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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안녕 Dec 18. 2024

너한텐 한 푼도 못 줘

(짠돌이 남편의 최후) 마지막 편

아내는 남편과 첫 번째 이혼소송을 진행하기 전부터 2년 동안 별거했기 때문에 실제 부부로 동거하며 생활한 기간은 3년 정도에 불과했고, 인터넷 검색으로 재산분할에서 높은 기여도를 인정받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내는 아이와 함께 살기 위한 집을 마련할 전세금이라도 있어야 했고, 변호사와 함께 남편 명의로 된 재산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실망스럽게도 아내에게 생활비를 주지 않으려고 애썼던 남편의 계좌에는 생각보다 많은 돈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변호사는 남편이 첫 번째 이혼소송에서 절대 이혼할 수 없다고 우겼던 이유가 아내에게 재산분할을 해주지 않으려는 의도였을지도 모른다고 했고, 아내는 이혼 소장을 제출하기 직전에 남편의 계좌에서 몇억 원의 목돈이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남편은 시부모님에게 1억 원이 넘는 고가의 독일제 차량을 선물했고, 자신의 차량도 시부모님과 동일한 차종으로 바꾸는 등 분풀이라도 하듯 큰돈을 마구 썼습니다. 아내는 아파트 대출금조차 제때 갚지 않던 남편의 행태에 크게 분노했습니다.



아내가 이 부분을 지적하자 남편은 부정한 아내에게 한푼도 줄 수 없다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남편은 아내가 재산분할을 받으면 그 돈을 가지고 그 남자에게 갈 것이 확실하고, 아이는 방치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 그대로 남편은 아내에게 줄 돈을 최대한 줄이려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습니다.


남편은 소송 직전에 가지고 있던 돈을 전부 코인에 넣은 뒤, 코인이 급락에 급락을 거듭하는데도 이를 방치했습니다. 처음에는 5억 원이었던 돈이 6개월 만에 9천만 원이 되었고, 아내는 아이와 함께 살 집조차 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크게 절망했습니다. 재산은 대부분 남편 명의로 되어 있었고, 아내의 수입은 전부 생활비로 사용했기 때문에 아내에게는 돈이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부동산 거래량이 급감해서 공인중개사인 아내의 수입은 크게 줄어들었는데, 남편은 아이의 양육비조차 주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남편은 부모님으로부터 수억 원을 빌렸다는 차용증을 만들어 제출하면서 채무가 있다고 주장했고, 남편과 아내와 협의하여 시댁에 보낸 용돈들은 빌린 돈에 대한 이자를 지급한 것으로 둔갑했습니다. 남편은 재판에서 ‘아내가 재산을 형성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시댁에서 마련해 준 집에서 지내면서 일도 하지 않았다’라고 서슴없이 거짓말을 했습니다. 아내는 만삭이 될 때까지 회사에서 다리가 퉁퉁 붓도록 일을 했고, 출산 후에는 몸이 약한 아이를 돌보기 위해 퇴사를 결정한 것인데, 자신의 역할을 한 푼의 가치도 없다고 여기는 남편에게 더는 기대할 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아내는 남편이 명의신탁으로 아파트를 분양받아 취득하는 등 불법행위로 재산을 불렸고, 친정 모친의 명의가 남편의 불법행위에 이용되었다는 사실을 밝히기로 결심했습니다.


남편은 명의신탁으로 인한 과징금이 부과될까 봐 난리를 부리다가, 아파트를 시세보다 낮은 가격으로 매각해 버렸고, 아내가 분할받을 재산은 점점 줄어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다행히 아내의 변호사는 아내가 아이와 함께 살 집의 전세금만큼은 확보해야 하는 사정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남편의 고의적인 재산 축소 행위가 부당하고, 그만큼 아이를 양육해야 하는 아내에게 재산분할에서도 부양적 요소를 포함해 배려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재판에서 적극적으로 강조했습니다.


남편이 재산의 액수를 많이 줄여놓기는 했지만, 재판부는 아내의 주장을 받아들여 남편이 혼인 기간 및 이혼소송이 진행되는 기간에 재산을 독자적으로 처분할 결정권이 있었는데, 그 상태에서 보유하던 아파트를 저렴하게 매각하고, 가상화폐의 급락 역시 부부의 혼인 파탄 이후 남편의 개인 사정에 의한 것으로 분류하였습니다. 남편의 의도와 달리 재산분할 대상인 재산은 남편이 고의로 재산을 축소하기 전으로 정해졌고, 아내는 짧은 혼인 기간에도 불구하고 40%의 재산을 분할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내는 남편보다 훨씬 현명했습니다. 남편은 판결에 다소 불만은 있었지만, 부모님으로부터 빌렸다는 돈이라도 인정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듯했고, 아내는 아이를 위해서라도 쌍방 항소는 하지 말자고 남편을 설득했습니다. 남편은 아이의 아빠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고 약속했고, 아이는 면접 교섭이 정해진 날이 아니더라도 자유롭게 아빠를 만나며 부부가 이혼하기 전보다 더 친밀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비록 헤어지는 과정은 지질하고 치열했지만, 그 결과만 놓고 보면 아내와 남편, 그리고 두 사람의 아이에게도 잘된 일이 되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경제적 속박에서 벗어나 자신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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