얼레벌레 말하기도 하고, 나는 독신주의자인데 결혼하고 싶지 않아 하는 연애 상대를 싫어할까봐 괜히 아니라고 하기도 한다. 


나도 그랬다. 상대방은 천천히 시간을 갖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알고 싶었던 것인데, 나는 언젠가부터 '나'가 아닌 척 하고 있었다. 상대방이 원할 것 같은 내 머릿 속의 '나'를 '나'인척하며 연기했다. 이런 어리석지만 간절한 마음은 '혹시나 상대방이 싫어하면 어쩌지?', '내가 이걸 좋아한다고 해도 되나?'와 같은 망설임과 주저함을 만들어냈다. 이런 감정들은 나를 감정적으로 만들었다. 마치 감정조절장애가 있는 사람 처럼, 상대방이 좋아하면 나는 안심하고 상대방이 싫어하면 나는 이 관계가 끝나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에 떨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나는 진정한 내 모습을 잃어갔고, 관계 속에서 '나'는 지워져갔다.


언젠가부터 그녀의 반응에 안절부절하고, 그녀의 주의를 살피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것은 무엇을 바래서가 아닌데, 내가 원하는 것은 이런 감정적인 연애가 아닌데, 나는 어느 순간부터 오히려 나를 감추면서 그녀에게 나를 사랑해달라는 무언의 압박을 보내고 있었다. 감정적인 못난 나는 어느샌가 그녀 그대로가 아닌, 내가 원하는 그녀를 갈구했다. 내가 하는 노력에 대한 확인을 받고 싶어서 연락 해달라고 떼쓰고, 나에게 마음이 없는 그녀에게 부담을 주는 말들을 했다.


사실, 한 편으로는 알고 있었다. 내가 하는 행동들이 그녀에게 어떻게 느껴질지.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내 마음을 다잡았지만,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 일이 마음에서는 따라주지 않았다. 그녀를 좋아하는 내 마음이 너무 커서, 있는 그대로 그녀를 볼 수 있는 여유조차 잊어버렸었나보다. 내가 조금은 성장했다고 생각했었는데, 나는 아직도 어리고 상대방을 이해하기에 너무도 부족한 사람이었었나보다. 


이렇게 나는 내 인생에서 좋아했던 사람을 한 명 더 보냈다. 급한 물길에 발을 담그지 않는 것 보다는 내 몸 모두를 던져 뛰어드는 것이 후회가 남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급한 물길에 발을 담그지 않던, 몸을 던져 뛰어들던 어느 쪽을 선택하던 간에 후회는 남는다. 단지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과정과 결과가 달라질 뿐이다. 


관계를 정리하자는 말을 하며 그녀는 나라는 사람을 잃게되어 마음이 좋지 않다는 말을 했다. 아아, 나는 얼마나 어리석었을까. 어쩌면 그녀도 자신의 마음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나보다. '나'라는 사람을 위해, '나'라는 사람의 진심을 알고 있으니까, '나'의 가치를 그만큼 소중하게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마음이 가지 않는 나에게 조금이나마 마음을 열어 보고, 내 마음의 크기를 안아보려 자신의 마음에 거짓말을 하고 있었나 보다. '이러다 보면 좋아지겠지, 마음이 생기겠지...' 하면서.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을까. 소중한 친구였던 '나'라는 사람을 잃게 된다는 두려움, 자신의 모습을 여실하게 보여주면 실망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이 관계가 끝났을 때 그녀가 느끼게 될 상실감. 그 모든 것들이 그녀를 힘들게 했을테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는, 어쩌면 당연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도, 나도 인연론자(因緣論仔) 였다. 서로 인연인 사람은 만나게 될 거라고 말했다. 우리는 인연이 아니었나 보다. 하지만 불교에서의 '인연(因緣)'은 단순한 원인과 결과의 뜻만을 함축하고 있지는 않다. 그 만남의 순간은 다른 모든 순간과는 유별하며, 그 만남의 순간이 또 다른 만남의 순간을 만들어 낸다. 근래 몇 년동안 중 제일 힘들고 괴로웠다. 인연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너무도 힘들었다. 그래도 이제는 보내주어야 할 것 같다. 또 다른 인연이 내 앞에 있을테니까. 그리고 다음에는 그 인연이 내가 인연이라는 것을 알 때까지 기다려보리라. 섣불리 내 마음을 전하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 서서 그 인연을 지긋이 바라보리라. 



"넌 뭘 좋아해?"

"음, 난 TV를 크게 켜놓고 만화책 보는 시간이랑, 친구가 사준 창가 화분에서 떨어진 잎사귀들을 주워 유리컵에 담아두는 일이랑, 음, 그냥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을 좋아해. 너무너무 좋아해."


아마 당신이 나에게 그렇게 말하는 순간, 공중에서 새 한마리가 날아와 내 어깨에 내려앉을 것이다. 그리고 그 새는 내 귀에다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제 됐어. 그녀가 침묵을 깨고, 이제 시작한 거야. 축하한다구."


나는 그렇게 시작하고 싶은 것이다. 당신의 습관을 이해하고, 당신의 갈팡질팡하는 취향들을 뭐라 하지 않는 것. 그리고 당신이 먹고 난 핫도그 막대를 버려주겠다며 오래 들고 돌아다니다가 공사장 모래 위에 이렇게 쓰는 것. 


"사랑해."


그러니 나에게 시간을 달라.

나에게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


-이병률 산문집, [끌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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