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풀이 : 이상과 현실 1
집이 망했다는 것을 깨달았어도 바뀐 건 집의 크기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난은 집의 크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마음의 크기도 좁게 만들었다. 누리고 있던 것들이 사라질 때 인간성도 사라진다는 말을 이때 깨달았다.
주부였던 엄마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사회에 뛰어들었고, 그렇게 우리 부모님은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청소 일을 시작했다.
"일이 힘들었을까?" 아니면 "가난이 싫었던 걸까?" 아니면 "탓할 사람이 필요했던 걸까?"
화목했던 집안은 매일 밤 전쟁터로 변했다. 두 분의 다툼은 잦아졌고 이 가난으로 인한 다툼은 모두 아빠가 초래했다는 것을 초등학교 3학년인 내가 알아차릴 정도로 시끄러운 소리들이 방을 뚫고 들어왔다.
1분 차이의 쌍둥이를 친구로 생각했었던 나는 그 언성들이 뒤엉키는 환경 속에서 여동생으로 대했다. 아직도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나만은 착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그때 동생을 보살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던 생각만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난 착하지 않았다. 가난이 원망스러웠고 원망은 자연스럽게 부모님을 향했다. 새로 사귄 친구들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것을 알기 전과 후에도 판자촌 같은 집에 한 번도 초대한 적도 없었다. 집이 창피했고 부모님의 직업이 창피했다. 자연스레 놀이터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졌고 반항심도 커져만 갔다.
이때 내가 거짓말을 태어나서 가장 많이 했던 시기인 것 같다. 어느 날 일에 지쳐 우리에게 신경 쓰지 못했던 엄마가 일기를 잘 쓰고 있냐고 물었다. 검사를 못하기 시작한 이후로 나는 단 한 번도 일기를 쓰지 않았다.
근데 내 입에서는 이런 말이 나왔다.
"응 나 다 쓰고 있는데? 못 믿겠으면 검사해 볼래? 지금 다 가져다줘?"
당당하게 나가야 된다고 생각했거나 엄마는 힘드니까 절대 검사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는지 내 입에서는 저렇게 내뱉고 있었다. 당시에는 검사하지 않고 알겠다고 넘어갔으나 이후에 몰아서 쓰는 와중에 엄마에게 걸렸다. 엄마는 나에게 소름이 돋는다고 말했다. 아마 나였어도 그랬을 것 같다.
이 시절에 모든 게 창피했고 미웠던 나는 가난을 핑계로 더욱 엇나가기 시작했다.
만약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찾아간다면 아마 흠씬 두들겨 팼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