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뜨거운 경쟁사회이다. 요람에서부터 무덤까지. 치열한 경쟁을 치르고 산다. 경제규모 세계 10위로 선진국으로서의 위상을 외적으로 갖춘 듯 하지만 정작 선진국 기준에 의하면 자살률 1위, 노인 빈곤율 상위를 기록한다.
불안지수가 높고 죽도록 노력해서 평범해지기도 힘든 세상에 어떤 사람은 헬조선이라는 자조 섞인 말을 내뱉기도 한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이런 경쟁 사회의 냉혹함을 가르치는 것보다는 학생들의 인성을 가꾸는 일에 더 방점을 두고 교육활동을 벌인다. 특히 중등학교는 정체성이 정립되려는 예민한 시기이니 만큼 인성교육이 너무나 중요하다, 국어, 영어, 수학 문제를 잘 푸는 기술자를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과 화목하게 지내고 동료를 배려하여 더불어 사는 사람으로서의 소양을 기르는 데 중점을 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인성도 실력이라고 한다. 언뜻 맞는 말이다. 어떤 자리에서든 함께 일할 사람의 성품이 중요하다는 뜻일 테니 그 말은 분명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인성이 실력이 되어버리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사람됨의 본질이 아니라 경쟁의 수단이 되어 버린다.
‘봉사활동 시간을 어떻게 채워야 대학 입학 전형에서 점수를 더 받을 수 있나요?’라고 묻는다면 거기에는 씁쓸한 현실이 숨어 있다. 남을 돕는 행위가 점수를 위한 스펙이 되고 따뜻한 마음이 입학 원서 서류한 줄로 환원되는 순간 인성은 이미 상품이 되어 버린다.
‘인성도 실력이다’라는 말은 마치 사람 됨됨이조차 경쟁해야 하는 시대라는 선언처럼 들린다.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착해 보여야 유리하니까 착한 척을 하는 세상, 진심은 점점 사라지고 겉모습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러나 인류가 이만큼의 역사를 누적해 온 것은 대부분 선의의 사람들이 본질에 충실하게 자기 역할을 해 온 결과임은 틀림이 없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인성, 또는 올바른 가치관을 함양하기 위한 훈화를 자주 들려주곤 한다. 책 읽기도 추천한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정체성에 자연스럽게 스미기를 바라는 뜻에서이다. 어른들의 가르침을 수용하고 그를 실천에 옮기는 기특한 학생들이 있어 그나마 보람을 느끼곤 한다.
몇 년 전 학교를 졸업하면서 청소하시는 미화원 아주머니께 손 편지를 드린 학생이 있었다. ‘학교를 깨끗하게 해 주시는 요정 선생님’으로 시작되는 편지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부터 교실, 교무실, 화장실 안팎을 청소해 주는 청소 용원 아주머니에 대한 인사와 고마움이 들어 있었다. 따뜻한 손뜨개의 털장갑과 함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기 일을 묵묵히 하는 이웃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을 건넬 줄 아는 인성을 보인 학생의 이야기이다.
9월에는 이런 일화도 있었다.
말이 어눌하고 행동이 느린 할머니 한 분이 학교에 오셨다 교장 선생님을 만나 뵙고 싶다며 손 편지를 건넸다. 연필로 꼬박꼬박 눌러썼으며, 이곳저곳 문맥과 맞춤법이 틀린 손 편지였다.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사연은 이렇다.
본인은 탈북 할머니인데 뜨거웠던 여름날 은행을 찾다 그만 길을 잃었다 한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그때 우리 학교 한 학생이 다가왔다고 했다.
“할머니 어디 불편하세요?”
“은행에 왔다가 집으로 가는 길을 못 찾겠구나”
“할머니, 잠깐 기다리세요. 제가 찾아 드릴게요. 그런데 제가 지금 급한 일이 있어서 잠깐 그 일만 해결하고 10분 이내로 다시 올게요”하였다 한다.
설마 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서 기다리고 있으니 정말 그 학생이 돌아와서 집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하셨다.
그 학생이 너무 고마워서 교장 선생님께 이렇게 훌륭한 인성을 가르쳐 주신 선생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 찾아왔다고 했다. 일찍 오고 싶었는데 허리병 치료를 하느라고 지금에야 왔다고 했다.
나는 인성이 실력이 아닌 삶의 태도였으면 한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이 그렇게 움직이기 때문에 하는 행동이어야 한다. 인성을 실력이라 부르는 순간 우리는 또 다른 경쟁의 출발선에 서게 된다. 그리고 그 끝에는 어쩌면 진심이 아닌 ’ 연기된 선함‘만이 남을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인성이란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가 겪었던 두 학생들의 마음처럼 의도된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행해지는 그 사람 자신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