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언수행
평일 오후의 카페. 창가 가장 좋은 자리에 앉은 나는 꽤나 그럴듯하게 보였을 것이다. 테이블 위에는 값비싼 만년필과 줄 없는 노트가 각을 맞춰 놓여 있었고, 내 시선은 허공 어딘가를 응시하며 깊은 사유에 잠겨 있었다. 방금 노트 첫 장에 써 내린 문장은 가히 기가 막혔다.
‘오후 세 시의 햇살은 고양이의 하품처럼 나른했다.’
크. 스스로 감탄하며 만년필을 내려놓는 순간, 옆자리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던 젊은이의 통화 소리가 들려왔다. “네, 편집장님! 이번 주까지 꼭 초고 넘기겠습니다! 시놉시스는 이미 보내드렸고요!”
‘편집장’, ‘초고’, ‘시놉시스’. 그 열정 가득한 단어들이 비수처럼 날아와 내 가슴에 꽂혔다. 나는 방금 쓴, 고양이 하품 같은 나의 문장을 조용히 손으로 가렸다. 저 청년의 전투적인 열정 앞에서 나의 한가로운 끄적임은 너무나 초라했다. 문득, 내 인생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이었던 ‘고시생’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도 나는 이와 비슷한, 아주 그럴싸한 변명으로 도망쳤었다.
군 제대 후 복학한 3학년까지도, 나는 딱히 무엇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다만 법학과 학생이라는 신분이 ‘사법시험은 한 번쯤 봐야 한다’는 막연한 의무감을 심어주었다. 훗날 손주 녀석에게 ‘할아비도 왕년에…’ 하며 폼이라도 잡으려면, 고시 공부 좀 했다는 이력 한 줄은 필요했다.
결과는 당연히 불합격. 나는 성적표를 확인도 하지 않았다. 대신 남들에게는 아주 근사한 핑계를 둘러댔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나처럼 인간수양이 덜 된 놈이 덜컥 합격해서 어사화를 쓴들 이 사회에 무슨 도움이 되겠나. 세상을 위해 내가 물러나는 게 맞지.” 나의 첫 고시 인생은 그렇게, 대의를 위한 숭고한 희생으로 막을 내렸다.
그 후 2년간 나는 도서관의 낭인이 되었다. 하루 한 권, 장르 불문.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소설과 수필이 시들해질 무렵엔 시나리오와 희곡을 탐독했다. 무대 뒤편을 훔쳐보는 듯한 재미가 쏠쏠했다. 하지만 낭인의 삶도 졸업이라는 현실 앞에 끝이 났고, 언론사 입사에 낙방한 나는 과사무실에 붙어있던 기업 추천서를 통해 평범한 월급쟁이가 되었다. 그렇게 나의 인생은 흘러왔다.
다시 카페. 나는 하상욱 시인의 ‘시밤(시 읽는 밤)’을 흉내 내며 짧은 글귀를 끄적였다.
‘퇴근 시간 상사 농담, 아재 개그 신고각!’ – 묵언수행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일본 하이쿠의 오칠오 운율은 아직도 모르겠지만, 이런 짧은 문장으로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맛은 제법 안다고 자부했다. 그렇게 소설을 구상하고 잡문을 끄적여온 세월이 수십 년. 하지만 나는 여전히 첫 문장 언저리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왜? 단 한 번도 ‘글을 써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고시 공부도, 독서 삼매경도, 그리고 지금의 글쓰기도, 어쩌면 나는 그저 무언가에 빠져있는 내 모습 자체를 사랑했는지 모른다. 진지한 목표 없이, 그럴싸한 폼만 잡는 영원한 낭인.
옆자리의 청년은 노트북을 덮고 의욕에 찬 발걸음으로 카페를 나갔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이 짓도 언젠가는 시들해지려나.’
답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또다시 만년필 뚜껑을 연다. 그리고 노트 두 번째 장에 새로운 문장을 쓴다. 시들해지면 시들해지는 대로, 그냥 쓰는 거다. 딱히 무엇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쓰는 행위 자체가 지금의 나를 증명하는 유일한 방식이므로. 낭인의 서재에는 마감일도, 편집장도 없다. 그저 고양이 하품 같은 문장들만 나른하게 쌓여갈 뿐이다.
참, 전원생활 중에 슬며시 우리 집을 차지한 길고양이들이 이제 꽤 늘었다. 사료값이 만만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