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때 은중이 달빛이었다면 상연은 강렬한 태양이었다. 은중이 상연이 이사할 집. 그러니까 화장실이 2개나 있는 집 구경을 가서 ‘너는 참 좋겠다’라고 메모지를 붙이고 나왔을 때 은중은 드러나지 않은 소심한 아이였다. ‘떠든 사람 때려도 좋다’는 담임 선생님의 허락을 받아 무표정하게 은 중의 손바닥을 내리치던 상연은 강렬한 태양 빛을 뿜고 있었다. 그 누구도 가까이 갈 수 없는 화력으로.
20대 때 은중이 따뜻한 햇볕이었다면 상연은 칠흑 같은 빛을 가진 차가운 얼음 달빛이었다. 은중이 사진 동아리 상학 선배와 사랑을 하고 자신의 입지를 차근차근 다져가는 동안 상연은 집안 사정을 핑계로 모든 것을 놔버린 채 깊은 굴 속으로 빠져 버린 처연한 달빛이 되어 있었다.
두 번째로 상연과 은중이 만났을 때 두 여자의 운명은 상학을 사이에 두고 새롭게 시작되었다. 은중과 상학의 관계에서 늘 따라다니던 상연의 그림자는 어긋난 큐피드의 화살을 오롯이 맞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상연 오빠의 죽음에 대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날, 처절한 상실감에 산으로 도망치던 상연을 결국 상학이 외면할 수 없으면서 은중과 상연은 다시 헤어짐의 예고를 하였다.
상연의 일기장을 읽어 버린 은중이 마침내 관계를 정리하려 할 때 두 사람의 진심이 드러나게 된다. 집 보증금을 돌려주는 상연에게 안 받겠다는 은중, 그런 은중을 어이없어하는 상연이 말한다.
“너만큼 나를 혐오스럽게 만든 사람은 없었어. 얼마나 네가 더 우월하다는 것을 느껴야겠니?
상학 선배 나 가져. 이제 우리 다시 보지 말자.”
그리고 두 사람은 또다시 헤어지게 된다.
30대가 되어 세 번째 만남에서 다시 상연은 태양이 되어 있었고 은중은 뚝심 있는 지조 깊은 따스한 달빛이 되어 있었다. ‘널 이길 수 없어’라는 은중의 고백은 질투보다는 상연을 인정하는 쪽에 더 기울었던 것 같다.
이 이야기는 햇빛과 달빛을 교차적으로 거쳐 가는 두 여자의 관계를 알려 주는 이야기이다. 서로 좋아했고 의지했지만 질투했고 미워했으며 서로에게 상처가 되었던 순간들 때문에 드러나지 않은 갈등을 꼭꼭 숨기면서 관계 유지만을 위해 애써 왔던 친구의 이야기이다. 어쩌면 은중이 화장실 2개나 있는 집에 가서 ‘너는 참 좋겠다’라고 쓴 메모지는 은중과 상연이 서로에게 느끼는 복합적인 감정들이었던 셈이다.
40대가 되어 만난 네 번째 만남에서 상연은 달빛의 아픔과 햇빛의 재력을 가지고 돌아오고 은중은 사려 깊고 능력 있는 달빛과 작가로서의 힘을 가진 햇빛으로 다시 만난다. 그러나 상연은 시한부 인생이 되어 돌아오고 은중에게 생의 마지막 길을 부탁하게 된다. 상연의 죽음을 은중이 결국 조력하면서 서로가 외롭지 않은 길이었음을 깨달으며 이 서사는 마무리된다.
이 드라마의 제목은 은중과 상연이다. 정확한 작명이다. 드라마에서 이 두 여자의 삶 자체를 집중조명한다는 데 그 의미를 둔다면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은중은 은중 대로 상연은 상연 대로 자신의 삶 속에 깊이 들어온 상대의 삶을 질투하고 동경하면서 서로에게서 자신들의 결핍을 상쇄하면서 이해하고 수용하는 과정을 거치며 결국 서로를 보듬고 인정하게 된다.
친구관계란 또는 사람관계란 상대적이다. 늘 선인도 악인도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이 작품은 그런 미묘한 관계를 잘 풀어내었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그러나 속내가 다 비치는 두 사람의 내밀한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 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너는 참 좋겠다’라는 문장은 은중이 상연에게, 상연이 은중에게 느끼는 감정이다.
햇빛과 달빛은 서로 교차점이 없다. 하지만 상연의 마지막을 은중이 함께 하면서 이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위안이 되었음을 깨닫는다. 마침내 교차점이 생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