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된 아이

by 몽글몽글

잦은 비와 폭염이 9월이 다 가도록 사그라지지 않더니 갑자기 아침저녁으로 초겨울 기온으로 내려간다고 외투를 잘 챙겨 입어야 한다고 모니터 속의 기상 캐스터가 다급한 소리로 안내한다. 벌써 강원도에 첫눈 내렸다는 소식을 전해주기도 한다. 이상 기후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지 별로 놀랍지도 않다.


가을이 스치듯 지나가 버리자 겨울옷을 준비해야 하나 생각에 옷장 문을 연다. 겨울 옷은 언제나 그렇듯 무채색 일색이다. 두툼한 외투들이 묵직한 습기를 머금은 채 손끝에 와닿는다. 그러다 문득 더플코트에 눈이 갔다. 짙은 네이비 색 모직에 나무 단추로 장식되어 있는 겨울 외투이다. 단추 모양이 소시지처럼 생겼다 하여 소시지 외투라고 불리던 대학생들 사이에서 한 때 유행했던 옷이었다. 순간 더플코트의 먼지 사이로 영은이가 스쳐 간다. 짧은 탄식이 목구멍 안쪽을 스치듯 지나갔다.


새내기 교사였을 때 나는 시골 학교에 근무했다. 전교생 수가 지금은 몇 십 명으로 줄었지만 그래도 그때는 전교생 300명 정도의 학교였는지라 대도시 학교와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주변 환경, 학부모들의 태도, 지역사회의 인식은 대도시의 그것보다 훨씬 친절했다.


학교는 읍내에서 20분 정도 버스로 가서 마을을 지나는 큰 도로변에 있었다. 페인트 칠이 변색되어 원래의 색깔을 짐작할 수 없을 만큼 퇴색되어 있는 3층 건물이었다. 오래된 철봉대가 녹슨 금속 빛을 비추면서 반짝거렸지만 운동장에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국기 게양대에 펄럭이는 태극기처럼 펄떡거리고 있었다. 정문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어 학교 앞 간이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마을 사람들의 쉼터가 되어 주고 있었다. 학교 뒤로는 마을을 이루고 있었고, 마을 곳곳마다 심어져 있는 대추나무가 이 고장의 특산품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새내기 교사인 만큼 풋풋함과 생기발랄함으로 무장했다. 시골 학교라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그래도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에 감사하였다. ‘좋은 선생님으로 살아야지’라는 다짐을 했다.

나에게는 1학년 담임이 배정되었다. 드디어 새 학년 출발이었다. 그런데 첫날부터 유난히 표정이 무표정한 아이를 발견했다. 중학교 1학년 정도면 새 학년 새 학기이라 모두들 들떠 있는 것이 정상이었고 특히 새 담임을 만나는 장면에서는 더욱 싱그러움이 넘쳤다.


아이는 늘 교실 창가 맨 뒤 구석 자리에 앉아 있었다. 햇살이 교실 한가운데로 쏟아져 들어와도 아이의 얼굴에는 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학생 신상파악을 위해 실시되었던 상담주간에 상담을 할 때 아이와 좀 더 이야기를 해 보고 싶어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으나 양손을 만지작거릴 뿐 답이 없었다. 축 늘어뜨린 고개 밑으로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자연히 시선이 아이의 손끝으로 갔다. 얼마나 뜯었는지 손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손가락 끝에 약간 붙어 있었고 엄지 손가락 끝에 불긋한 피가 맺혀 있었다. 질문을 하면 할수록 아이의 고개는 더욱 떨구어져 나는 할 수 없이 아이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교무실로 체구가 작지만 아주 노인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젊은 듯한 학부모님 한 분이 오셔서 나를 찾았다. 낡은 베이지 색 잠바를 단정히 여미고 양손에 무언가 보따리를 들고 서있었다. 보따리는 바랜 분홍 빛 천으로 어디 가게를 소개하는 홍보 문구가 청색으로 쓰여 있는 그러나 오래 써서 군데군데 지워져 있는 보따리였다. 보따리를 쥔 손끝이 견고하고 단정해 보였다. 얼굴엔 주름은 있었지만 그 주름 사이로 묘한 단정함과 품격이 배어 있었다.

“강영은 할머니인데요. 담임 선생님 만나러 왔습니다.”

사투리를 전혀 쓰지 않은 단정한 말씨였다.

“예, 할머니, 제가 영은이 담임이에요.”

깊숙이 머리 숙여 절을 하는 할머니의 등으로 가을을 알리는 바람 한 줄기가 지나갔다.


마침 관심이 가던 아이의 할머니가 방문을 해서 나는 반가운 마음이었다. 할머니는 땅바닥에 보따리를 놓고 앉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엄마 아빠가 교통사고가 나서 갑자기 고아가 되어 버린 영은이. 아들 내외를 잡아먹은 대도시의 소음이 너무나 보기 싫어 할머니는 영은이를 데리고 시골로 내려왔다는 것이다. 되도록 번잡한 곳에서 모습이 안 보이게 깊숙이 숨어버릴 마음으로. 아들이 그래도 잘 나가는 사업을 해서 유복하게 우리가 잘 살았다 한다. 영은이가 모든 것에 혼란스러워한다는 것이다.

“어제는 영은이가 집에 오자마자 막 울었어요. 담임 선생님이 질문하는데 아무런 대답도 못 헸다고....... 선생님, 우리 영은이 저 불쌍한 것. 잘 봐주세요. 부탁입니다.”

목소리에 절박함이 묻어 있었다. 그리고서 아까부터 꼭 쥐고 있었던 보따리를 내밀었다. 매듭이 단단하게 묶여 있었다.

“대추예요. 선생님 잡수세요. 이것밖에 드릴 것이 없답니다. 어제 대추 딴 집에서 얻어 왔어요.”

햇볕에 반쯤 말라 반들반들 윤이 나는 왕대추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단내가 교무실 안을 확 풍기자 주위 샘들의 시선이 꽂혔다.

“할머니 드세요. 저한테 이런 거 안 주셔도 영은이는 잘 돌볼게요.”극구 사양했지만 마치 할머니는 이 대추를 놓고 가야만 영은이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인지 책상 위에 애써 들이밀었다.


어릴 적 선생님들이 잘 사는 집과 못 사는 집 아이를 차별한다고 느꼈을 때 나는 선생이 되면 절대로 부모의 재력을 가지고는 아이들을 평가하지 말자고 다짐했던 적이 있었다. 담임 선생님은 육성회비를 기한 내에 내지 않은 학생들을 아이들 다 듣는 데에서 크게 불렀었다. 내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에는 1도 관심이 없었다. 우리 집은 가난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형제들이 많다 보니 부모님이 힘들 것 같아서 육성회비 기한 내에 납부해야 한다는 말을 못 했던 것이었다. 이름을 부르고서 으레 벌청소를 시켰다. 육성회비 기한 내에 안 내는 게 벌청소를 할 만큼 잘못한 일이 아니었지만 교실의 권력자의 처분이니 그대로 따라야 했다.


또 선생님은 저금 많이 하는 아이를 뽑아서 ‘저축 왕’ 상장을 전교생 앞에서 주고 그 아이의 절약 정신을 엄청 칭찬했다. 다른 애들은 절약할 용돈 자체도 없는데 부모님이 주신 돈으로 저축한 아이에게 상장을 주는 것이 정말 이상했던, 항의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던 내 어린 날의 부조리였다.


내가 선생님이 되면 부모님이 뭘 갖다 주어도 절대로 받지 않고 그에 따라 아이들을 차별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것이다. 그런데 영은 할머니가 대추를 가져오신 것이다. 영은이를 잘 돌보아 달라며. 나는 극구 사양했으나 할머니는 등을 깊숙이 구부리며 연신 인사를 하고는 황급히 돌아갔다. 교문을 나서는 할머니의 발걸음이 자꾸만 나를 돌아보았다.


할머니가 다녀가신 뒤로 나는 영은이의 경계심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자신을 내맡길 수 있고 속내를 맡길 수 있도록 나는 안전한 사람이 되어 주기로 했다. 자취방에 가서 널브러져 있는 방을 치우고 바닥에서 밥을 먹는 영은을 위해 알루미늄으로 된 둥근 은색 밥상을 사 주었다. 그리고 된장을 풀어 각종 야채를 넣고 뜨끈한 쌀밥과 함께 밥을 먹었다. 주인집 텃밭에 나가 상추를 뜯어서 볼이 터지도록 쌈을 싸 먹기도 했다.


계절이 지나감에 따라 영은이의 표정도 밝아지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려 얼굴 한쪽을 덮다시피 했던 영은이가 어느 날 단정하게 머리카락을 묶었다. 계란형 얼굴에 이목구비가 오목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햇빛에 약간 그을리긴 했지만 피부 안쪽으로 말간 광채가 부끄러운 듯 은은하게 빛났고 눈동자는 깊은 우물처럼 그윽했다. 손톱을 물어뜯던 버릇도 뜸해져서 손톱 밑으로 새 살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영은이가 3학년 되던 가을이었다. 간부 수련회에 영은이는 부회장으로, 나는 지도교사로 참석했었다. 행사가 끝나고 아이들이 잠을 자러 갔을 때 영은이가 살포시 나와 내 옆자리에 앉았다. 한낮의 더움이 한결 서늘해져서 나뭇잎 사이를 스칠 때마다 바스락 소리가 났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 투명하고 차가운 공기와 만나 반짝거리고 있었다.

“선생님, 사후세계는 있을까요?.”

건조한 목소리였다

“사람이 죽으면 정말 아무것도 없을까요?”

이번에는 목소리가 갈라졌다.

“나는요, 엄마아빠한테 죽으면 가서 물어보고 싶어요. 왜 인사도 없이 가셨냐고.......나는요, 죽어 별이 되고 싶어요. 별은 반짝거려서 외롭지 않을 것 같거든요.”

목소리에 피가 끓었다. 울컥 치밀어 오르는 뜨거운 입김이 가슴을 쳤다. 영은이는 고개를 두 무릎에 푹 파 묻었다. 우는 건지 아니면 신음 소리를 내는 건지 어깨와 등이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순간 이 아이의 황량한 어깨에 무언가 따뜻한 이불을 덮어주고 싶었다. 엄마 픔속에 푹 파묻혀 맘껏 응석 부려도 좋을 따뜻함과 포근함으로 그 아이를 감싸주고 싶었다. 다음 날 나는 읍내로 가서 겨울 채비를 위해 네이비 색 더플 코드를 2개 샀다. 하나는 영은에게 하나는 나에게 주는 겨울 대비 선물이었다. 커플로 차려입고 거울을 보며 우리는 깔깔거렸다. 영은이의 함박웃음이 낡고 좁은 방안을 환하게 비췄다.


그리고서 영은이는 읍내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입학 후에도 계속 연락이 오더니 여름이 지나고부터 소식이 끊겼다. 너무 추억과 과거에 집착하면 진취적 성장에 도움이 안 될 것 같아 제 갈 길을 가라고 나도 약간 거리를 두었다.


그날도 가을이었다. 들판의 벼이삭들 위로 금빛 물결이 산을 이루고 교정의 은행나무 잎들이 노란 나비가 되어 너풀대는 날이었다. 하늘은 높고 맑아서 서늘한 바람이 지나가고 있었다. 영은이 할머니가 찾아오셨다. 영은이 할머니는 영은이가 재학 중에 학교를 제 집 마냥 드나들어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봄에는 빨간 대야에 딸기를 이고 와서 선생님들께 드리며 ‘우리 영은이 잘 부탁드립니다.’ 하고 연신 허리를 숙였다. 여름에는 차갑게 식힌 수박을 낑낑거리며 들고 오셨다. 가을이면 어김없이 굵고 알찬 빨간 대추를 들고 오셨다.


그날도 영은이 할머니의 내교는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할머니. 영은이 잘 지내지요? 6월쯤에 워드 자격증 시험 봐야 한다고 걱정하던데.....”

“선생님, 우리 영은이........”

할머니의 눈빛이 멍하니 얼어붙어 있었다. 그제야 할머니의 주름이 더 깊게 파이고 더 희뿌애진 은색 머리칼이 헝클어져 있음이 보였다. 남루했지만 늘 단정했던 옷매무새도 그다지 정갈해 보이지는 않았다.

“우리 영은이......

제 부모 곁으로 가 버렸어요........ 여름 교회 수련회 물놀이 갔다가. ”

허공을 맴도는 듯한 목소리가 교무실 공기 속에서 앵앵거리며 흩어졌다 모였다를 반복했다. 창밖의 바람이 세차게 유리창을 덜컥거리고 있었다. 암막이 쳐진 듯 무대 안의 조명이 꺼져 버렸다.

소각장에서 영은이의 더플코트를 꺼내 들었다.

“우리 영은이가 아끼고 아끼던 옷이에요. 그냥 태워 버리려다가 선생님의 처분에 맡기려고 가져왔어요.”

나는 타오르는 불길에 옷을 던졌다. 불이 조용히 옷자락 끝을 핱았다. 잠시 후 작은 불씨가 점점 커지자 천은 선선히 검게 말려 들고 가장자리에서부터 벌건 불길이 타 올랐다. 섬유가 타며 내는 미세한 소리가 ‘타닥’ 하고 들렸다. 마치 우리의 기억과 추억이 부서지는 듯한 소리였다. 불빛은 일렁이며 옷의 형태를 잠시 비추다가 곧 하얗게 재로 변해갔다.


희미한 연기가 바람과 함께 섞여 매캐하다. 그 냄새는 영은이에 대한 추억과 나의 그리움이 뒤섞인 냄새다. 별이 되어 부모 곁으로 가면서 내게 건넨 인사의 냄새이다. 나는 지금도 그 냄새 속에 영은이를 안고 산다. 오늘처럼 찬 바람이 일기 시작하면 그 애와 함께 입었던 우리들의 더플코트가 생각난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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