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이야기
찬 바람이 부는 날...
방금 버스에서 내려 길 건너편에 번쩍 손을 드는 여자. 환한 미소를 지으며 길을 건너기 위해 건널목으로 다가오는 그녀.. 긴 머리를 묶어서 오늘은 더 예뻐 보이는 그녀.... 그가 사랑하는 여자... 바로 그의 아내입니다.
그는 아직도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녀를 아내라고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것 어떨 때는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내라는 이름을 이야기할 때에는 가슴이 설렙니다.
사람들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몇 년만 지나고 나면 그런 설렘은 다 사라지고 없을 거라고 말들 합니다. 그 말을 굳이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도 평범한 남자이고 시간이 흘러서 모든 것이 익숙함으로 바뀌는 때부터 어쩌면 지금 그녀를 바라볼 때 느끼는 설렘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할 때가 올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차피 먼 훗날의 이야기이고 지금 저 길 건너에 서 있는 그녀를 기다리는 이 짧은 순간이 이 흐뭇함이, 이 행복함이 너무 좋습니다.
신호가 바뀌었습니다. 도도한 걸음으로 다가오는 그녀. 이럴 때는 저 사람이 내 아내라고 사람들에게 마구 자랑하고 싶어 집니다. 저렇게 예쁜 사람을 본 적이 있느냐고 그렇게 묻고 싶어 집니다.
그리고 그 순간 하늘에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코트깃을 올려 세우고 환하게 웃으며 걸어오는 그녀와 함께 늙어갈 수 있는 특권을 갖게 되었다는 것.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요? 아니 알고 있었는데 잊어버린 걸까요? 어떤 일이 있어도 나를 믿어주고 나를 바닥으로 끌어내리지 않을 상대와... 결코 죽이고 싶지도 않고... 죽지 않았으면 하는 상대와... 함께 늙어갈 수 있는 특권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그녀가 마침내 그의 앞에 이르렀습니다.
"많이 기다렸지? 미안 미안.... 버스가 너무 늦게 와서...."
그는 씩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녀의 손을 잡았습니다. 차가운 손이지만 어디서나 잡을 수 있는 손, 아내의 손입니다.
"괜찮아... 아름다운 아내를 기다리는 건.... 멋진 남편의 특권이니까.."
"뭐어?"
아내의 웃음소리와 함께 그는 아내의 손을 잡고 걷기 시작합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함께 걸어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 세상 끝나는 날까지..... 그녀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