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봄이 오면, 우리 부부는 노스캐롤라이나에 사는 딸 대보라의 집을 방문하곤 한다. 대보라는 나처럼 네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중 첫째인 큰 손녀 빅토리아는 늘 우리 부부의 방문을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빅토리아가 네 살이 되던 봄에도 우리는 어김없이 그리운 손주들을 만나러 갔다. 봄이 주는 따스한 기운처럼, 우리와 빅토리아의 재회는 언제나 포근하고 반가운 순간이었다.
첫날 저녁, 빅토리아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반겼다. 그녀는 내 손을 꼭 잡고 자신의 방으로 이끌더니, 방구석구석을 구경시켜 주었다. 특히나 빛나는 보석함을 열어 보여주며 자랑스러워했다. 보석함 속에는 색색의 목걸이와 반지, 꽃핀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마침 준비해 간 목걸이와 반지를 꺼내 빅토리아에게 걸어 주자, 그녀는 기뻐서 방방 뛰며 환호했다. 그 보석들을 다시 보석함에 조심스럽게 넣는 모습을 보니, 그 작은 손짓에서 큰 감동이 느껴졌다.
다음 날, 우리는 빅토리아를 데리고 피노키오 뮤지컬을 보러 갔다. 공연장에 도착하자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떠드는 소리에 우리 부부도 덩달아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무대가 어두워지며 피노키오의 모험이 시작되자, 화려한 조명과 음악에 우리는 순식간에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피노키오가 제페토 할아버지와 겪는 이야기는 마치 빅토리아와 우리의 관계를 떠올리게 했다. 피노키오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요정이 나타나 도와주는 장면에서는 관객들의 박수가 끊임없이 이어졌고, 우리 역시 흠뻑 빠져들었다.
공연 중간에 커다란 나비 날개를 단 아이들이 나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비들이 춤을 추는 듯한 그 장면을 보자 빅토리아는 아빠를 졸라댔다. “아빠, 나도 나비가 될래! 나비 날개 사줘!” 아빠가 공연이 끝난 후에 사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빅토리아는 공연 도중에도 계속 조르며 아빠와 함께 공연장 밖으로 나갔다. 조금 후 빅토리아는 핑크색 나비 날개와 피노키오의 지팡이를 손에 들고 돌아와 얼굴 가득 기쁨을 머금었다.
뮤지컬이 끝난 후, 출연진과 함께 사진을 찍고 차에 올라 집으로 향했다. 아이들로 꽉 찬 뒷좌석에서 빅토리아가 또다시 “엄마, 나비 날개 달아줘!”라고 말했다. 엄마가 집에 가서 달아주겠다고 했지만, 빅토리아는 여전히 고집을 부렸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잠깐 쇼핑몰 주차장에 멈추자.”라고 제안했고, 결국 우리는 차를 세워 그녀의 날개를 달아주었다.
다시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빅토리아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아빠, 나 안 날아가!”라고 외쳤다. 나비 날개를 달면 진짜 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어린 마음이었던 것이다. 날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한 빅토리아를 보며, 우리 모두는 애틋한 미소로 그녀를 달래며 말했다. “나중에 더 멋진 날개를 꼭 사 줄게.” 그제야 빅토리아는 눈물을 그치고 다시 밝은 미소를 띠었다. 그날, 우리는 손녀의 맑고 순수한 마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