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이야기
첫눈에 반한다.
글자 그대로입니다. 그가 아내를 처음 봤을 때 느낀 감정을 가장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그녀를 처음 본 곳은 선배커플의 결혼식장이었습니다.
관계를 따져보자면 사실 그녀는 그 결혼식장에 굳이 오지 않아도 될 일이었습니다. 여자선배의 친구의 후배였던 그녀는 그날 결혼했던 여자 선배의 친구를 따라 잠깐 들렀던 것입니다.
결혼식장의 결혼하는 풍경이 다 그렇듯이 어수선하게 진행되고, 사진을 찍을 때.. 그녀는 어색한 표정으로 신랑과 신부친구들의 사진 찍는 모습을 식장의 한쪽 편에서 바라보고 있었는데... 별로 가깝지 않은 이의 결혼식에 온 그녀의 모습은 어색... 난감... 그대로였습니다.
미소는 짓고 있었지만 그녀는 옆을 자꾸 두리번거리며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그 표정을 보면 빨리 그 식장을 벗어나고파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는데 이상하리만치 그날 그녀의 모습이 그에게는 무척이나 흥미롭고 재미있게 보였습니다.
이상한 일이라고요? 네 이상한 일입니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 나오는 남녀의 첫 번째 만남은 서로 부딪치거나, 어느 모임에서 만나게 되거나 하는 것 같은데... 예정에 없던 결혼식장에 참석하게 된 그녀를 보고 한눈에 반한다니....
어색하고 당황스러운 상황에는 그렇게 안절부절못하지 못하는 게 그녀의 버릇이라는 것은 한참 후에야 알게 된 것이지만... 그러고 보면 남녀가 만나는 순간을 이야기하는 것은 미스터리 한 일입니다.
세상에, 주의 산만한 모습을 보고 좋아하게 되었다니.... 다른 친구는 그것이 그와 그녀의 운명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한 커플이 출발하는 그 자리에 예정에 없이 나타난 그녀. 그날, 그녀가 선배 언니를 만날 약속이 없었다면 혹은 생각지도 못했던 결혼식장에 따라오지 않았더라면 그를 만날 수 없었을 테니까요.
그러고 보니 그 결혼식에 그가 참석하게 된 것도 예사롭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원래 그 결혼식이 있던 날에는 다른 약속이 있었기에 사실 그도 그 결혼식을 참석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결혼식 전날에 그 약속이 취소되었기에 그날 결혼식을 갈 수 있었습니다.
문득 첫눈에 반하다...라는 문장이 나오던 소설의 어느 부분이 떠올랐습니다.
"사랑이 깨어지는 방식은 이래.. 남자와 여자가 첫눈에 반한다. 대개는 남자가 먼저지. 그러다가 여자가 그 마음을 받아들인다. 사랑이 익숙해질수록 여자는 사랑을 조금씩 더 많이 주기 시작한다. 그러면 남자는 슬슬 여자가 지겨워지고 새로운 사랑에 흥미를 느낀다. 여자는 더 집착하고 그럴수록 남자는 더 떠나고 싶어 하고 그럴수록 여자는 더 집착한다. 그리고 끝.."
아마 그 소설은 공지영 님이 쓴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이란 제목일 것입니다.
그는 그 소설을 이렇게 바꾸고 싶었습니다.
"사랑이 이루어지는 방식은 이래. 남자와 여자가 첫눈에 반한다. 대개는 남자가 먼저지. 그러다가 여자가 그 마음을 받아들인다. 사랑이 익숙해질수록 여자는 사랑을 조금씩 더 많이 주기 시작한다. 그러면 남자는 점점 여자가 고마워지고 더욱더 진전된 사랑에 흥미를 느낀다. 여자는 더 사랑하게 되고.. 그럴수록 남자는 더 고마워해하고... 그럴수록 여자는 더 사랑한다. 그리고 결혼..."
이제 아내를 마중 나가야 할 시간입니다.
겨울에 눈이 아닌 비라니 먼저 퇴근한 그는 우산을 들고 아내를 마중 나갈 것입니다. 지하철의 계단을 올라오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 아내를 그는 금세 찾아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금방 알아보는 것이야 누구나 가능한 일이겠지만 그에게 있어서는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속에 숨어있던 그녀를 첫눈에 반해버린 아니 첫눈에 그녀가 남은 생애 내내 사랑하게 될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챘던 것 때문에 가능한 것은 아닐는지.
언젠가 그의 아내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날... 결혼식날... 나를 보고 어떤 느낌이 들었어?"
첫눈에 반해버렸다는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그는 다른 대답을 했습니다.
"음.. 갑자기 영어 문장이 생각나더라..."
"영어문장? 그게 무슨 소리야? 웬 영어?"
"그날 그 순간에 떠오른 것은... Is that real? She wouldn't be.."
"엥? 해석이...."
"그녀는 이 세상의 여자?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데..."
아내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리고 그를 한대 툭 치고... 커피를 가지러 갔습니다.
참고로 그 영어문장은... 1952년에 제작된 영화 조용한 사나이에서 존웨인이 말한 대사였습니다. 그날 제대로 먹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