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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속삭임, 인연의 반짝임

무한한 공간의 기적 같은 순간들

by 새틔

빛은 1초에 약 30만 km를 이동한다. 지구의 둘레가 약 4만 km임을 생각하면, 빛은 1초 만에 지구를 7바퀴 반이나 돌 수 있는 셈이다. 이런 측정할 수 없이 빠른 속도가 우주의 본질인데도, 우리 인간의 감정은 이보다 더 빠르게 변하기도 한다. 갑작스러운 만남의 순간, 첫눈에 반하는 그 찰나의 순간에는 빛보다 더 빠르게 마음이 움직이기도 한다.

빛은 지구에서 달까지 가는 데도 1.3초가 걸린다. 우리의 가장 가까운 항성인 태양에서 지구까지 오는 데는 8분 20초가 필요하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태양은 8분 전의 모습이며, 밤하늘에서 은은히 빛나는 달빛은 1.3초 전의 과거다. 우리가 바라보는 모든 것은 이미 지나간 시간의 흔적이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소중한 사람을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마주 보는 눈빛, 들리는 목소리, 닿는 체온까지도 모두 이미 지나간 찰나의 과거. 그럼에도 그 순간이 현재처럼 느껴지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 물리적 시간을 초월하는 연결을 만들어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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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광년은 빛이 1년 동안 쉬지 않고 달려가는 거리를 의미한다. 9조 4천6백억 km. 이 숫자는 머릿속에서 단지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존재할 뿐,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현대 과학으로 관측 가능한 우주의 지름은 930억 광년이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장 먼 은하까지의 거리다. 한 은하에서 다른 은하로 가는 데만도 수백만, 수천만 년이 걸린다. 이 거리는 인간의 상상력을 넘어서는데, 만약 우주의 크기를 지구 크기로 줄인다면 지구는 원자 하나보다도 작은 크기가 될 것이다. 생각해 보면,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이런 거대한 시간이 녹아있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수십 년, 오랜 친구와의 우정에 담긴 세월, 연인과 나눈 수천 번의 대화들. 그 모든 시간이 쌓여 현재의 관계를 형성한다. 1분의 대화가 모여 1년이 되고, 그 1년들이 모여 인생이 된다. 우리의 관계 속에도 작은 우주가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빛이 930억 광년을 여행하는 시간과 소중한 사람과 나누는 단 1분의 시간은 물리적으로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 의미의 가치를 비교하면, 오히려 짧은 인간의 순간이 무한한 우주의 시간보다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고 바라보는 10초의 시간이, 빛이 은하 하나를 가로지르는 10만 년보다 더 깊고 의미 있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우주의 시간은 늘어지고 인간의 시간은 압축되어, 순간의 기억이 영원처럼 느껴지고 영원한 별빛은 찰나의 반짝임으로 우리에게 도달한다. 아인슈타인이 말한 시간의 상대성은 우리의 감정 세계에서도 끊임없이 증명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짧은 만남은 마치 영원처럼 느껴지고, 그리운 사람을 기다리는 1시간은 지루한 회의 3시간보다 더 길게 느껴진다. 은하계가 한 바퀴 도는 2억 5천만 년의 시간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눈동자에 담긴 감정의 깊이 앞에서 의미를 잃는다.


지구가 속한 태양계는 이 거대한 우주의 아주 작은 한 점에 불과하다. 태양계만 하더라도 그 크기를 가늠하기 어렵다. 태양에서 가장 바깥 행성인 해왕성까지의 거리는 빛으로도 4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이는 우주의 눈으로 보면 말 그대로 먼지보다 작은 크기다. 우리가 속한 은하수(Milky Way Galaxy)에는 약 1천억~4천억 개의 별들이 존재한다. 수천억 개의 별들이 서로 다른 밝기로, 서로 다른 색깔로 빛나며 은하의 장대한 교향곡 속에서 제각각의 음을 울린다. 이들 중 우리 은하에서만 약 200억~2천억 개의 행성계가 존재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중 태양과 비슷한 별을 가진 행성계는 약 20억 개. 각각의 별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품고, 자신만의 행성들과 함께 끝없는 우주 왈츠를 추고 있다. 인간관계의 우주도 이와 닮아있다.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각자 고유한 빛깔로 빛나며, 서로 다른 속도와 거리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는 중심이 되는 '별'이며, 동시에 다른 이의 궤도 안에서 도는 '행성'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복잡한 관계의 그물망이 모여 인류라는 하나의 거대한 '은하'를 이룬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은하수마저도 수많은 은하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관측 가능한 우주의 품 안에는 약 2천억 개의 은하가 숨 쉬고 있으며, 각 은하마다 평균 1천억 개 이상의 별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속삭인다. 이 모든 빛나는 존재들을 헤아리면 약 2경 개의 별들이 우주의 어둠 속에서 빛을 내고 있다. 이는 지구의 모든 바닷가에 있는 모래알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많은 숫자다.


우리 은하의 지름만 해도 빛이 지나가는데 10만 년이 걸린다. 지구를 7바퀴 반 도는 그 빛이, 우리 은하 한편에서 다른 편으로 가는데 10만 년이 필요한 것이다. 은하수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중심부에는 거대한 블랙홀이 자리 잡고 있다. 모든 빛조차 삼켜버리는 초대질량 블랙홀은 수백만 개에서 수십억 개의 태양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무거운 질량을 지니고 있다. 그 강력한 중력은 시공간 자체를 휘게 만든다. 블랙홀 주위를 돌고 있는 별들은 마치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린 것처럼 나선 모양을 그리며 춤춘다.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는 그 어떤 것도, 심지어 빛조차도 빠져나올 수 없다. 인간의 관계에도 이런 중력장이 존재한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작은 중력장을 가지고 있어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가끔은 누군가와의 만남이 블랙홀처럼 강력한 인력으로 우리의 삶의 궤도를 완전히 바꿔놓기도 한다. 한번 그 중력장에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을 만큼 강렬한 사랑, 평생을 함께하는 우정, 결코 지울 수 없는 가족의 유대. 이러한 관계들은 우리 삶의 시공간을 휘게 만드는 블랙홀과도 같다.


이러한 깊은 연결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사이의 강한 인력의 근원을 찾아보면, 그 만남 속에는 우주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내 몸의 탄소, 질소, 산소, 그리고 내 피를 붉게 물들이는 철분까지, 이 모든 원소들은 한때 별의 중심부에서 핵융합 반응을 통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우주 어딘가에서 별들이 타오르며 만들어낸 모든 원소들이 긴 세월을 거쳐 나에게로 왔다. 어쩌면 내 몸속 철분 원자와 당신 몸속 철분 원자는 동일한 별의 폭발에서 유래했을지도 모른다. 내 몸을 이루는 모든 것이 별들의 선물이다. 그렇게 우리는 우주의 일부이자, 우주 그 자체가 되었다. 수백억 년의 시간이 빚어낸 우주의 먼지들이 모여, 우리는 이토록 광활한 우주에서 서로를 알아보고, 이해하고, 사랑하고, 그리워할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우리가 서로 손을 잡을 때, 그것은 별들의 파편이 서로를 다시 알아보는 순간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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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광대함 속에서 보면, 인간과 인간의 만남은 930억 광년이라는 거대한 우주 속 한 점 보다도 작은, 아주 작은 반짝임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찰나의 반짝임이 가진 의미는, 2천억 개의 은하와 그 속의 무수한 별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더 크고 아름답다.

우주의 냉정한 물리법칙은 크기와 거리, 질량으로 모든 것을 측정한다. 그 관점에서 인간은 미미한 존재다. 오늘 우리가 흘린 눈물 한 방울은 지구의 질량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의미의 법칙은 전혀 다르게 작동한다. 우주의 무한한 확장 속에서도 의미는 오히려 그 반대 방향, 의식을 가진 존재들의 내면세계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한 번의 진실된 눈 맞춤, 친구의 따스한 손길, 사랑하는 이의 용서의 말 한마디가 담는 의미는 우주의 물리적 규모를 훨씬 초월한다. 은하계가 충돌하는 광경보다,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는 순간이 더 깊은 의미를 지닌다. 우주가 무한히 확장되는 동안, 우리는 무한히 깊어지는 내면의 우주를 탐험한다. 그리고 그 깊은 내면의 우주에서, 우리는 서로를 만나고 있다.

우리는 매 순간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지고, 그리워하고, 다시 만난다. 그 모든 순간이 우주의 시작부터 이어져 온 특별한 인연이다. 잠깐의 미소를 나누는 낯선 이도, 평생을 함께하는 가족도, 우리의 삶에 깊은 흔적을 남기는 친구도, 모두가 우주가 선물한 소중한 인연이다. 물리학이 측정하는 우주의 거대함과 인간이 경험하는 의미의 깊이는 서로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무한함이다. 어쩌면 우주가 그토록 광대한 이유는 우리의 작은 만남들이 담을 수 있는 의미의 깊이에 균형을 맞추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이 광활한 시공간의 신비를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인연은 우주의 시작부터 138억 년에 걸쳐 이어져 온 기적과도 같다. 부모와 자식, 친구, 연인, 스쳐 지나가는 낯선 이까지, 모든 만남이 단순한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통계학적으로 두 사람이 광활한 우주와 긴 역사 속에서 만날 확률은 거의 0에 가깝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를 찾아 만난다. 우리는 서로를 통해 우주의 의미를 이해하고, 서로의 존재를 통해 우주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오늘도 나는 이 찬란한 우주의 한 조각으로서, 내 삶에 찾아온 특별한 인연들을 떠올리며, 그들과 나누는 모든 순간이 우주의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서 나는 매일 새로운 우주를 발견한다.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

블랙홀 주변에 형성되는 이론적 경계선으로, 이 경계를 넘어가면 중력이 너무 강해 빛을 포함한 어떤 것도 다시 빠져나올 수 없는 지점을 의미한다. 이는 물리적인 표면이 아니라 일종의 '무반환점'으로, 인간이 관측할 수 있는 우주와 영원히 단절되는 경계선이다. 인간관계에서의 비유로는 돌이킬 수 없는 깊은 교감이나 결정적 순간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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