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읽었다. 감수성이 한없이 예민하던 시절, 그 시의 정서가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그때부터였다. 학교 도서관에 앉아 그의 시를 읽고 외우며 그해 봄날을 보냈다.
중학교까지 나는 산과 들, 그리고 푸른 하늘과 강으로 둘러싸인 전원에서 자랐다. 자연 속에서 뛰놀던 시간이 전부였던 나에게, 고등학교 입학과 함께 광주로 온 것은 새로운 세상이었다. 특히 학교 도서관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새로 지어진 도서관 건물에는 수많은 책들이 가득했다. 책을 집으로 빌려갈 수는 없었지만, 도서관 안에서는 마음껏 읽을 수 있었다. 학교가 끝나면 도서관으로 향했고, 자연스레 김소월의 시집 앞에 머물렀다. 『진달래꽃』과 함께 『초혼』도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는 날마다 그 시들을 읽었고, 어느새 외우고 있었다. 특히 『초혼』을 읽을 때면 가슴속에서 알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다.
그러던 오늘 새벽, 친구가 반 카톡방에 김소월의 생애에 대한 글을 올렸다. 특히 『초혼』이 그의 첫사랑 오순이의 죽음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가 가슴을 파고든다. 나는 다시 그 시를 꺼내 읽는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부르는 이에게조차 닿을 수 없는 이름, 끝내 함께하지 못한 사람을 애타게 부르는 마음이 절절히 전해진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도 그 이름을 부르며 끝내 놓지 못하는 애틋한 심정. 예전에는 그저 아름다운 슬픔으로만 느껴졌던 시가, 이제는 가슴을 조이는 절규처럼 다가온다.
창밖을 본다. 희미한 새벽빛이 스며들고 있다. 김소월이 살았던 시대와 그의 삶이 문득 떠오른다. 그가 시로 풀어냈던 슬픔과 애통함이 이렇게도 생생하게 마음을 흔든다. 시대가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감정, 여전히 우리를 사로잡는 그리움과 상실의 무게. 그것이 바로 김소월의 시들이 지금까지도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이유일 것이다.
나는 조용히 시집을 덮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소월처럼, 나도 삶에서 마주하는 이별과 그리움을 어떻게 간직하고 풀어낼 것인가. 살아가면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때로는 스스로를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소월이 그러했듯, 그 모든 감정을 노래할 수 있다면, 그 슬픔마저도 아름다움으로 승화할 수 있다면, 우리는 결국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 아닐까.
무엇보다, 내 주위에는 아직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나 자신 앞에는 마음껏 사랑하고 불러볼 수 있는 하루가 선물처럼 놓여 있다. 그 사실이 나를 위로한다. 사랑하는 이들을 부를 수 있는 오늘이 있기에, 나는 다시 소월의 시를 가슴에 품고, 이 하루를 온전히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