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성 미츠케 17-19번
에도성에 있었던 36개의 문에 대한 이야기, 오늘은 17번째 문부터 19번째 문까지의 이야기이다.
17.히토츠바시문 一ツ橋門
히토츠바시 미쓰케문은 1629년 무쓰국과 데와국의 다이묘에 의해 만들어졌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처음 에도에 왔을 때 이곳에는 큰 통나무 하나가 놓여져 있었고 그래서 이름이 히토츠바시 다리라고 불리게 되었다.
외나무 다리 이전에는 간이 통나무 외나무 다리가 있었던 것에서 유래했다. 히토츠바시문 동쪽에 히토츠바시문의 스미가타형 돌담이 남아있다 .그 끝에는, 안쪽 해자의 히라가와문이 보인다.그 왼쪽 바로 앞의 마루베니 빌딩 앞의 길을 따라 히토츠바시 도쿠가와 가의 저택터를 알려주는 표지가 있다. 8대 쇼군 요시무네의 3남 무네타다는 고산케로서 마츠다이라 이즈모리의 집터에 새로운 저택을 만들었고 이 저택과 가까운 히토쓰바시문을 자신의 가문 이름으로 지었다.
*고산케
고산케/어삼가(御三家, ごさんけ)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후손으로 도쿠가와 가문의 핵심 분가인 오와리(尾張) 도쿠가와 가, 기슈(紀州) 도쿠가와 가, 미토(水戸) 도쿠가와 가의 세 가문을 이르는 말이다.
이들은 도쿠가와 종가에서 쇼군의 후계자를 낼 수 없을 때에 세 가문 중에서 쇼군의 후계자를 낼 권한을 가졌다. 또한 이들은 일본의 주요 도시인 교토 근방의 오와리 번(아이치현 일대), 오사카 근방의 기슈 번(와카야마현 일대), 에도(現 도쿄) 근방의 미토 번(이바라키현 일대)을 영지로 삼아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도자마 다이묘들의 반란으로부터 막부체제를 수호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다리를 건너가면 히리카와문平川門 이 나오고 그 다리를 건너면 우치보리도오리가 나온다.
앞서 설명한 히토츠바시다리 부근에 있었다는 도쿠가와 무네타다의 저택사진 , 히토츠바시 요시노부의 10만석이라고 지도에 표기되어 있다. 이 저택은 대략 1740년경에 완성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도쿠가와 무네타다
도쿠가와 무네타다( 徳川宗尹 1721-1765) 혹은 히토쓰바시 무네타다(一橋宗尹)는 에도 시대 고산쿄 중 히토쓰바시가의 초대 당주이다. 에도 막부 제8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의 사남이다. 제11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나리(徳川家斉)는 손자이며 제12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요시는 증손, 제1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사다와 제14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모치는 현손에 해당한다.
이 지도를 다시 보면 히토츠 바시를 건너가면 안쪽 해자의 히라카와바시문이 있는 것이 보인다. 히라카와문을 건너면 에도성의 니노마루와 산노마루이다. 히토츠바시는 1872년에 철거되고, 현재의 다리는 1925년에 놓였다.
관동대지진때 다리가 무너지고 가교가 놓여져 있는 모습이다.
1925년에 세워진 히토츠바시다리, 그 건너편에 죠스이 회관이 보인다. 예전에 이곳에는 히토츠바시 대학이 있었고 그 동창회관이 죠스이 회관이다.
현재의 구글 지도에서 죠스이 회관의 위치가 보이고 그 아래 히토츠바시다리가 있다. 그 옆에 히토츠바시도쿠가와 가문의 집터一橋徳川家屋敷跡라고 표기 되어 있다.
18.키지바시문 雉子橋門
키지바시다리 역시 1629년 무츠국과 데와국의 다이묘에 의해 건설되었다. 현재 니혼바시 상류에 있고, 고쿄의 안쪽 해자(우치보리)에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다리이다. 원래 이 다리는 현재보다 100m 정도 상류에 있었다고 한다. 다리 이름은 도쿠가에 이에야스가 조선에서 온 사신을 접대하기 위해 키지(꿩)을 길렀다는 것에서 유래되었다. 이 다리를 건너가면 안쪽해자인 시미즈 해자가 나온다.
현재의 키지바시다리를 건너면 왼쪽에 마이니치 신문사 건물이 있고, 그 맞은 편에 안쪽 해자인 타케바시문竹橋門 보인다. 옛 히라카와 강의 유로를 따라가면 바깥 해자의 성문은 여기서 끝이 난다. 해자는 이 앞의 호리도메바시다리堀留橋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 앞은 간다가와 강까지 매립되어 있었지만, 메이지시대 이후 다시 굴삭공사를 통해 고이시카와문에서 간다가와강까지 합류한 니혼바시 강은 운하로서 이용되고 있다.
에도시대의 지도를 보면 키지바시를 건너면 시미즈해자清水濠가 보인다. 이 지도를 보면 키지바시를 건너 오른쪽에는 마굿간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지도를 보면 왼쪽 해자의 윗부분에 히토츠바시문이 있고 붉은 색 원이 키지바시문이다. 이 문을 건너 스미가타를 통과하면 타케바시문이 보였다.
*여기서 스미가타은 무엇일까?
https://ko.japan-travel-note.com/posts/244
사진에 보이는 해자가 시미즈해자이고 왼쪽 건물이 키지바시문이다. 그 문을 나와 왼쪽으로 가면 타케바시문이 있었다. 이 다리는 1873년에 철거되고, 그 뒤 철교가 들어섰으나 관동대지진으로 파괴되고, 1925년 지금의 다리가 다시 세워졌다.
19.타케바시문 竹橋門
타케바시 미츠케문은 1620년 마스카타문을 만들어 에도성 안쪽의 성문으로 경비를 맡았다. 이 곳은 원래 옛 히라카와 강의 유로로 히바야후미에서 내륙안쪽으로 이어지는 선착장이 있었다. 타케바시라는 것은 선착장에 대나무로 꼰 타케바시라고 부르던 부두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1769년 낙뢰로 이 문이 화재를 일으켰다는 기록이 있다.
이 사진은 히토츠바시 오반쇼(경비초소)방향에서 타케바시문, 그리고 그 오른쪽 해자 너머가 기타노마루를 향해 촬영된 것이다.
에도시대 지도를 보면 왼쪽의 히라카와문平川門과 오른쪽의 타케바시 문竹橋門 사이는 토교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렇게 양문을 연결하는 것은 혼마루와 가장 가까운 지점이었기 때문에 유사시에 양쪽의 경비병들이 서로를 도울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 지도를 보면 타케바시다리문을 통과하면 御春屋 이라고 쓰여 있는 건물이 나오는데 이곳을 오츠기야라고 불렀다. 이곳은 에도성에서 소비되는 쌀을 정미하고 떡을 찧는 곳이었다. 또한 에도성에서 사용되는 식재료와 원료등을 일괄적으로 관리하는 시설이었다. 지금은 이곳은 마이니치신문사가 있는 팰리사이드 빌딩이 들어서 있다.
왼쪽 해자위의 다리가 타케바시다리이고 그 앞의 건물이 팰리사이드 빌딩이다. 1871년 메이지 신정부는 이곳에 학교를 세웠다가 문부성이 오츠기야 자리에 있었다. 그 뒤 1931년에 문부성이 현재의 도라노문 쪽으로 이전하고 1966년에 마이니치 신문사가 유라쿠초에서 이곳의 팰리사이드 빌딩으로 이전해왔다.
팰리사이드 빌딩에서 내려다본 타케바시 다리, 이메이문. 이 문은 1872년 에도성의 21개 성문의 철거를 결정한 뒤, 다음해 3월부터 순차적으로 철거할 때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