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하늘 아래 도시. 죽어가는 짐승. 시계는 열두 시를 향해 기어갔고, 주머니 속 차 키의 차가운 감촉이 손금을 타고 스며들었다. 한밤의 창가에 기대어 서서 바라보는 도시의 불빛들이 살과 뼈를 드러냈다. 제각각의 속도로 떨리고 일어서는 빛나는 것들이 어둠을 두드렸다.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또 다른 이의 울음이,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이름 모를 소리들이 창 너머로 쏟아졌다. 마지막 지하철이 지나간 자리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숨이 턱 끝까지 올라왔다가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벽이 서서히 좁혀 들어오는 동안 천장은 낮게 가라앉았다. 이 도시의 공기는 늘 끈적거렸다. 떠나야 했다. 시간은 일 년이었을까, 십 년이었을까. 달력을 넘기는 동안 이유들은 하나둘 쌓여갔다. 처음에는 빗방울 정도였던 것들이 어느새 바윗덩이가 되어 가슴을 짓눌렀다. 철창 속에서 새가 되어 날개를 부딪치는 심장 소리가 온 방을 울렸다. 어린 시절 꿈꾸던 하늘이 천장 너머로 어른거렸다. 열여덟의 겨울, 스물다섯의 여름, 서른의 가을이 한순간에 스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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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전, 중고차를 데려왔다. 십 년은 된 듯한 푸른 차체는 누군가의 흔적으로 가득했다. 운전석 시트는 몇 번의 인생을 품었을 것이다. 핸들은 낯선 이의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간직한 채 반들거렸다. 차고의 습기 찬 공기는 페인트 냄새와 뒤엉켜 시간의 무게를 더했다. 밤이면 이 차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누군가의 첫사랑이, 또 다른 이의 마지막 작별이, 수많은 시작과 끝이 금속의 살결 위에서 속삭인다. 차체를 쓸어내릴 때마다 낯선 도시의 먼지가 손끝에 묻어났다.
음향 시스템을 새로 달았다. 기술자의 고개 짓는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우퍼와 앰프를 교체하는 동안 그의 한숨 소리가 차고를 채웠다. 상관없었다. 이제 이 차는 거대한 드럼이 되어 내 심장을 울릴 것이다. 밤마다 차 안에서 음악을 들었다. 베이스가 유리창을 흔들고, 기타 소리가 철판을 휘감고, 드럼이 뼈를 두드릴 때마다 세상은 조금씩 다른 색으로 물들어간다. 열일곱에 처음 들었던 그 밴드의 음악이 다시 새로워졌다. 스물셋의 이별의 노래가 귓가를 맴돌았다. 시간이 원을 그렸다.
구름 사이로 달이 얼굴을 내밀었다. 바람이 창틈을 비집고 들어와 목덜미를 타고 흘렀다. 전구 불빛 아래서 반짝이는 차 키가 손바닥 위에서 존재감을 과시한다. 가방도 필요 없었다. 지갑과 면허증이면 충분했다. 현관문을 잠그는 소리가 낯설게 울린다. 이제부터는 모든 것이 낯설어질 것이다. 매일 밤 보던 천장도, 아침마다 마시던 커피 잔도, 창가에 놓인 화분도 다른 삶의 조각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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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미로이며, 자동차는 유령이다. 신호등은 피부색을 바꾸며 밤거리를 수놓았다. 퇴근길의 마지막 발소리가 아스팔트를 두드렸다. 일상의 소음들이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다. 라디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라졌다. 전원을 껐다. 이제는 침묵이 필요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짜 침묵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고속도로가 몸을 틀었다. 까만 뱀의 기운. 스피커에서 폭발하는 음악이 차 안을 채웠다. 세상이 흔들린다. 차체와 좌석과 뼈마디가 떨린다. 잠들어있던 모든 것들이 깨어났다. 속도계의 바늘이 머물 자리를 거부한다. 80… 100… 140… 숫자가 올라갈수록 과거는 희미해져 갔다. 후사경 사이로 기억 속 얼굴들이 스러져갔다. 어머니의 한숨 소리, 아버지의 굳은 어깨, 첫사랑의 마지막 인사, 그리고 수많은 밤을 함께 지새운 도시의 풍경들이 거울 속으로 녹아들었다.
도시의 불빛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질수록 별들은 선명해졌다. 하늘은 깊어졌고 땅은 까맣게 물들었다. 창밖으로 손을 내밀면 바람이 손가락 사이를 파고들었다. 라디오의 음악은 이제 필요 없었다. 엔진 소리와 바람 소리가 더 아름다운 교향곡을 연주한다. 전조등이 비추는 길 위로 미래가 펼쳐진다.
“대단한 일을 해내자.”
웃음이 터졌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을까, 이렇게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웃음을 잊고 살았던 시간이. 기억조차 희미한 시간들이 후미등 빛 너머로 멀어져 간다. 밤하늘은 더욱 깊어졌고, 별들은 더욱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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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존재할 필요도 없었다. 앞으로, 오직 앞으로. 가로등이 늘어선 길 위로 그림자들이 일어났다 잠겼다. 어디선가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가, 어둠 속에 숨어든다. 끝없이 이어지는 도로 위에서 시간은 멈춘 듯했다. 속도와 정지 사이, 존재와 부재 사이, 어제와 내일 사이에서 현재만이 빛났다.
주유소의 형광등이 밤을 갈랐다. 자판기 커피가 목구멍을 데웠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달은 여전히 곁을 지켰다. 방향을 물으려다 입을 다물었다. 별들이 깜박이며 길을 비추었다. 이 밤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오직 달리는 자만이 이 순간을 가질 수 있다. 커피 잔에 비친 달빛이 흔들렸다. 어린 시절 창가에서 바라보던 그 달과 똑같았다. 시간이 원을 그려낸다.
도망일까, 시작일까. 두 개의 실이 꼬여 하나로 녹아들었다. 시작은 도망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었다. 중요한 건 발걸음이었다. 멈춰 선 자리보다는 흔들리는 걸음이 진실에 가까웠다.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공기가 살을 파고들었다. 이 통증이 필요했다. 존재를 증명할 흔적이. 상처는 길이 되고, 길은 다시 상처가 된다.
새벽이 오고 있었다. 동쪽 하늘이 푸르게 물들기 시작했다. 갓길에 차를 세웠다. 달빛이 희미해졌다. 손을 뻗었지만 잡히지 않았다. 잡을 수 없어야 했다. 손에 잡히는 순간 모든 건 과거가 되니까. 별들은 하나둘 사라졌지만 달은 여전히 곁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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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이 다시 깨어났다. 어둠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입술이 비틀린다. 자유가 몸을 휘감는다. 아마도. 그렇게 믿기로 했다.
떠나는 길에서 우리는 모두 믿음이 필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