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국의 어른답게 말합니다.
e북에 익숙해진 요즘, 오랜만에 종이책이 그리웠다. 한가한 주말 오후, 특별한 계획 없이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평소처럼 읽고 싶은 책 목록을 확인하며 서가를 헤맸다. 8002.56... 번호를 찾아 이리저리 왔다 갔다를 반복했다. 정신없이 책을 찾던 중, 예정에 없던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강원국 작가의 '강원국의 어른답게 말합니다.'
익숙한 저자의 이름에 손이 갔다. 독서 목록을 확인해보니 처음 보는 책이다. 원래 찾던 책과 함께 손에 쥐고 자리를 찾았다.
책장을 넘기다 가슴에 와닿는 문장들을 만났다.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
병은 입으로 들어가고,
화는 입에서 나온다.
최근 나에게도 말실수가 있었다. 감정이 앞서면 생각을 거치지 않고 말이 먼저 튀어나온다. 기분이 고조되거나 화가 났을 때는 더욱 그렇다.
말은 내뱉기 전까지만 내 것이다. 일단 입 밖으로 나가면 그 순간부터 듣는 사람의 것이 된다. 그래서 신중해야 하는데, 알면서도 실수하게 되는 게 말이다.
한 번의 말실수로 관계에 금이 간다. 금이 간 관계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아니, 완전히 회복되지 않는다고 보는 게 맞다. 회복됐다고 믿고 싶을 뿐, 그 상처는 서로의 기억 속에 남는다.
어제 내가 한 말이 오늘의 나를 만들고
오늘 내가 한 말이 내일의 나를 만든다.
누군가는 생각 없이 말하고, 누군가는 신중하게 말한다. 누군가는 말하고 나서 생각하고, 누군가는 생각하고 나서 말한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는 분명하다. 신중하게 생각한 뒤에 부드럽게 말하는 사람이다.
말은 씨앗이다. 어제 뿌린 말의 씨앗이 오늘의 나를 만들고, 오늘 뿌린 씨앗이 내일의 나를 만든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난다. 어떤 열매를 맺을지는 내가 뿌린 말에 달려있다.
다행인 건 운명은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잘못 심었다면 밭을 갈아엎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농사를 망쳤다면 새로운 씨앗을 뿌릴 용기가 필요하다.
나이만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몸은 20대, 30대를 거쳐 어른이 되었지만 말도 함께 성숙해야 한다.
나의 말은 나이만큼 자랐을까?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책 한 권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오늘부터라도 말의 무게를 더 신중히 생각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