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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진정성 : 퇴임 경영진이 주관한 타운홀 미팅

by 와이즈맨


퇴직한 경영진이 타운홀 미팅을 운영했다.


2025년 5월 12일, T기업의 타운홀이 진행되었다. 행사장 가득히 의자가 촘촘히 놓여있었고, 많은 구성원들이 빽빽하게 앉아서 행사에 참여하고 있었다.

T기업은 2020년 10월 회사가 출범한 이후로 3년간 매월 타운홀 미팅을 진행해왔다. 그 사이 회사의 대표가 바뀌고 모든 나를 포함한 모든 C-Level 전원이 교체되었다. 이후로도 타운홀은 계속 진행되어왔다.


오늘 타운홀은 매우 특별한 행사였다. 이미 퇴직하고 자리에 없는 T기업의 초대 대표와 C-Level들이 주관하는 행사였다. 그 자리에는 그들과 함께 했고 그들을 기억하는 전현직 임직원들이 참석하고 있었다.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상황이다. 경영에 전혀 책임을 갖지 않는 이들이 기업 현장에 나서는 행사를 생각해본 적이 있던가. 그런데 그런 일이 내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2023년 6월 이후 거의 2년 만에 이뤄진 행사는 과거와는 달리 매우 약식으로 진행되었다. 이전에는 행사 시작 안내 후에 Opening Game, 경영현황, 부서별 핵심 Agenda, 주요 소식, Q&A 순으로 1시간 남짓 운영되었다. 하지만, 오늘은 Y대표의 메세지와 Q&A, CFO의 wrap-up 등 10분 내외로 매우 간단히 진행되었다.


대표의 메세지는 간단했다. 대표는 회사의 시작을 함께 하고 지금의 성장을 이끌어준 임직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달했다. 그리고, 더욱 성장하고 굳건한 회사를 이끌어주기를 당부했다.


Q&A는 단 한건의 질문으로 끝났다. 평소 20~25개의 질문이 쏟아졌던 것과는 달리 의아하게도 현장에서 접수된 하나의 질문이 전부였다.

"우리는 콘텐츠 크리에이터인데, 우리의 직무와 명함에는 크리에이터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직무에 대한 자부심을 갖도록 해당 명칭을 사용할 수 있었을까요?"

3년 전에 콘텐츠 기획 직무에 크리에이터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못했던 부분을 묻는 질문이었다. 우리의 타운홀미팅은 대표만 대답하지 않았다. 질문과 관련된 C-Level이 직접 대답하는 방식이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CHRO였던 내가 마이크를 전달받았다.

"질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과거 우리는 직무 중심의 인사 제도를 구축하며 직무를 재정의하고 조직개편을 진행했었습니다. 그리고 콘텐츠 기획 인력에 대해 PD 또는 크리에이터라는 직무명칭을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회사가 규정하지 않은 직무에 대해서는 외부에 또는 명함으로 활동하지 않도록 우리는 안내했었습니다. 당시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를 반추해보니 실제 업무를 하는 여러분들께 크게 동기부여하지 못한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지 못했고, 업무 활동에 도움 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불어, 시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이런 답변을 드리게 된 점을 송구스럽게 여깁니다. "


이어 CFO는 간단한 영상을 보여주고 마무리 멘트를 남기며 행사를 종료했다.

"지난 3개월간 제가 굉장히 바쁘고 변화무쌍한 시간을 거쳤는데요, 바쁜 와중에도 이번 타운홀을 준비하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략) 오늘 타운홀 미팅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엉뚱한 꿈을 꾸었다.


5월 12일 새벽 나는 꿈을 꾸고 있었다.

퇴직한 회사에서 타운홀 미팅을 운영하는 엉뚱한 꿈을 꾸었던 것이다.

2년전 나는 T회사를 떠났다. Y대표를 비롯한 C-Level들도 이제는 각기 다른 공간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은 당시 CFO가 주축이 되어 모처럼 저녁을 함께 하기로 한 날이다. CFO는 최근 한 언론사의 임원으로 위촉되었고, 오늘은 그의 행보를 축하하며 오랜만에 회포를 푸는 자리가 될 것 같다. 그 시간을 앞두고 그들이 보고 싶었을까? 그 시절이 그리웠을까? 소중한 인연과의 재회를 앞두고 나는 그들과 함께하는 꿈을 꾸었다.

꿈일지언정 감사한 사람을 만난 것은 매우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일하며 지키고자 했던 약속을 재확인했던 것도 소중했다.




우리가 만든 타운홀, 그리고 원칙


나는 타운홀을 진행하는 꿈을 꾸었다. 우리의 타운홀에는 두가지 원칙이 있었다.


'매월 진행한다. 그리고 숨기지 않고 투명하게 한다.'


우리는 단 한번도 타운홀을 빼먹지 않았다. 코로나 시절에도 온라인을 통해서 우리는 매월 모든 임직원이 소통을 해왔다.

그리고, 솔직하게 소통했다. 특히 Q&A는 나름 우리 타운홀 미팅의 자랑거리였다. Q&A는 사전 질문과 현장 질문으로 운영되었다. 사실 현장 질문을 시도했지만, 질문이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익명으로 사전질문을 시도했고, 질문은 숫자가 늘어남은 물론 '감히'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질문도 생겨났다.


'실적이 예상을 하회합니다. 어떤 생각이신가요?'

'합병 소식이 외부에서 들리고 있습니다. 구성원에게 공유해주실 수 있나요?'

'외부에서 리더를 뽑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곧 기념비적인 성과가 예상됩니다. 포상 계획을 갖고 계십니까?'


먹고 생활하는 문제도 중요했나 보다. 복지와 관련된 질문도 많았다.


'아메리카노 외에 라떼도 먹고 싶습니다. 우유를 제공해주세요.'

'다이어터를 위해 저지방 우유도 추가해주세요.'

심지어 화장실 휴지가 너무 거치니 부드러운 것으로 교체해달라는 질문도 있었다.


한켠으로는 민감한 경영정보에 대한 질문도 있었고, 또 한켠으로는 이런 것까지 회사에 기대할까라고 여겨지는 질문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질문을 거르지 않았다. 회사들이 구성원들과 소통을 할 때는 보통 '주요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질문'에 대해서 답변을 했다. 질문을 필터링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유하며 소통했다. 우리가 필터링한 질문은 중복질문과 질문에서 사람이 특정되어 피해가 예상되는 것들 뿐이었다.

우리는 '매월'과 '투명함'이란 원칙을 추진했고 고수했다. 그리고 타운홀미팅은 우리 회사의 조직문화를 대변하는 상징과도 같았다.




진정성. 소통과 조직문화를 위한 회고


많은 회사들이 타운홀을 진행한다. 구성원들과 소통을 위한 행사를 진행한다. 하지만 구성원들은 의례적이고, 일방향의 메세지를 전달하는 행사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뻔한 이야기들, 우리가 듣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 회사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만 한다고 생각을 한다. 과연 그러한 타운홀 미팅에서 진정성이라는게 느껴질 수 있을까?


타운홀 미팅의 목적은 듣고 질문하고 대답하며 소통을 하는 문화를 만들고 신뢰를 쌓으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과 회사에 자부심을 갖고 몰입하는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듣고 싶은 이야기는 없고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만 있다면 과연 그 안에서 어떤 소통이 이루어지고, 어떠한 조직 문화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과연 우리가 기대하는 소통의 진정성은 무엇인가.


혹여, 임직원 소통 행사를 기획하는 경영진과 주관 부서가 있다면, 과감하게 우리의 행사는 어떤 모습인지를 생각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우리의 목표는 행사를 진행하고 마무리하는 게 절대 아니다. 목적은 조직 내 관계 속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말하고 듣고 나누며 신뢰를 쌓아하는 것임을 확인하고 싶다.


T회사의 경영진과 주관부서를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 역시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소통의 문화를 발전시켜 온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조직의 소통은 회사가 만들어 놓은 행사 순서에 따라 일방적으로 전달을 할 뿐,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없다. 참가하는 직원들은 그저 의무적인 관객의 모습으로 참여해서 앉아 있는 모습들이 많고, 온라인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은 화면을 꺼놓고 이름만 등록해놓고 있다. 행사는 박수와 함께 마무리되지만, 과연 경영진, 구성원, 주관부서는 그 행사에 얼마나 만족하고 있을까? 설마, 주관부서는 '타운홀 끝냈다', 구성원은 '타운홀 끝났네'라는 의무감과 기억으로만 남는 것은 아닌지 회고해 보고 싶다.




꿈에서 깨며...


동료들과의 재회를 앞두고 꾼 꿈은 T기업의 타운홀이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신뢰와 소통의 상징이었음을 깨닫게 했다. 오늘 그들을 만나, 우리가 함께 만든 소통의 문화를 다시금 되새기고 싶다. 조직의 리더라면, 구성원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듣는 타운홀을 만들어보자. 그 작은 시작이 조직문화를 바꾼다.


꿈의 마지막 장면이다.

행사장에 남아서 임직원의 퇴장을 지켜보고 있는데, 갑자기 사업관리팀장이 다가왔다.

"수고했어. 그건 준비했지?"

그거?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를 못했다.

"회비말야. 좀 있다 회비 걷을게."


그래. 회비도 내야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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